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향기 품은 ‘조선의 위스키’…젊은 입맛까지 사로 잡다 [전원생활 I 명주를 찾아서 ]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3월호 기사입니다.

달고(甘) 붉은(紅) 이슬(露)이란 뜻의 감홍로는 본래 평양을 대표하는 술이다.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이 편찬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중국에 오향로주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평양부의 감홍로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 후기 역사학자이자 문인인 유득공은 ‘애련정’이란 시에서 ‘곳곳마다 감홍로니 이 마을이 곧 취한 마을일세’라는 표현을 했다. 애련정은 평양의 대동문에서 종로로 가는 길 한복판에 있던 연못의 정자다.
집안 대대로 술을 빚고, 평양에서 큰 양조장을 운영하던 고(故) 이경찬 옹은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는 서울에 와서도 양조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쌀을 활용한 술의 제조를 금지한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사업을 접어야 했고, 집안의 대소사와 모임이 있을 때만 감홍로와 문배주를 담가 친지나 지인들과 나눴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다.
서울 올림픽은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됐다. 국제적 행사를 앞둔 정부는 전통주 육성을 위한 대대적 조사에 나섰다. 마침내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문배주’가 지정됐고 이경찬 옹은 기능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문배주는 그의 큰아들 이기춘 씨가, 감홍로는 둘째 아들인 이기양 씨가 이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2000년 갑작스레 이기양 씨가 사망하면서, 막내딸인 이기숙 명인(68)이 감홍로의 명맥을 잇게 됐다.

그는 남편 이민형 씨(70)와 함께 2005년 농업회사법인 감홍로를 설립하고 경기 파주에 양조장을 마련했다. 초반에는 경영이 어려웠다. 귀한 술을 알아보는 이가 적어 상자에 먼지가 쌓일 정도였다. 한번은 세무조사를 나온 공무원이 양조장 상태를 살펴보고는 밥을 사주고 간 일도 있다.
그에겐 정부가 인정하는 ‘명인’이라는 타이틀이 절실했다. 감홍로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판로를 넓힐 명분도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인이 되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둘째 오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라 전수 근거를 찾는 일이 난항이었다. 실제로는 수십 년 동안 아버지 곁에서 술 빚는 일을 도왔지만, 이를 증명할 공식 기록이 없어 번번이 서류 심사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천신만고 끝에 아버지가 활동하던 사단법인 국민문화연구소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당시 그곳에서 아버지가 감홍로 관련 강연을 할 때 그가 함께 했던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제출해 2012년 드디어 대한민국식품명인 제43호로 지정받았다.
“힘들었지만 꼭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지나온 길을 짚으면서 감홍로라는 술을 왜 빚어야 하는지 이유와 가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어요.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매 순간 정성을 다하고 있어요.”
감홍로를 빚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과 정성이 요구된다. 우선 쌀과 메조를 7 대 3 비율로 준비해 따로 쪄서 고두밥을 짓는다. 이를 누룩·물과 혼합해 밑술을 담근다. 같은 방식으로 두 번 더 덧술한다. 이 과정이 20일 이상 걸린다.

이렇게 삼양주를 빚은 다음 1차로 증류하고, 한두 달가량 숙성시켰다가 재차 증류한다. 증류를 마친 술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 일곱 가지 한약재를 넣고 3개월 동안 침출한다. 일곱 가지 한약재는 용안육·생강·정향·감초·지초·진피·계피다. 용안육은 껍질이 얇고 과육은 반투명한 열대 과일로, 조선시대에도 외국에서 들여오던 귀한 재료다. 한약재 침출이 끝난 뒤에도 1년 이상 숙성을 거쳐야 한다. 빚기 시작해 잔에 따르기까지, 최소 1년 6개월이 소요되는 셈이다.
“술을 빚을 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시간’이에요. 과거 부득이하게 숙성 기간을 줄여봤는데 분명히 맛이 가벼워졌어요. 이후로는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완성도가 높은 술을 빚겠다고 결심했죠. 향후에는 숙성 기간을 늘려서 맛의 깊이를 더 끌어올리고 싶어요.”
술의 맛과 관련해 그가 타협하지 않는 부분이 또 하나 있다. 40도에 이르는 ‘도수’다. 감홍로는 40도 단일 제품만 생산되고 있다. 판매처에 따라 포장 용기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경영이 어려울 때 도수를 낮춰보라는 권유도 받았어요. 물만 섞으면 되는 일이었죠. 잠깐 흔들리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지켜온 기준을 흩뜨리거나 이름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어요.”
대체 어떤 맛일까. 잔에 따르자 익숙한 계피향이 퍼진다. ‘조선의 위스키’라는 별칭 답게 각종 약재향이 쌓인 묵직한 풍미를 지녔다. 끝맛이 달큰하다. 육류와는 대부분 잘 어울리고 한과나 약과와도 안성맞춤이다.

빛깔은 빨간색보다는 황금색에 가까운데 조화로운 맛을 위해 붉은빛을 내는 지초의 양을 조절했기 때문이라고. 감홍로는 전통주 중에서도 특히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다. 칵테일이나 디저트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해서다. ‘감홍로 아포가토’가 대표적이다. 에스프레소 대신 감홍로를 얹어보니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구수한 약재향, 쌉싸래한 술맛의 향연이 기대 이상이다.
이기숙 명인은 따듯한 물과 섞어 마시는 방식을 추천한다.
“감홍로를 3분의 1, 따뜻한 물을 3분의 2 비율로 섞으면 도수가 14도 정도로 낮아져요. 피로하거나 잠이 오지 않을 때, 천천히 마시면 몸도 따듯해지고 숙면에도 도움이 돼요.”
지난해 그는 감홍로 제조 20주년을 기념해 ‘감홍로 화이트’를 선보였다. 감홍로 화이트는 감홍로를 한 번 더 증류한 술로, 숙성 기간이 무려 8년이나 걸렸다. 도수는 43도로, 맑고 청아하며 목 넘김이 부드럽다. 얼마 전에는 카카오메이커스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아버지가 물려준 제법 외에는 좀처럼 눈길조차 주지 않던 그가, 어떻게 이런 변화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함께 일하는 딸과 아들의 아이디어였어요. 앞으로도 전통을 훼손하진 않는 선에서 변화를 시도할 순 있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거창한 성과를 좇지는 않을 거예요. 늘 그래왔듯 감홍로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분들을 만족시키는 술을 빚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글 김난 기자 I 사진 고승범(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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