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프로그램 만들고 내 손으로 폐지시켜" 지역방송 PD가 토로한 이유
지역중소방송 콘텐츠 경쟁력 강화 사업, 지속성, 다양성 부족 비판 나와
과도한 자부담 비율, 행정 편의주의 시스템, 단년도 지원 방식 지적돼
부족한 지원 예산 근본 원인 "기재부 예산 삭감…해법 찾기 어려워"
이훈기 의원 "행정체제 개편, 지역방송 역할 정책적 배려 있어야"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 지원해 온 지역중소방송 콘텐츠 지원 사업이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원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과도한 자부담 비율, 일회성 지원 방식, 행정편의주의적 시스템과 더불어 절대적인 지원 예산 부족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지적은 지난 4일 오후 국회에서 진행된 '지역·중소방송 콘텐츠 진흥의 패러다임 전환'(더불어민주당 이훈기·이정헌·이주희 의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지역방송협의회 주최)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실장은 2014년부터 시행돼 온 지역중소방송 콘텐츠 경쟁력 강화 지원 사업의 실효성과 지속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역성과 공익성 고려하지 않는 경쟁력 강화 사업 평가 기준?
우선 경쟁력 강화 사업의 평가 기준이 지역방송의 역할인 지역성과 공익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령, '지역성 지수' 평가 부문 중 '방송프로그램의 우수성' 항목은 수상실적과 국내외 판매 유통실적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이를 두고 김 실장은 “지원사업 시행을 위탁받는 한국전파진흥협회(RAPA·라파)가 방미통위에 보고하기 수월한 양적 지표일 뿐”이라며 해당 기준으로 콘텐츠의 성과를 환원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지역 내 프로그램 제작 관련 업체 및 기관과의 협력 실적'을 통해 지역밀착성 확보 노력을 평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수도권에 집중된 제작사 현황을 간과한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경쟁력 강화 사업을 통해 제작된 콘텐츠가 지속성을 갖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김 실장은 “지난 5년 간 지원한 약 206건의 프로그램 및 콘텐츠 중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건 12개 뿐”이라며 “82개의 프로그램 및 콘텐츠는 지원 이후 2년 이상 편성되지 못하고 중단됐고, 결국 206개 중 112개는 지원 당해에만 편성되는 등 일회성 지원이었다”고 말했다.
과도한 자부담 비율도 지속성을 어렵게 하는 요건 중 하나다. 가령, 모든 지원 분야에 대한 방송사 자부담 비율은 20%인데, 기존 제작 중인 정규물로 지원할 경우 자부담은 50%까지 높아져 방송사 입장에선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엄격한 지원 조건과 경과 보고, 성과 평가 등 행정 편의주의적인 시스템이 창의성보다 행정 절차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경직성으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나왔다. 1년을 기한으로 하는 단년도 방식의 한계도 지적된다.

“나의 시계는 라파의 시계…프로그램 발전·확장할 수 없다”
토론회를 찾은 지역방송 종사자들도 절차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19년 차 PD인 김우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충북지부장은 “나의 시계는 라파의 시계”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설에는 집에 가지 않고 제작 지원 공모 기획안 마감에 박차를 가하고, 4월 정도 선정이 되면 제작해 11월엔 반드시 방송을 내고, 12월~1월까지 정산 작업과 동시에 이듬해 공모를 준비하는 '라파의 시간'으로 10년 넘게 살고 있다”며 “안타깝게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심화, 발전, 확장할 수는 없다. 매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프로그램을 내 손으로 폐지시키는 역할을 수년 동안 해왔다”고 말했다.
고질적인 인력 부족은 지원사업 응모조차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김 지부장은 “인력이 부족해서, 공모를 가져오면 6개월 동안 공모에만 매진해야 하니까 부담스러워서, 기획안이 훌륭해 3억 원 정도 제작비를 받아오면 어마 무시한 자부담이 있어서 응모를 꺼리기도 한다”며 “MBC충북도 내가 지부장을 맡으면서 사람이 한 명 빠져 지난해 응모를 아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영훈 전국언론노조 TBC지부장 역시 “(회사의 인건비 절감에) 노동조합이 반대 의견을 내는 것도 임계점을 지났다”며 “제작비도 급감하고 있다. 경북에서 중앙방송의 웬만한 프로그램보다 더 시청률이 좋은 TBC 대표 프로그램도 최소 3박4일 출장을 소화해야 양질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데, 제작비 때문에 제작 일정을 줄이거나 당일 제작하는 등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결국 부족한 지원 예산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국회에서 의결한 207억 원의 지역중소방송 콘텐츠 경쟁력 강화 지원 사업 예산을 152억 원 삭감한 55억 원으로 확정했다. 김 지부장은 “2014년부터 12년 동안 누적 500억 원, 한 해 약 40억 원을 39개 지역중소방송사들이 나눠 가진다”며 “상황이 그나마 나은 방송사에서 지원을 많이 가져가면, 나머지 방송사는 비용이 더 줄어든다. 결국 절대적 총액의 부족이 중요한 문제다. 기재부에서 152억 원을 예치하고 예산을 줄인 건 아무리 토론을 한다고 해도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입법기관, 행정기관 당연한 의무로 패러다임 바꿔야”
기존 지원 사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동원 실장은 지역중소방송 콘텐츠의 다양성과 지속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비롯한 글로벌 OTT 콘텐츠는 대규모 가입자 확보와 유지를 위해 특정 장르와 포맷에 집중되고 있다”며 지역중소방송에 보다 다양한 장르와 실험적 콘텐츠 포맷에 대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자율적 콘텐츠 제작을 위해선 지방정부와 지역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재원 마련도 중요하다. 또한 김 실장은 “지역중소방송사마다 오랫동안 편성해 온 콘텐츠 질적 향상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라파와 방미통위에서 TF를 구성을 통해 지역중소방송사의 콘텐츠 다양성, 창의성 지원사업을 새로 신설하고, 152억 원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최근 지역중소방송 광고 결합판매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헌법재판소 결정도 언급됐다. 박 지부장은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김형두 재판관의 의견이 더 와닿았다”면서 “기금의 배분 구조를 조정하거나 우선순위를 변경해 지역중소지상파 방송 사업자에 대한 지원 규모를 확대하는 게 가능하다고 했고, 지역중소방송사 지원을 위한 별도 기금 신설, 세제상 혜택 부여, 규제 완화 등의 방법을 말했다”며 “지역방송이 힘드니까 도와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입법기관과 행정기관의 당연한 의무라는 개념으로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측에선 다소 원론적인 대답을 내놨다. 이동석 방미통위 지역미디어정책과장은 “앞으로 재정당국과의 협의와 추경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예산이 확보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며 “집행 과정에서의 실무 부담을 최대한 감소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천석기 라파 방송미디어진흥본부장은 “지역 민주주의의 보루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지역방송을 지원하는 정부 예산으로 40억 원은 적다”며 “내년부터 제5차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이 시행되는데, 공급자, 수요자,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다른 형태의 지원 계획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5극3특 체제와 더불어 지역방송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토론회를 주최한 이훈기 의원은 “지역 여론 형성의 장으로써 지역방송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므로 잘 맞물려 가야 한다”며 “행정통합이 되는 곳에 연간 5조 원씩 20조 원을 지원하는데, 지역방송 몫 예산도 분명히 필요하다. 방발기금도 원상회복 시키고, 행정체제 개편에 있어서도 지역방송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정책적, 법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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