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드는 양극화, 바둑뿐만 아닌 산업 전반 문제”

김도연 기자 2026. 3. 6.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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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대국 10주년 맞은 이세돌
서울대 석차옥 교수와 특별 대담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바둑 기사와 그렇지 못한 기사의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산업 전반이 마주한 거대한 ‘양극화’의 예고편입니다.”

이세돌(43) 전 바둑 기사는 5일 서울대·한국과학기술학회 주최로 연 특별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세돌은 10년 전인 2016년 3월 9~15일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와 세기의 대국을 벌여 세 번 진 끝에 네 번째 대국에서 승리했다. 이후 누구도 AI를 이기지 못해 ‘AI를 마지막으로 이긴 사람’으로 불린다. 대국 10년을 기념해 열린 대담에서 이세돌은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지난 10년간 AI가 미친 영향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5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 자연과학대학 강의동에서 이세돌(왼쪽) 전 바둑기사가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알파고 대국 10년을 기념해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김지호 기자

이세돌은 이날 10년 전 대국을 떠올리며 “AI가 두는 수의 의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네 번째 대국에서 이겼을 당시) AI에 버그(컴퓨터 결함)를 일으키겠다는 일념하에 의도적으로 정수(正手)가 아닌 수를 뒀다”며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인간적인 결정’이었다”고 했다. 당시 이세돌은 인공지능에 혼란을 일으키는 ‘신의 한 수’를 던졌다. 알파고가 상변에서 중앙까지 거대한 집을 구축한 상황에서 이세돌은 중앙 흑 한 칸 사이를 끼우는 묘수를 뒀다. 이후 알파고는 알 수 없는 수를 남발했고 결국 이세돌이 승리했다.

이세돌은 “알파고 이후 10년 동안 바둑계가 겪은 변화는 ‘천지개벽’이라 할 만하다. 2020년부터는 바둑계에서 인공지능은 신이 됐다”며 “이전에는 인간이 이길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이제는 AI에 의문 자체를 가지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는 “몇백 년 동안 쌓아온 바둑의 발전보다 10년 동안의 발전이 훨씬 극적”이라며 “바둑에 AI가 들어오며 지금껏 인간이 만들어놓은 정석이 다 사라지고 거의 남은 게 없다”고 했다. 그는 “10년 전 알파고 대국은 AI 시대의 변화를 미리 볼 수 있는 힌트를 준 것인데 당시에는 (우리 사회가) 간과하고 넘어가지 않았나”라고 했다.

이세돌은 알파고 대국으로부터 3년이 지난 2019년 11월 바둑 기사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바둑은 기사의 개성, 감정, 스토리가 모여 만들어지는데 (AI 시대의 바둑은) 그런 것들이 모두 없어지고 ‘수읽기 능력’만 남았다”고 했다. 이어 “프로처럼 바둑을 잘 두는 것의 가치는 떨어졌다”며 “바둑과 같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는 것이 중요한 시대”라고 했다. 그는 작년 2월부터 울산과학기술원(UNIST) AI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하며 과학자를 위한 보드게임 제작 강의를 하고 있다.

이세돌은 AI가 불러올 사회적 양극화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AI가 보급되던 당시 이를 사용하지도 공부하지도 않은 기사들은 결국 상위 랭크에서 사라졌다”며 “AI로 기사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AI를 잘 활용하는 상위 랭커와 그렇지 못한 이들 간의 격차가 벌어지는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현상은 바둑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AI 때문에 배운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 AI로 정보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공개돼도 이 격차는 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세돌과 대담을 나눈 석 교수는 “AI가 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석 교수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AI 모델로 2024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알파폴드2’를 예로 들고 “새로운 실험 도구가 발견되면 매우 큰 발전이 일어난다. AI도 그런 관점에서 과학적인 실험 도구”라고 했다. 이어 “사람이 이해하는 방식을 인공지능이 체계화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게 인간의 역할”이라고 했다.

한편 이세돌은 알파고와 첫 대국을 펼친 지 10년이 되는 오는 9일 알파고 대국이 열렸던 서울 중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다시 한번 AI와 대결을 한다. 국내 스타트업 ‘인핸스’가 개발한 AI 비서에게 “이런 식으로 바둑 프로그램을 만들어줘”라고 지시해 즉석에서 AI 바둑 모델을 만들고 그와 간단한 경기를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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