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면역기능개선 건기식 ‘3조 잭팟’… “기초연구, 상용화 성패 좌우”

이준기 2026. 3. 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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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硏 입사후 원자력병원 연구자 생활
연구과제 탈락·예산 삭감 딛고 10년 연구
당귀·천궁·작약 조합 추출물의 효능 입증
식물 복합추출물 면역세포 활성화 확인
헤모힘 제품화 초기 판매부진 위기 불구
개발과정 TV 방영후 기업 러브콜 쇄도
콜마비앤에이치, 연구기업 첫 코스닥行
세제체계 등 법·제도적 개선 필요성 강조
조성기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 황응준 프리랜서 제공.

이준기의 D사이언스
조성기 前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


“15년 이상 면역이라는 기초연구에 매달렸기에 ‘헤모힘’을 제품으로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상용화는 오랜 기간 숱한 시행착오와 실패의 자산이 차곡차곡 쌓일 때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는 또다른 영역입니다.”

‘헤모힘 탄생 주역’ 조성기 전(前)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는 연구성과가 상용화에 성공하려면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기초연구가 탄탄히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조 박사는 40년 가까운 연구 인생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여러 차례 새겼다. 그가 개발한 면역기능개선 식물복합조성물에 대한 기술출자를 통해 제1호 연구소기업 ‘선바이오텍’(현재 콜마비앤에이치)이 만들어졌고, 국내 최초 면역기능개선 건강기능식품 ‘헤모힘’도 세상에나올 수 있었다.

헤모힘은 당귀, 천궁, 작약 등 한국 고유 생약재 3종을 혼합해 제조한 식물 복합조성물로 면역과 조혈, 재생조직 기능 개선에 효능을 인정받아 2006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1호 건강기능식품 원료 성분으로 승인됐다.

2015년 콜마비앤에이치가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조 박사는 원천기술 개발자로 인정받아 거액의 기술료 수입을 올려 주변 연구자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까지 그야말로 가시밭길의 연속이나 다름 없었다. 한 번 떨어져 재도전 끝에 겨우 국가 연구과제에 선정됐고, 연구비도 기대 보다 적게 받았다.

면역기능 개선에 좋은 식물 추출물을 찾아 최적의 조합 비율을 찾는 과정, 대상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워야만 했던 인체적용시험, 제품 개발을 위한 기업과의 후속연구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조 박사는 “돌이켜 보면 면역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원자력연과 정부를 비롯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의기투합하며 힘을 모아준 동료·선후배 연구자, 기술을 믿고 아낌없이 투자해 준 제조·판매 기업이 있었기에 상용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대담=이준기 IT과학바이오부장


조성기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 황응준 프리랜서 제공.

◇연구 시작부터 난관… 재도전 끝에 시작·연구비도 깎여

조 박사는 1982년 원자력연에 입사해 원자력병원 소속 연구자로 면역과 암, 면역과 방사선 등 두 분야를 주제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방사선 치료로 인해 저하된 인체 면역기능을 어떻게 하면 회복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연구주제로 이어졌다.

그는 “방사선 치료나 항암제 투여 이후 손상된 세포와 조직이 사람마다 다른 이유를 면역과 방사선 간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를 규명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방사선을 쪼여 면역과 조혈기능이 저하된 실험동물을 이용해 재생조직과 조혈, 면역기능 회복 등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나타내는 새로운 식물 소재 복합조성물을 만들어 건강기능식품으로 개발하는 게 조 박사의 최종 목표였다.

연구 시작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연구과제 평가에서 한 번 탈락하고 다시 도전해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신청한 연구비 4억원은 1억2000만원으로 깎였다.

그는 “연구비가 적어 연구장비는 말할 것도 없고 연구 인력을 대폭 줄여 연구를 시작해야 했다”며 “연구에 필요한 재료를 다른 연구실에서 빌리고, 대학 교수 연구팀에 주어야 할 위탁과제 규모도 줄여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당시의 고충을 회상했다.

빠듯한 연구살림에도 불구하고 조 박사를 비롯한 참여 연구자들이 주말은 물론 밤을 수시로 새가며 10년 간 연구에 매달린 끝에 헤모힘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반복 실험 끝에 최적의 ‘식물성 복합조성물’ 찾아

조 박사는 양·한방서적, 학술논문, 각종 문헌 정보 등 광범위한 자료를 샅샅이 뒤져가며 조혈과 면역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33종의 식물 재료를 1차로 찾았다.

이후 각 재료의 효과를 재생조직, 조혈, 면역 등 세 가지 관점에서 일일이 분석한 뒤 각 재료별 최적의 조합을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조 박사는 “이전의 면역 관련 실험이 조혈계와 재생조직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던 것을 조혈계와 재생조직은 ‘구성조직’, 면역은 ‘기능’과 관련된 문제로 정의하고 실험을 수차례에 걸쳐 새롭게 설계하며 연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반복 실험과 약재 조합, 실험 재설계 등 숱한 과정을 거쳐 당귀·천궁·작약 조합 추출물이 조혈·면역·재생조직에 효능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었다.

