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쿠르드족의 비애

쿠르드족은 중동의 타우루스 산맥과 자그로스 산맥이 교차하는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에서 살았다.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양·염소를 치는 유목 생활을 했다. 3000만명이 넘는 쿠르드족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 없는 민족’이다.
쿠르드족이 독립 국가가 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1차 세계대전 후인 1920년 연합국은 패전국인 오스만 제국과의 세브르 조약에 쿠르드 국가 건설을 포함시켰다. 쿠르드족이 오스만 제국 공격에 참여한 이유였다. 그러나 3년 뒤 로잔 조약에선 빠졌다. 쿠르드족은 튀르키예·이라크·이란·시리아 등 네 나라로 흩어져 그 나라의 소수민족으로 살며 차별을 겪었다. 튀르키예는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했다. 수니파인 쿠르드족은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에서 박해를 당했다. 독립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서방은 독립, 적어도 자치 확대라는 쿠르드족의 기대를 중동 정세에 활용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친소련’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이라크의 쿠르드족을 이용해 놓고 전쟁이 끝나자 외면했다. 이라크의 쿠르드족 무장단체인 페슈가르가는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파트너였다. 시리아 민병대는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독립을 기대하며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격퇴에 앞장섰지만 미군이 돌연 시리아에서 철수하면서 버림받았다.
이라크 내 쿠르드족 무장단체가 미국 지원을 받아 이란에 대한 지상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5일 보도했다. 트럼프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다음날인 지난 1일 쿠르드족 지도자들과 통화했다고 한다. 미군 지상군 투입을 꺼리는 트럼프를 대신해 쿠르드족이 참전한다면 이번 전쟁이 장기전의 늪으로 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쿠르드족은 하나의 국가가 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어느 나라든 독립을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어느 한 나라에서 독립한다면 그 파장이 다른 나라로 번지고, 중동에 격랑이 올 수 있다. 쿠르드족이 오랜 세월 뿔뿔이 흩어져 지내면서 서로 반목하기도 했고, 이해관계도 제각각이다. “산 외에는 친구가 없다”는 쿠르드 속담에서 쿠르드족의 비애가 느껴진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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