구찌의 몰락, 수백억 달러 브랜드의 정체성 상실

최수진 2026. 3. 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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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디자이너, 이탈리아 밀라노서 첫 데뷔쇼 열었지만
디자인 특장점 없어 예상보다 흥행 못해

10년 전 보수적 이미지에 갇혀 있던 브랜드가 패션업계를 뒤흔들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유례없는 디자인’이라는 극찬을 받았고 유명 아이돌들은 주요 행사에 이 브랜드의 블라우스를 앞다퉈 입고 나왔다. 업계는 ‘신드롬’이라고 평가했다. 1921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명품 브랜드 구찌가 그 주인공이다.

동대문에서는 비슷한 디자인의 카피 상품이 쏟아졌고 뱀이 그려진 구두와 운동화는 품절 대란을 맞으며 없어서 못 사는 제품이 됐다. 구찌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었다. 

‘구찌 르네상스’로 평가받던 과거와 달리 현재 구찌는 경영 위기에 처했다. 디자이너와 최고경영자(CEO)를 연이어 교체했지만 고꾸라진 수익성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경기침체까지 겹치며 돌파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수익성 부진에 디자이너·CEO 전부 교체했지만…

케링그룹은 최근 2025년 실적을 발표했다. 그룹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주력 브랜드 구찌는 지난해 59억9200만 유로(약 10조200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2% 급감하며 외형 확장에 실패했다. 

영업이익도 마찬가지다. 전년 대비 40% 쪼그라든 9억600만 유로에 그쳤다. 영업이익률도 21.0%에서 16.0%로 낮아졌다. 최근 5년 기준 구찌의 영업이익률이 20%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찌는 2023년까지 30%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지만 불과 2년 만에 10%대까지 떨어졌다. 

영입이익률이 감소한 것은 정가로 구매한 고객이 줄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의 ‘2025년 세계 최고 브랜드’에 따르면 구찌는 모든 명품 브랜드 중 가장 큰 폭의 가치 하락을 기록했다. 브랜드 가치는 2024년 대비 35% 하락한 116억 달러, 순위는 69위에 그쳤다. 

구찌는 브랜드 이미지 유지를 위해 매년 수천만 달러의 미판매 상품을 소각하는 등 적극적으로 가격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브랜드 가치는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회사도 인정했다. 루카 데 메오 케링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2025년은 우리가 원했던 해가 아니었다”며 ”케링의 잠재력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했고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메오는 구찌 실적 회복을 위해 케링그룹이 지난해 처음으로 결정한 외부 출신 CEO다. 

케링그룹은 올해 ‘성장세 회복과 마진 개선’을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전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구찌의 상황은 심각하다. 2022년 매출 104억4870만 유로와 영업이익 37억1460만 유로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지만 이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매출은 반토막 났고 영업이익은 4분의 1이 됐다. 

구찌의 수익성 악화는 그룹 전체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1년 사상 처음으로 780유로를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지만 2022년부터 하락세가 시작됐다. 최근 주가는 286.50유로(2월 23일 기준)를 기록했다. 정점 대비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결국 구찌는 지난해부터 실적 부진 매장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축소를 단행하고 있다. 실적 자료에 따르면 백화점 등에 입점한 정규 매장 가운데 25개를 폐점했고 아울렛 할인매장도 11개 점포를 닫았다. 

올해도 케링그룹은 100개 이상의 매장을 추가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대부분은 구찌 매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구찌는 최근 갤러리아 광교점에 퇴점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 디자인 전환 실패·디자이너 흥행 부진·시장 악화

구찌의 실패는 △사라진 창의성 △디자인 전환 실패 △디자이너 흥행 부진 △잦은 CEO 교체로 인한 경영 안정화 실패 △경기침체로 인한 명품 수요 감소 등이 맞물린 영향이다.

가장 큰 문제는 ‘창의성 부재’다. 업계에서는 2022년 11월 구찌의 부흥을 이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퇴임한 이후 창의성이 사라졌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미켈레는 아디다스, 디즈니 등과 협업한 컬렉션을 내놓으며 이색적인 시도를 했다. 당시 비평가들은 “지나치게 전위적이라 브랜드 가치를 떨어트린다”고 평가했지만 대중성을 얻으며 독창적인 명품이라는 이미지까지 확보했다. 

구찌는 2023년 디자이너 교체 이후 창의성이 사라졌다. 2022년 6월 처음 선보인 아디다스 협업은 미켈레 퇴임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선보였으나 2023년 판매율이 급격히 떨어지며 화제성도 약화했다. 

동시에 3년 넘게 디자이너도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2022년 말 미켈레가 떠나자 구찌는 2023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총괄 디자이너)로 사바토 데 사르노를 선임했다. 그러나 매출이 회복되지 않자 임명 2년 만인 2025년 2월 다시 디자이너를 교체했다. 후임에는 발렌시아가를 이끌던 뎀나 바잘리아를 선임했다. 

뎀나는 지난해 9월 첫 컬렉션인 ‘라 파밀리아’를 통해 2026 봄·여름 제품을 선보였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월 26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첫 데뷔쇼를 열었지만 크게 흥행하지 못했으며, 장기적으로도 성공할지 미지수다.

디자이너 선임 실패는 CEO 교체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9월 케링그룹은 새로운 CEO로 생로랑 경영을 총괄해온 프란체스카 벨레티니를 앉혔다. 전임 CEO인 스테파노 칸티노가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교체했다. 케링그룹은 최근 2년 새 구찌 CEO만 4번 교체했다. 2023년 마르코 비자리가 퇴임하자 프랑수아 팔뤼를 임시 CEO로 선임했다. 2025년 1월 루이비통 출신의 스테파노 칸티노로 바꿨고 8개월 만에 프란체스카 벨레티니로 교체했다. 

그사이 디자인 전환도 실패했다. 2015~2017년 ‘과도한 로고플레이’(로고가 전면에 드러나는 디자인) 전략으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2020년 들어 로고리스(제품명이 드러나지 않는 디자인) 디자인이 인기를 끌면서 트렌드가 달라졌다. 그럼에도 구찌는 빨강, 보라, 핑크 등 진한 원색을 사용하고 디자인 전반에 로고를 드러내는 디자인을 고집했다. 로고플레이 흥행 실패는 미켈레의 퇴진 시기를 앞당겼다. 

사바토 데 사르노가 외관에서 로고를 없애고 비교적 차분한 디자인을 선보이자 기존 구찌의 로고플레이를 선호하는 고객까지 이탈했다. 결국 구찌는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여기에 경기침체로 인한 명품 업황 악화까지 겹치자 구찌의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다. 핵심 시장인 중국에서 수요 위축이 장기화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번스타인의 루카 솔카 명품 애널리스트는 “중국 수요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실적 반등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도 위기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케링 실적이 대표적인 예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업황이 바닥을 지나고 있을 수 있지만 회복은 인내가 필요한 U자형 반등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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