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판경제학] 3. 남동산단-남동만 거꾸로 갔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대형산단 꺾인 결정적 시기 'IMF'
두번 고비 거친후 임금 평균은 '하회'
신일기 “산단 밀도·구조 있어 희망”
오지 않는 청년 떠나는 외국인
우즈베크 청년, 비전문비자 '58개월'
관리자 “쓸만 하면 짐 싸서 떠나” 탄식
김주영 “광역형 비자 설계·전술 필요”
브릿지 공백
목재 종이 업종, 2년새 수출액 67%↓
가동률 7.7%↓…첨단·뿌리산업 단절
김경배 “공간 성격 재정의할 동력 절실”
G밸리의 길로 도래
개별기업 분투 넘어 전체 판짜는 전략부터
우한성 “대·중견기업, 거래 생태계 복원을”
전문가들, 대체·실제 순환 작동 여부 '초점'


남동산단 점심은 지극히 효율적인 시간이다. 6000원짜리 식판은 10분 만에 비워지고, 노동자들은 길 위에서 믹스커피로 입가심을 한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현장과 달리, 남동의 지표는 홀로 후퇴 중이다. 최근 2년 새 주요 국가산단들 가동률이 회복세를 보일 때, 남동은 81.6%에서 73.9%로 7.7%p 급락했다. 왜 남동만 거꾸로 가는가.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경기 불황'이 아닌 '구조적 진화의 실패'로 진단한다.

▲장면 여덟, 시작점 'IMF 외환위기'와 '2000년대 금융위기'
인천 남동구 고잔동 한 식당. 사장 연희씨의 손때 묻은 장부에는 산단의 '인구학적 몰락'이 기록돼 있었다. 1년 전만 해도 하루 150명분이 나갔던 점심 식사는 이제 90명분으로 줄었다. 장부에서 이름이 하나둘 지워질 때마다 연희씨는 산단이 더 적막해지는 거 같아 쓸쓸했다. "이렇게 가차 없이 아웃이야." 그녀의 말은 투박하지만 정확하다.
연희씨 장부의 빈칸은 신일기 인천가톨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말로 치자면 "30년 치 누적된 성적표"다. 인천 대형 산단이 꺾이기 시작한 결정적인 장면은 IMF 외환위기와 2000년대 금융위기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무직과 기능직의 급여 차이는 크지 않았으나, 두 번의 위기를 거치며 격차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졌다.
"산단 임금 수준은 전국 일자리 평균보다도 아래입니다. 환경도 열악한데 급여까지 낮으니, 이제 산단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을 때' 마지막으로 찾는 직장이 돼버린 겁니다." 신 교수의 진단은 남동산단 가동률 급락이 단순한 일시적 불황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가 저평가되면서 발생한 '인력 이탈'과 '산업 공동화'가 맞물린 결과임을 시사한다.
신일기 교수는 산단 쇠퇴를 논하기 전,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상기시킨다. 인천이라는 도시가 지금의 외형을 갖출 수 있었던 중추가 바로 산단이었다는 점이다.
1960년대 서비스업 위주였던 인천을 제조업 중심의 경제 강소 도시로 바꾼 것이 주안과 부평산단이었고, 그 동력을 1990년대에 완성한 것이 바로 남동산단이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인천 경제의 셋업(Setup)을 남동을 포함한 주안, 부평산단이 해낸 겁니다. 산단 주변으로 공업지역이 두텁게 형성되면서 도시의 경제적 중추가 만들어졌죠. 산단하고 인천은 뗄 수가 없어요."
신 교수 말처럼, 산단은 인천의 과거이자 현재였다. 그러나 이 찬란했던 '경제 엔진'은 심각한 구조적 결함에 직면해 있다.
단순히 돈이 안 돌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순환되지 않는 취약성 때문이다.
기사가 지적한 '거꾸로 가는 남동'의 지표에도 신 교수가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인천 산단이 가진 '밀도'와 '구조'에 있다.
"지금 미국은 리쇼어링(기업의 본국 회귀)을 하겠다며 도시 인프라를 다시 만드는 데 6경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주거와 산업을 연결하는 구조를 새로 만들려는 거죠. 그런데 인천은 어떤가요? 이미 그 구조가 다 돼 있습니다. 주거와 상업, 공장이 맞물려 있는 집적화 구조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경쟁력입니다."
즉, 남동은 이미 완벽한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핵심은 그 안에 담길 '내용물(기업)'이다.

