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침대·덧신, 바닥 오물 접촉 최소화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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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벗고 들어오세요." 한국인의 공간에 들어서는 외국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온돌과 마루는 형태가 인간의 습관을 재조직한 결정적 사례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바닥은 사람을 앉히고 눕힌다. 바닥이 생활의 무대가 되자 신발은 자연스럽게 금기가 되었다. 이 금기는 '안'과 '밖'을 가르는 위생 관념을 낳았고, 집에서 맨발로 생활하면서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슬리퍼를 신는 독특한 문화가 탄생했다. 한국인에게 안팎의 구분은 벽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아니라, 몸의 동작으로 확인하는 심리적 경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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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유럽 하수도 등 미비
- 집 안에서도 신발 신고 생활
- 온돌문화 韓, 화장실 슬리퍼
- 문명은 몸과 감각에 맞춘 것
“신발 벗고 들어오세요.” 한국인의 공간에 들어서는 외국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신발을 벗고 실내로 들어서는 것과 바깥에서 신던 신발을 그대로 신고 실내로 들어가는 것.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서경욱의 ‘형태의 문화사’에서 오래도록 궁금했던 것을 풀 수 있었다. 영국 노섬브리아대 건축학과 서경욱 교수는 손과 발 등 신체에서 출발해 집과 길, 나아가 문화적 현상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궤적을 복원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이룩한 문명이 결국 ‘몸의 확장’이며, 인간의 감각이 빚어낸 가장 물질적인 결과물임을 증명한다.
저자는 형태의 기원을 찾는 질문으로 책을 구성했다. ‘몸의 형태’ 편은 손 발 눈 얼굴 웨어 크기. ‘세상의 형태’ 편은 동그라미와 네모 집 길 고개 껍데기와 알맹이. ‘문화의 형태’ 편은 배열 짝퉁 첫인상 노이즈 낡음. 모두 열여섯 가지 질문이다.

신발 이야기는 ‘몸의 형태-발’ 편에 있다. 18세기 유럽 어디에도 화장실과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구비된 도시가 없었다.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과 생활 오물로 길거리는 더러웠다. 사람들은 외출할 때 집에서 신는 신발 아래 ‘패튼’이라는 무거운 나무 덧신을 겹쳐 신었다. 노동계급과 달리 마차로 이동하는 귀족 여성들은 가죽으로 만든 세련된 덧신을 신었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덧신을 벗고 신발은 신은 채 집으로 들어갔다. 덧신을 신어 길거리의 오물을 집안으로 끌고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주택의 바닥도 각종 생활 오물로 더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었다. 테이블 의자 침대 같은 가구는 우아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러운 집 안 바닥에 신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와 반대인 문화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동양에서 발은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왔다. 좌식 생활은 손과 발, 상체와 하체의 구분 없이 몸의 모든 부위가 바닥에 동등하게 밀착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제자리에 앉아 있다가 약간의 수평 이동이 필요할 때는 발 대신 손 무릎 엉덩이 등을 사용해 바닥을 기어가듯 움직이는 창의적 이동 방법도 활용한다. 이렇게 동아시아의 좌식 생활은 자연스럽게 하체를 천대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신을 벗고 올라서는 순간 더러운 바깥세상과 대별되는 깨끗한 방바닥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두는 현관까지도 박박 닦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인의 좌식생활에 대해 이런 설명을 한다. “온돌과 마루는 형태가 인간의 습관을 재조직한 결정적 사례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바닥은 사람을 앉히고 눕힌다. 바닥이 생활의 무대가 되자 신발은 자연스럽게 금기가 되었다. 이 금기는 ‘안’과 ‘밖’을 가르는 위생 관념을 낳았고, 집에서 맨발로 생활하면서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슬리퍼를 신는 독특한 문화가 탄생했다. 한국인에게 안팎의 구분은 벽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아니라, 몸의 동작으로 확인하는 심리적 경계다.”
책에는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사물과 공간의 형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동전의 동그란 모양은 생활 물리학이다. 어느 방향으로도 모나지 않고, 주머니 속에서 걸림이 없어야 한다. 반면 지폐는 쌓고, 접고, 넘기기 위해 직사각형을 택했다. 한국 지폐의 짧은 변 6.8센티미터는 인간의 손아귀가 허락하는 가장 완벽한 수치다. 동그라미와 네모는 돈의 상징이기 이전에, 인간의 손이 선택한 최적의 형태였다.
인간이 만든 형태에는 인간의 몸과 감각의 흔적이 남는다. 지금도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그 무엇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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