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사항에 관심을…그곳이 천국일 테니 [.txt]

한겨레 2026. 3. 6.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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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네개의 강의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번째 강의의 제목은 '진지한 관찰'이다.

제임스 우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세부 사항들'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짧은 입맞춤 순간에 흘러오던 장미 향 같은 세부 사항이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우리 인생 이야기다.

세부 사항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천국을 사는 방법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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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2025년 6월 국제 콘퍼런스인 ‘아인슈타인 포럼’에서 ‘문학 비평의 실천에 관한 고찰’이란 주제로 연설하는 제임스 우드(61). 그는 비평가로서 하버드 대학에서 문학비평 실무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인슈타인 포럼 유튜브 갈무리

제임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네개의 강의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번째 강의의 제목은 ‘진지한 관찰’이다. 우드는 이 강의를 안톤 체호프의 소설 ‘입맞춤’으로 시작한다.

한 포병 부대의 대위가 동료 군인들과 함께 부자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는 평생 단 한번도 춤을 춘 적이 없고 귀족 가문의 딸의 허리에 팔을 둘러본 적이 없다. 한때는 사람 사귀는 데 서툰 자신이 싫었지만 결국엔 익숙해져서 인기가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부럽지 않았고 가끔씩 쓸쓸하기만 했다. 그날 파티 때도 혼자 있던 그는 너무 지루해서 저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길을 잃고 캄캄한 방에 들어갔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사시나무, 라일락, 장미꽃 향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그때, 갑자기 그의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한 여자가 다가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을 맞추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순간 그의 콧수염 옆 부분에 “박하잎이 닿은 것처럼” 시원한 전율이 일어났다. 여자는 자신이 엉뚱한 남자에게 키스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황급히 가버렸다. 그의 인생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누군가 그를 다정하게 대해주었고 행복하게 해주었으며, 자신의 인생에서 터무니없이 이상하지만 아주 특별한, 굉장히 기쁘고 좋은 일이 생겨났다.” 며칠 후 그는 동료 장교들에게 용기를 내서 그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런데 이야기는 정확히 1분 안에 끝나버렸다.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데 그토록 짧은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날의 입맞춤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날 입맞춤이 그에게 갖는 의미를 알려면 그의 인생 전체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위는 동료들에게 그날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사시나무, 라일락, 장미꽃 향이 났다는 것을 이야기했을까? 그날 뺨이 박하잎이 닿은 것처럼 시원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임스 우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세부 사항들’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짧은 입맞춤 순간에 흘러오던 장미 향 같은 세부 사항이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우리 인생 이야기다. 우드는 작가들의 ‘진지한 관찰’에 대해 이런 주장을 한다. “작가들은 우리를 죽음에서 구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내가 말하는 죽음이란 세부 사항들이 우리에게서 점차 멀어짐에 따라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현실이다. 이는 어린 시절의 기억, 이제는 거의 잊어버린 맛과 향기와 촉감의 강렬함,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써 세상이 맞게 되는 느린 죽음이다.”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l 제임스 우드 지음, 노지양 옮김, 아를(2025)

‘죽음’이라는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책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맥베스는 왕을 죽인 뒤 아무것에도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내일. 그것은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찬 바보가 들려주는 이야기. 아무런 의미가 없도다.”

정혜윤 CBS 피디

세부 사항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내일이 와도 또 내일이 와도 똑같다. 비록 지금은 주의력 결핍의 시대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우리를 축복받은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 한가득이다. 어젯밤에는 어둠 속의 반달이 그랬다. 한강 다리 위에 달이 떠 있던 어떤 하루가 생각났다. 우드 그리고 많은 작가들이 알고 있던 것이 있다. 세부 사항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천국을 사는 방법이라는 것.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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