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성희롱 노출된 여성 프리랜서 아나운서·기상캐스터들

노지민 기자 2026. 3. 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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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비정규직 여성 진행자는 뉴스의 꽃인가' 프리랜서 아나운서·기상캐스터 노동실태
5일 국회에서 한빛센터, 민주당 이용우·이주희·조인철·임미애 의원 공동 주최 토론회 열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기상캐스터의 녹화 현장을 구현한 일러스트 이미지. 사진=Getty Images Bank

젊은 여성 방송인의 외모와 신체를 상품화하는 사회, 높은 경쟁률을 뚫고 꿈을 이룬 여성 방송인들이 고용 불안정과 성차별·성희롱을 겪고 있다. 이들에 대해 직업적 전문성을 인정하고 법·제도적 사각지대를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센터)와 더불어민주당 이용우·이주희·조인철·임미애 의원이 공동 주최한 '프리랜서 아나운서·기상캐스터 노동실태 토론회-비정규직 여성 진행자는 뉴스의 꽃인가' 토론회가 진행됐다. 토론회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세상을 떠난 고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의 어머니 장연미씨도 참석했다.

한빛센터는 지난해 7~8월 비수도권에서 프리랜서(비정규직) 아나운서·기상캐스터로 일한 경험이 있는 9명을 면접조사했다. 조사 참여자들은 모두 여성으로 평균 연령은 만 30.1세였으며, 방송 경력은 2년 이내인 경우가 3명, 2~5년이 2명, 5~10년이 2명, 10년 이상이 2명이었다. 입사 경쟁률은 방송사 본사의 경우 1000대1, 지역방송사에서도 500대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명의 조사 참여자들이 일한 29개 방송사 가운데 근로계약을 맺은 곳은 4곳, 그중에서도 정규직 근로계약은 3곳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용역 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조사에 참여한 이들은 대다수가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 업무는 고정된 방송 시간에 맞춰 이뤄지며, 방송사 내의 다른 인력과 협업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기상캐스터 노동실태 토론회-비정규직 여성 진행자는 뉴스의 꽃인가'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고용불안과 저임금 시달리며 '꾸밈노동' 강요 받아

일례로 기상캐스터로 일한 이들은 날씨 정보 확인, 원고 작성, CG 의뢰 내지는 작업, 헤어·메이크업 등을 도맡았다고 밝혔다. 기상캐스터 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리포터를 병행하는 경우에도 원고 작성과 섭외, 사전인터뷰 등을 수행했다.

화려해보이는 외양과 달리 저임금에 시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사 참여자들은 월 임금이 2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월 300만 원 이상을 벌려면 3개 방송사를 오가며 일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한 참여자는 “(라디오 리포터) 취재비를 1만5000원 정도 주는데, 한 번 출연하고 취재해서 녹음을 해오고, 녹음한 걸 다 받아 적어서 4~5페이지 원고를 만들어 15분 정도 방송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처음에는 임금이 160만 원 정도였는데 퇴사할 때는 100만 원이 안 됐다”고 털어놨다.

여성 프리랜서 방송인들은 대체 인력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근로계약을 맺지 못해 휴가를 보장 받지 못하지만, 방송사 사정에 따라서는 언제든 해고(계약만료)될 수 있는 고용불안 또한 겪고 있다고 했다. 한 참여자는 “계약서 조항들이 가끔 바뀔 때가 있긴 한데 (방송 사고를 내면) '원 아웃'이라고 되어 있다. 예전에는 '쓰리 아웃'이었는데 그런 조항들이 있다”고 말했다. 계약 갱신이 기대되던 상황에서 돌연 '해고'를 통보 받은 사례도 있다.

외모에 대한 압박 속에 치수가 제한된 협찬 의상 등을 입기 위해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고 '꾸밈노동'을 사실상 강요 받는 구조도 문제로 꼽힌다. 이는 건강 문제로도 이어진다. 한 참여자는 “(밥을 제때 못 먹어서 기초대사가 떨어지니) 몸살 기운처럼 으슬으슬 추운 기운을 너무 많이 느낀다”라며 “잔병치레를 되게 많이 하는 몸이 됐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에 취약한 환경…출산은 경력 단절 넘어 '종결'까지

특히 여성 프리랜서 방송인들은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에 쉽게 노출되고 취약한 고용형태 속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성희롱은 불특정 다수가 익명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게시판, SNS, 나아가 스토킹 피해로도 이어진다. 한 참여자는 “오늘 날씨를 내가 이렇게 표현하면 좋을까, 저렇게 표현하면 좋을까, 엄청 고민해서 한 건데. 막상 (대중의) 관심은 나의 몸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허탈함이 밀려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정규직 직원 및 사측 인사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해도 일이 끊길 우려에 대항하기 어렵다. 고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 사례처럼 직장 내 괴롭힘을 겪어도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30대에 접어들면 점차 밀려나는 짧은 수명, 진로에 대한 불안정성이 매우 높은 환경도 구조적 문제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 김영민 한빛센터장은 “육아휴직은커녕 연차(휴가)조차 보장되지 않는 고용형태에서 결혼과 출산은 경력 단절을 넘어 하던 일을 그만하게 되는 '경력 종결'이 되도록 만든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프리랜서 아나운서·기상캐스터들의 노동은 방송사에서 젊은 여성 청년의 노동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성적 대상화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역”이라며 “더욱 문제는 이러한 노동이 철저하게 노동법의 틀에서는 배제돼 있으며 그 어떤 제도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이라 지적했다.

