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국 꿈꾸며 숱한 참전… 번번이 ‘팽’ 당해 [美·이란 전쟁]

김희원 2026. 3. 5. 18:2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지상전에 쿠르드 무장세력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쿠르드족의 선택과 참전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쿠르드족은 고대 미디아 왕국에 뿌리를 둔 것으로 알려진 산악민족으로 독립국가 건설을 꿈꿔 왔다.

미국이 이란 체제 전복에 성공하더라도 복잡한 중동 정세 속 쿠르드족 독립국가 수립에 찬성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美와 또 손잡는 ‘비운의 쿠르드족’
박해 견뎌온 4500만 규모 소수민족
중동 분쟁 때마다 서방에 적극 협조
이란戰 일조해도 희망 실현 미지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지상전에 쿠르드 무장세력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쿠르드족의 선택과 참전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쿠르드족은 고대 미디아 왕국에 뿌리를 둔 것으로 알려진 산악민족으로 독립국가 건설을 꿈꿔 왔다. 이를 위해 쿠르드족은 중동지역에서 분쟁이 벌어질 때마다 서방에 적극 협조하며 영향력 확대와 국가 건설을 꾀했다. 그러나 ‘쓰임’을 다한 뒤엔 번번이 외면당하는 아픈 역사가 반복됐다.
4일 이라크 아르빌에서 드론 공격으로 주거지가 파손된 이라크 쿠르드 주민들이 피해 상황을 살피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작은 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방 연합국은 패전국 오스만제국의 분할을 위한 세브르조약(1920년)을 통해 쿠르드족에 ‘쿠르디스탄’ 국가 건설을 약속했다가 3년 뒤 로잔조약에서 이를 철회했다.

이후 쿠르드족 거주지도 분리됐다. 이들은 각국의 소수민족으로 박해와 탄압을 견디면서도 강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2020년 기준 쿠르드족 인구는 약 4500만명 규모로 튀르키예(2210만명), 이란(900만명), 이라크(820만명), 시리아(190만명)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튀르키예는 쿠르드족을 ‘산악 튀르키예인’이라 부르며 언어 사용 금지, 쿠르드식 이름 금지 등 동화정책을 폈고, 이란은 억압했다.

쿠르드족은 튀르키예군으로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병사를 보낸 튀르키예(터키)의 국기를 달았다. 당시 공을 세우면 독립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 참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각국 전쟁에 휘말려 난민이 되거나, 전쟁범죄의 희생자가 돼 왔다.

1970년대 미국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친소련인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쿠르드족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이라크와 갈등을 겪던 이란도 쿠르드를 지원했다. 하지만 1975년 이란과 이라크가 합의하고 미국도 이를 묵인하면서 쿠르드족에 대한 미·이란의 지원은 끊겼고, 이라크는 화학무기와 공습으로 쿠르드족 지역을 초토화시켜 6만명 이상을 학살했다. 이 사건은 쿠르드족에 ‘키신저의 배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1987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이라크 정부군이 이란을 도운 쿠르드족에 화학가스 공격을 단행해 18만명(쿠르드족 자체 추산)이 학살당하기도 했다.

미국의 배신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1년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국민을 향해 “사담을 몰아내라”고 촉구했다. 이에 쿠르드족과 시아파가 봉기했다. 하지만 쿠웨이트 해방 후 미군은 물러났고, 이라크군은 또다시 쿠르드족을 학살했다.

2014년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확장을 막는 데도 쿠르드가 나섰다. 미국 등 서방은 쿠르드 민병대와 손잡고 IS 격퇴에 이들을 투입시켰다. 당시 쿠르드족은 시리아민주군(SDF) 깃발 아래 여러 아랍 민병대와 함께 싸웠고, 미국 주도 연합군의 지원을 받아 시리아 북동부 수만㎢에 달하는 영토에서 점차 IS를 몰아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튀르키예와 합의한 뒤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을 철수해 버렸다. 미국의 방치에 따라 쿠르드족은 자신들을 몰아내려는 튀르키예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됐다. 튀르키예 정부가 미군이 떠난 시리아 북부에 무차별 공격을 가해 쿠르드인 민간인 피해가 속출했다.

당시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산 외에는 친구가 없다’는 쿠르드 속담을 인용해 “미국 행정부들이 쿠르드족을 포용했다가 배척했던 쓰라린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번 참전 후에도 쿠르드족이 염원하는 독립국 설립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이란 체제 전복에 성공하더라도 복잡한 중동 정세 속 쿠르드족 독립국가 수립에 찬성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