▲장면 아홉, 뿌리와 첨단 사이 '브릿지' 공백
"폐업 한 공장들은 기계들을 다 고철로 넘겨버리고 끝냈어." 기획 1편에서 만난 노동자 종철씨 증언은 남동의 주력 업종이 직면한 붕괴를 상징한다. 실제로 남동산단 '목재·종이' 업종은 최근 2년 새 수출액이 3분의 1토막(-66.7%) 났다. 기계가 멈추자 수출이 멈췄고, 수출이 멈추자 식판 위의 반찬도 부실해졌다.
김경배 인하대 건축학부 교수는 이를 '진화의 지체'로 분석한다.
"산업 환경 자체가 바뀌는 속도를 도시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노후 산단의 문제를 단지 '오래됐다'는 시간적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과거 1960년대 패러다임으로 설계된 산업단지의 모습으로 21세기의 AI, 로봇, 바이오산업을 담아내려니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는 진화의 과정인데, 남동은 그 진화의 동력을 정책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남동 가동률 7.7%p 급락과 같은 비관적 현실은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는 첨단 산업과 기존 뿌리 산업 사이의 '브릿지(Bridge)'가 끊어졌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김 교수는 남동이 지닌 '공간적 잠재력'에 주목한다. "남동은 제3경인고속도로와 인천대교를 통해 공항과 항만으로 연결되는 최적의 접근성을 가진 장소"라며, 단순히 낡은 공장지대가 아닌 인천의 진입 경관을 결정짓는 핵심 거점임을 역설한다.
결국, 남동 가동률 하락을 멈추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현상 유지'를 위한 보조금이 아니라, 공간의 성격을 완전히 재정의하는 '동력'이다.
▲장면 열, '오지 않는 청년'과 '곧 떠날 외국인'
남동산단 식당 한편, 서툰 젓가락질 하던 우즈베키스탄 청년 자호로씨는 산단을 지탱하는 위태로운 기둥이었다. 현장에 겨우 익숙해졌지만, 그에겐 비전문취업(E-9) 비자가 허용하는 '최장 4년 10개월'의 시한부 선고가 내려져 있다. 관리자들은 "쓸만하면 짐을 싸야 한다"며 탄식한다.
김주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를 '숙련과 제도의 속도 차'로 진단한다.
정부가 숙련 비자(E-7-4)를 확대하고 있지만, 현장 갈증을 채우기엔 속도가 더디다. 청년이 떠난 자리를 '잠시 머무는 외국인'이 투입되며 산단의 기술 전승은 맥이 끊겼다.
왜 청년들은 남동을 외면할까. 김 연구위원은 "이거 하느니 편의점 알바하겠다"는 청년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이 기대치와 너무 멀어진 결과다.
글로벌 수출 단가를 맞추기 위해 저임금을 고착화해온 중소기업의 구조적 한계도 크다. 이들에게 자동화나 AI 도입은 막대한 자산이 드는 중장기 과제일 뿐이다.
김 연구위원은 인천시가 지역 니즈에 맞는 '광역형 비자' 등을 설계해 숙련 인력을 확보하는 즉각적인 전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자호로 씨가 떠나지 않아도 되는 환경과 산업 고도화라는 두 톱니바퀴가 맞물려야 비로소 남동의 식판은 풍성해질 수 있다.
▲장면 열하나, '모래알 집적'을 넘어 'G밸리'의 길로
남동산단 식판이 다시 채워지려면 개별 기업의 분투를 넘어 산단 전체의 '판'을 짜는 전략이 절실하다.
우한성 한국산업단지공단 산단정책연구소 박사는 과거 중공업 기지에서 첨단 지식산업 거점으로 탈바꿈한 서울 구로공단(G밸리)의 사례를 주목한다.
G밸리는 아파트형 공장 도입과 업종 재편을 통해 비제조업 비중을 과반으로 끌어올리며 청년이 모이는 공간이 됐다.
반면 인천은 10인 미만 영세기업 비중이 너무 높고, 로봇·바이오 등 전략 산업의 구심점마저 부족한 '모래알 집적' 상태다.
"단순한 환경 개선을 넘어 로봇·우주항공 등 타깃 산업을 지원할 공공 인프라를 구축하고, 영세기업들이 대기업·중견기업과 상생하며 스케일업할 수 있는 거래 생태계를 복원해야 합니다"라는 게 우 박사 주장이다.
영세기업이 나가고 다시 영세기업이 들어오는 '질 낮은 회전'을 끊어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업종은 다르지만 인천만의 전략을 꾀할 때다. 집중 육성 산업을 사전에 선별해 유치하고 기업 간 시너지를 유도한다면, 남동의 낡은 담벼락 안에서도 청년들이 다시 마주 앉는 '성장의 식탁'을 차려낼 수 있다.
산업단지를 잘 아는 국내 전문가 4명은 다양한 얘길 해줬으나 방향은 같았다. 남동산단 위기는 '낡음'이 아니라, 대체와 순환이 실제로 작동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남동은 지금 그 작동 여부를 묻는 시험대 위에 서 있다.
<남동산단 마지막, 4편 예고>
"'사라지는 식판'에 대한 고민은 글로벌 제조 도시들이 이미 겪은 '예고된 성장통'이다. 이제 시선은 영국의 낡은 공장지대와 스페인의 폐항만, 일본의 지방 산단으로 향한다. 그들이 증명해 낸 '작동하는 장치'들은 남동에 어떤 처방전이 될 수 있을까. 4편에서는 스티브 포더길(Steve Fothergill), 마르크 산스 (Marc Sans Guanyabens), 고이소 슈지(小磯修二) 등 글로벌 석학 3인이 남동의 식탁을 다시 차릴 '세 가지 열쇠'를 제안한다."
/김원진·정혜리·홍준기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그래픽 이연선 기자 yonsony@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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