조성기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 황응준 프리랜서 제공.


◇인체시험 참여자 못 구해 ‘발동동’… 원자력연 직원·지인 등이 ‘손길’

조 박사가 개발한 식물 복합추출물을 건강기능식품으로 제품화하기 위해선 동물실험과 인체적용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 했다. 동물실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확보했지만, 인체적용시험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그는 “인체적용시험 참여자를 모집하기 위해 광고를 냈는데, 고작 4통의 연락을 받았다”며 “이마저 시험 부적합자를 제외하고 1명만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그 분조차 가족 반대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급한 마음에 조 박사는 부모님께 시험 참여를 요청해 동의를 얻었지만 대상자 조건에 맞지 않았다.

난생 처음 듣는 복합물을 대상으로 한 인체적용시험에 선뜻 자기 몸을 맡길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니 깊은 한숨만 나왔다.

그는 묘안을 냈다. 원자력연 직원을 대상으로 자신이 개발한 식물 복합추출물에 대한 세미나를 열어 시험 대상자를 찾기로 한 것이다. 운 좋게 직원과 직원 부모님, 지인 등 총 48명이 흔쾌히 동의해 시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조 박사는 “지금 생각해도 시험에 참여한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며 “이 분들이 있었기에 식물 복합추출물이 면역세포 반응을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상용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강조했다.

◇연구소기업·판매기업, 천군만마 역할… 헤모힘 제품 출시·폭발적 반응

헤모힘을 제품화하는 것은 연구개발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당시 장인순 원자력연 소장의 제안으로 한국콜마에 헤모힘 관련 기술을 출자해 설립한 연구소기업이 큰 힘이 됐다.

원자력연과 한국콜마가 공동 설립한 제1호 연구소기업 선바이오텍(현 콜마비앤에이치)이 제품 개발과 제조를 맡았고, 조 박사는 제품화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섭취 횟수와 용량, 제형 등을 소비자 맞춤형으로 반영해 각고의 노력 끝에 제품을 내놨지만, 판매 실적은 매우 미비했다.

조 박사는 “몇 개 업체에 판매 아웃소싱을 했음에도 판매가 예상보다 부진해 회사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졌다”며 “제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소비자에게 어필하지 못하면 결국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헤모힘 개발 과정이 TV를 통해 방영되자, 국내 유수의 판매 전문기업이 헤모힘 마케팅과 판매를 맡겠다고 제안했다. 조 박사는 연구소기업과 함께 고민을 거듭한 결과, 판매 기업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그의 우려와 달리 판매 전문기업은 우수한 효능을 앞세워 가격을 낮추는 판매 전략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그 때부터 입소문을 타고 헤모힘을 찾는 고령층과 면역 저하 환자들이 급격히 늘면서 판매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조성기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 황응준 프리랜서 제공.


◇잭팟 기술료로 돈방석… 기술가치평가·과세제도 개선 필요

헤모힘 판매 호조에 힘입어 2015년 콜마비앤에이치는 연구소기업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됐고, 한때 시가 총액 1조원 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원자력연은 기술출자를 통해 확보한 주식 일부를 2015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매도했다. 조 박사는 기술개발에 기여해 거액의 기술료를 보상금으로 받는 ‘잭팟’을 터뜨렸다.

지난 37년 간 연구자 길을 걸어 오면서 면역과 방사선 연구에 오롯이 인생을 받친 결과에 대한 보답이자 선물이었다.

조 박사는 “식물 복합조성물 개발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운좋게 기술료까지 받게 됐다”며 “무엇보다 개발자와 판매자 모두 미쳐서 모든 것을 걸었기에 헤모힘 누적 매출이 3조원을 넘고, 해외 26개국에서 팔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계에서 돈 버는 과학자가 지속적으로 나오기 위한 제언도 아끼지 않았다.

조 박사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주먹구구식인 현재의 기술가치평가를 기술개발자 입장에서 보다 객관적·합리적으로 개선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심층 평가 방식과 5년 주기 재평가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술료에 대한 현재의 불합리한 세제 체계도 언급하며 “과거 비과세였던 기술료 보상금을 높은 세율의 과세로 바뀐 것은 연구자의 기술개발 의욕을 꺾는 것과 동시에 국가 연구개발 성과가 실험실 문턱을 넘어 상용화하기 위한 의지를 차단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무발명보상금 취지에 맞게 특정 한도까지는 비과세하거나, 구간별 세금체계를 개선해 연구자들이 연구개발에 그치지 않고 상용화까지 연구를 이어갈 수 있게 지원하는 법·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박사는 “신진 연구자들이 실패를 겁내지 않고, 평가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연구를 최소 5년 가량 할 수 있게 보장해 주는 연구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하는 연구 환경이 필요하다”며 “그 과정에서 기초를 튼튼히 해 제2의 헤모힘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 영년직 연구원을 끝으로 연구 현장에서 한 발 물러서 있지만, 그는 헤모힘을 의약품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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