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3년 7개월 만에 1천800원대 넘겨 ‘초 비상’
대통령 직접 나서 제재 방안 주문
일정 수준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정부, 최고가 지정 방안 검토 중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 충돌로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면서 최근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이례적으로 급등하고 있다.
5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약 1천834원, 경유는 약 1천830원으로 각각 1천800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휘발유 가격이 1천800원을 돌파한 것은 2022년 8월 이후 약 3년 7개월 만이며, 경유 역시 2022년 12월 이후 3년여 만이다.
이번 급등은 단기간에 나타난 것이 특징이다. 휘발유는 지난 1일 1천695원에서 4일 1천777원으로 오르며 닷새 만에 120원 이상 올랐고, 경유는 같은 기간 1천600원대 초반에서 1천700원 후반까지 200원 가까이 뛰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보다도 빠른 상승 속도로, 업계에서도 "이례적 폭등"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주요 원인은 중동 지역 긴장으로 인한 공급 불안이다. 특히 한국이 수입하는 중동 원유의 약 95%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했다. 국제 휘발유 가격은 며칠 사이 약 10달러 상승했고, 경유 가격도 20% 이상 뛰었다. 이에 소비자와 주유소가 동시에 기름을 미리 확보하려는 '패닉 바잉(공포 매수)' 현상이 나타나면서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시 국무회의에서 과도한 가격 인상 여부를 점검하라고 지시했고, 정부는 석유사업법에 근거해 주유소 판매 가격 상한을 정하는 '최고가 지정제'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다.
다만 최근 급격한 가격 상승을 두고 일부에서는 주유소의 과도한 가격 인상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국제 정세와 공급 구조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한국주유소협회 전남지회 관계자는 "최근 휘발유 가격 급등은 주유소의 담합이나 폭리 때문이라기보다 정유사의 공급 정책 변화와 국제 정세 영향이 겹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지난달 말 주유소들에 기름값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재고를 최소 수준으로 유지하고 일주일치 정도만 구매할 것을 안내했다.
통상 주유소들은 한 달 단위로 기름을 매입하거나 일정 수준의 재고를 확보해 가격 변동에 대비하지만, 이번에는 정유사의 안내에 따라 최소한의 물량만 확보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중동 지역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며 국제 유가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유가가 급등하자 주유소들이 추가 물량 확보에 나섰지만, 정유사 공급 가격도 동시에 올라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주유소들이 기름을 추가로 구매하려 했지만 정유사가 더 높은 가격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며 "재고가 부족한 주유소들은 비싼 가격에 기름을 들여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또 "재고를 많이 확보하지 않았던 저가 주유소일수록 가격 상승 영향을 먼저 받았다"며 "기존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높은 가격에 새로 기름을 들여와야 했고, 결국 판매 가격을 급하게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정부와 언론이 주유소만을 가격 인상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주유소는 석유관리원에 재고와 판매량을 주기적으로 보고하기 때문에 정부가 확인하면 재고 상황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며 "정유사 공급 가격과 유통 구조를 함께 조사해야 정확한 원인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bjh@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