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도 다 이유가 있다는 사람들에게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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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우크라이나 소년 바냐는 2년 전 일터에 간 아빠를 러시아 공습으로 잃었다.
구호 단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는 바냐처럼 이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동이 10만명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전쟁이 꼭 필요했다고 주장한다.
'형제'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을 해치는 건 더욱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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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우크라이나 소년 바냐는 2년 전 일터에 간 아빠를 러시아 공습으로 잃었다. 지금은 온수·전기가 끊긴 집에서 엄마와 5살 여동생을 돌보며 산다. 지난달 7일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바냐는 “매일 날아오는 드론 소리가 무섭다”고 했다. 기자는 아이에게 아빠에 대한 기억을 차마 묻지 못했다. 그의 삶을 평생 괴롭힐 상처를 들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호 단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는 바냐처럼 이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동이 10만명이다. 러시아에는 더 많을 것이다. 두 나라 사상자가 총 180만명에 이르면서다.
우크라이나에 가기 전 이 숫자는 언뜻 컴퓨터 게임의 스코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거리에서는 그 무시무시한 공백이 실감 났다. 도시에 젊은이가 드물고 팔다리와 눈이 없는 행인이 흔했다. ‘180만명’은 대전·세종 인구를 합한 정도로 큰 숫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전쟁이 꼭 필요했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 가입을 추진해 러시아 안보에 위협이 됐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형제 나라였다는 것이다. 만약 사실이라 한들, 그런 구실이 이만큼의 고통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나토 가입은 주권국의 선택이며, 현실화하지도 않은 위협이다. 다른 나라의 정치적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력 대신 외교라는 적법한 수단을 써야 한다. ‘형제’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을 해치는 건 더욱 어불성설이다.
러시아만인가.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격하면서 “이란 국민의 자유”라는 대의를 내세웠다. 그리고 같은 날 이란의 여자 초등학교에 미사일이 떨어져 170여명 넘는 어린이가 죽었다. 2003년 유엔 연단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규탄했던 도미니크 드 빌팽 전 프랑스 총리는 3일 리베라시옹 기고문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누가 도널드 트럼프와 베냐민 네타냐후의 주된 목표가 ‘민주주의 정착’이라고 한 순간이라도 믿을 수 있겠나? (중략) 이들은 ‘이 전쟁은 불법이지만 정당하다’는 환상을 강요하고 있다.”
더 비참한 건 국제사회가 이런 억지·강요에 순순히 넘어간다는 점이다. 각국은 진영에 따라 ‘나쁜 전쟁’과 ‘이유 있는’ 전쟁을 나눈다. 싫어하는 나라가 일으킨 전쟁은 국제법을 근거로 준엄히 꾸짖다가, 내 편이 벌이는 살육은 도리어 응원한다.
1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미국·이스라엘이 “이란 정권의 부정의”를 해소해줬다며 “이들을 훈계하지 말라”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그가 이런 말을 하고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떳떳하게 비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부당한 수단을 필요로 하는 목적은 정당한 목적이 아니”라고 했다. 정당한 목표가 있으면 무슨 수를 써도 되는 게 아니라, 정당한 수단을 써야 정의로운 목표가 된다는 얘기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힘센 자가 그럴듯한 구실로 벌이는 살상이 만연하게 된다고 카뮈는 경고했다.

세상에는 이를 막을 국제법이 있다. 러시아와 이스라엘이 법을 무시하고, 트럼프가 유엔을 ‘허수아비’라고 조롱한다고 해서 국제법이 사라진 게 아니다. ‘좋은 전쟁’은 없다는 원칙을 국제사회가 모든 나라에 단호하게 내세우기를 희망한다. 위법한 전쟁을 일으킨 지도자들은 예외 없이 처벌받아야 한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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