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금이 멈춘 날, 취재는 시작됐다"

“그때 왜 멈추지 못했을까요.”
한 피해자의 이 질문은 취재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았다. 사건을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고수익을 믿었다”가 아니라 “의심할 틈이 없었다”였다. 그 차이가 이번 기획의 출발점이었다.
처음 제보를 받았을 때만 해도 지역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투자 분쟁으로 생각했다. 고수익 약속, 출금 지연, 내부 갈등. 익숙한 단어들이었다. 그러나 피해자 몇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느낌이 달라졌다. 그들은 단순히 돈을 잃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에 참여했는지조차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출자’, ‘지분’, ‘공동 분배’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실제 사업 구조는 모호했다.

대구광역시 동구에 본사를 둔 DK그룹은 연 40% 이상 수익을 보장한다고 홍보했다. 출자자는 회사의 주주가 되고, 매일 이익이 배당된다고 했다. 일부는 실제로 초기 수익을 지급받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출금이 지연됐고, 시스템 점검과 신규 사업 투자라는 명분이 붙었다. 질문이 많아지자 단체 채팅방에서 퇴장 조치가 이뤄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취재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구조’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투자 설명회 자료, 송금 계좌, 배당 내역, 단체 채팅방 공지 등을 하나씩 맞춰봤다. 출자금은 회사 명의가 아닌 대표 개인 명의 계좌로 입금된 사례가 있었고, 지급된 수익 일부는 신규 출자금으로 충당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법률 전문가 자문을 통해 유사수신행위 해당 여부를 교차 확인했다.
하지만 사건을 ‘의혹 제기’ 수준에서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유사수신 범죄는 늘 반복된다. 이름과 간판만 바뀔 뿐 구조는 비슷하다. 그래서 단발 보도가 아니라 ‘서민 울리는 유사수신’이라는 제목의 기획 시리즈로 방향을 잡았다. 피해 사례 나열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위험 신호를 인식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짚는 방식이었다.

취재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피해자 상당수는 여전히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완전히 접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화가 되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실명 공개는 물론, 녹취 동의도 쉽지 않았다. 기자로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보도가 누군가의 마지막 기대를 무너뜨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표현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혐의를 단정하지 않았고, 피해자 주장 역시 교차 확인을 거쳤다. 선정적 표현을 배제하려 애썼다. 사건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면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도 이후 예상치 못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피해자들이 서로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기사로 구조를 이해하게 됐다”는 연락이 이어졌다. 단순한 투자 실패가 아니라 조직적 구조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결국 피해자들은 집단 행동에 나섰고, 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한 수사와 피해자 보호를 촉구했다. “기사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취재 과정에서 또 다른 제보도 접했다. 관련 피의자 중 한 명이 수도권에서 유사한 방식의 모임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대구 재판을 방청하겠다는 연락도 왔다. 사건은 지역을 넘어 확산 가능성을 보이고 있었다. 유사수신 범죄를 지역 문제로 축소할 수 없는 이유다.

◇진화하는 범죄에 질문은 ‘진행형’
이번 취재를 하며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했다. “나는 과연 멈출 수 있었을까.” 고금리 시대, 주변의 성공 사례, 안정적 수익을 강조하는 설명 속에서 끝까지 의심할 수 있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유사수신 범죄는 탐욕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건드린다. 그리고 판단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지역 언론의 역할은 때로 불편하다. 누군가는 “왜 지금 보도하느냐”고 묻고, 또 다른 누군가는 “왜 더 세게 쓰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 사이에서 기자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번 기획은 특정 인물의 유죄를 단정하기 위한 보도가 아니었다. 구조를 드러내고, 반복을 막기 위한 기록에 가깝다.

취재와 글이 끝났다고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다. 재판은 진행 중이고, 피해 회복은 여전히 과제다. 언론의 역할은 결과를 단정하는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조를 보여주고, 신호를 짚어주고, 독자가 한 번 더 멈추게 만드는 것. 이번 기획이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브레이크’가 되었기를 바란다. 유사수신은 계속 진화한다. 그렇다면 경고 역시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번 취재는 끝났지만, 질문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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