▲고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 어머니인 장연미씨가 5일 '프리랜서 아나운서 기상캐스터 노동실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프리랜서 여성 진행자의 노동, 이미지 생산 아닌 전문 노동으로 재정의 필요

토론자로 나선 레나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처장은 방송사가 여성 진행자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원한다는 표현을 꼬집었다. “식료품에 사용되는 표현이 여성의 노동을 설명하는 말로 등장하는 것 자체가 방송산업에서 여성노동자가 어떻게 대상화되는지 보여준다”라는 것이다. 그는 '실루엣'이 드러나는 옷을 입는 여성 기상캐스터와 달리 MBC 남성 기상분석관은 정장 차림인 사례를 들어 “방송산업은 여성 진행자를 정보 전달을 잘 하게끔 만드는 역량을 지닌 노동자로 보기보다 시각적 이미지를 생산하는 매개체로, 소모품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거 MBC 아나운서 보조 업무를 맡은 경험이 있다는 그는 여성 리포터·기상캐스터의 의상에 대해 온라인에서 또는 스스로 자조적으로 의상을 '홀복'(성판매 여성의 접대용 의상을 일컫는 속어)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우리 사회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레나 사무처장은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에 오래 놓여 있을수록 '나는 그렇게 대우를 받아도 되는 존재구나'라는 인식이 심어진다. 실제로 권리가 없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말할 수 없는 존재로 길들여지는 것”이라며 “프리랜서 여성 진행자들의 노동을 단순한 출연이나 이미지 생산이 아닌 정보 전달 노동 개념으로 사고를 하며 전문 노동으로 재정의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권지현 방송작가유니온 영남지회장 사회로 '프리랜서 아나운서 기상캐스터 노동실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윤석열 정부 방통위가 지운 '방송사 비정규직 처우개선' 재허가 조건 되살려야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우선적으로 방송사, 미디어 프리랜서 구조 전반을 개선하는 노사정 및 전문가의 TF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또한 윤석열 정부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조건에서 삭제한 '정규직 인력 현황 및 근로실태 파악 자료 제출' 및 '비정규직 처우 개선방안 마련' 조항을 다시 복원하고 더 강화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이번 조사로 드러난 사이버불링과 같은 권리 침해 문제, 제도 개선 없이 지원할 수 있는 영역부터 바꿔나갈 것을 촉구했다. 일부 찬반 논란이 있지만 프리랜서 등 비임금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일하는사람기본법' 제정, 근로자성 추정제 등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방송사 프리랜서에 대해 연차나 병가에 준하는 '아프면 쉴 권리' 보장, 직업휸련 및 교육훈련 지원을 통한 노동시장 이동성과 경력형성 제도 지원 등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은 노동조합의 역할을 당부했다. “기상캐스터와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단기간에 독자적으로 조직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미 조직된 언론노조가 이 문제를 자신의 의제로 삼아야 한다”라며 “프리랜서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주변화한다면 과연 언론노조는 미디어 산업에 대한 공적 지원을 요구할 충분한 명분을 가질 수 있을까”라고 묻기도 했다. 관련해 세계언론노동조합연맹(IFJ)이 프리랜서를 중요한 노동권 지향 활동 대상으로 명확히 규정하며 불안정 노동 관행에 대항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5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의 '프리랜서 아나운서 기상캐스터 노동실태 토론회'에서 발언 중인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장. 사진=미디어오늘

고용노동부, ILO 국제협약 비준 및 프리랜서 처우개선 법제 추진

이 같은 요구를 들은 송유나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을 지상파 재허가 조건에 되살려야 한다는 요구에 관해 “방미통위와 그 내용들에 대해 협의했고 그에 대한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근로기준법에서 모든 프리랜서 분들을 보호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상황이기에 일하는사람보호법이라는 기본법을 제정하려 한다”라며 “중요한 국정 과제와 공약으로서 추진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 195호 협약을 비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송 과장은 관련해 “모든 사람들에 대해 인권과 존엄성을 바탕으로 괴롭힘과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천명하는 내용을 담은 게 ILO 195호 협약이다. 그 협약을 비준하는 과정에서 노사정이 당연히 논의할 것이고, 그 협약 비준을 위해서 우리나라 국내법은 어떻게 개선돼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조속히 설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MBC 여성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남성 기상분석관으로 대체된 현실

무엇보다 방송업계가 바뀌어야 한다. 이날 토론회에선 고 오요안나 캐스터 사망 이후 MBC가 기존 프리랜서 기상캐스터를 내보내고 남성 기상분석관을 고용한 데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고인 어머니 장연미씨는 “MBC하고 기상캐스터들이 좋은 고용 환경을 갖기 위해 여러가지 협의하고 얘기했는데 (MBC) 마음대로 기상캐스터는 없애고 안나와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들은 직장을 잃었다”라며 “한 사람이 죽었음에도 우리 안나처럼 힘든 환경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또 생긴다고 생각하니 제가 겪은 입장에서는 너무 힘들다. 당하고 있는 채림이나, 가영이나, 다른 캐스터 분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소위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제도를 MBC에서 새로운 기상기후전문가 제도로 전환하는 과정이 당사자 목소리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 방향을 잡은 게 아니고, 일방적인 방향 설정으로 인해 과정 자체도 여러 논란이 있었는데, 방송사가 좀 더 근본적인 자기 성찰이 많이 필요하다”라며 “법제도라든지 정책 행정 영역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챙겨가겠다”고 했다.

같은당 임미애 의원 역시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건을 보면서 여성노동자를 진짜 방송의 '꽃'으로 쓰는,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문제에 대해서 분노했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서 한 번 더 분노하는 계기가 되었다”라며 “지속적으로 여러분이 내는 목소리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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