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끝났는데 6개월 만에 받은 판결문”…판사가 ‘늑장 송달’

고민주 2026. 3. 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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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재판에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판결문이 수개월간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승소해 '피고는 원고에게 토지를 넘기고 건물을 철거하라'는 가집행 명령이 내려져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판결문이 송달되지 않으면 선고 이후 다음 절차로 넘어가는 길이 막혀버립니다. 재판에선 짧게 결과만 알려주기 때문에 구체적인 판결 내용을 알려면 반드시 판결문을 받아야 합니다.

근무시간 음주 소동 등 부장판사들의 비위행위로 구설에 올랐던 제주지방법원에서 또 벌어진 일입니다.

KBS 취재 결과, 제주지방법원 민사3단독을 맡았던 김 모 부장판사는 판결 선고 이후 최대 6개월간 판결문을 송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통상 하루이틀이면 판결문을 등록해 송달하는데, 이 절차가 수개월씩 지연된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승소 판결 받았지만"…석 달 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제주 중산간의 한 임야 소유자였던 A 씨는 2020년 B 씨에게 9천만 원에 땅을 팔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계약금 천5백만 원은 받았지만, 잔금 7천5백만 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A 씨는 결국 자신의 토지를 돌려달라며 2023년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제주지방법원은 2년여의 재판 끝에 지난해 11월 27일,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말소하고 건물을 철거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가집행도 가능하다는 판결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선고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A 씨는 선고 이후에 곧바로 판결문을 받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염없이 판결문을 기다린 A 씨, 석 달 가까이 지난 뒤에야 판결문을 받았습니다.

그 사이 A 씨는 토지 인도나 매매 등 어떤 후속 절차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판사님들은 우리네 심정을 잘 모르잖아요. 긴 소송절차가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이 생겼어요. 우울증 약도 먹는 상태였는데, 판결문이 늦게 도착해서 더 어려웠어요. 토지 인도를 빨리빨리 해결하고 땅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진행하지 못했어요."
-소송제기 당사자 A 씨-

■ 선고 6개월 만에 받은 판결문…"답답한 기다림"


그런데 판결문을 제때 받지 못한 사람은 A 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여금 청구 소송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1심 선고 이후 판결문을 받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고 취재진에게 토로했습니다. 여러 차례 법원에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은 같았습니다.

"판결문이 아직 등록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재판부에 전화해서 언제 판결문이 나오느냐고 물어보면 아직 등록되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됐다"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판결문이 송달되지 않는 사이, 의뢰인은 변호사에 대한 신뢰도 잃었습니다.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판사와 짜고 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결국 6개월 뒤에야 패소 판결문을 받은 의뢰인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커졌습니다.

"(의뢰인이) 판결문을 받고도 판결문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선고 후의 결과에 맞춰서 판결문이 작성된 게 아니냐' (재판부) 신뢰 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담당 변호사-

또 다른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흔 살 노인을 대리했던 한 변호사는 “판결 선고 두 달 뒤에야 판결문을 받아봤다"며, 당사자가 고령이라 판결문 송달 전에 건강이 악화될까 걱정됐다”고 말했습니다.

패소 이유도 모른 채 두 달 가까이 기다리는 동안, 송달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 “보통 하루이틀”…6개월 지연은 매우 이례적


법조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극히 이례적이라고 말합니다. 통상 민사사건은 선고 이전에 판결문을 미리 작성하고, 선고 이후 하루나 이틀 안에 법원 시스템에 등록한 뒤 당사자에게 송달합니다. 민사소송법 제206조에도 '판결은 재판장이 판결원본에 따라 주문을 읽어 선고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선고된 지 6개월이 넘도록 판결문이 등록되지 않는 건 사실상 있어선 안 되는 일인 겁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판결 원본에 따라 선고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판결문을 미리 써놓는다"며, "2~6개월 판결문 송달이 늦어지는 건 결론만 생각하고, 판결문을 구체적으로 안 써놓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판결문 송달이 늦어지면 재판이 사실상 끝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 민사소송에서는 가집행 선고가 내려지면 승소한 원고가 곧바로 강제집행을 진행할 수 있지만, 판결문이 없으면 토지 인도나 건물 철거 같은 절차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판결문 송달 지연은 소송 당사자의 권리 행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금전 지급 판결의 경우 선고 다음 날부터 연 12%의 지연이자가 붙기도 합니다. 판결문 송달이 늦어질수록 당사자가 부담해야 할 금전적 부담도 커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판결문 송달 지연이 소송 당사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는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최정규 변호사는 “송사에 휘말린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당사자의 고통이 그만큼 길어지는 것”이라며 “ 판결문 송달에 몇 달이 걸린다는 것은 판사가 본연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당사자 입장에서는 재판이 끝났는데도 계속 재판 속에 묶여 있는 셈입니다.

■ 선고기일만 7번 변경…1년 6개월 뒤 선고


해당 판사의 문제는 판결문 송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김 판사는 민사 사건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선고기일을 7차례 변경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2022년 11월 제기된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에서 1심 선고는 2024년 6월로 예정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직권으로 선고를 미뤘고, 선고는 6월에서 8월, 다시 10월로 연기됐습니다. 이후 변론이 재개되면서, 재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계속된 선고 기일 변경 끝에, 1심 선고는 결국 선고기일이 잡힌 뒤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내려졌습니다. 선고 기일이 7차례 바뀌면서, 소송제기 3년 만에 1심 선고가 내려진 겁니다.

문제는 원고와 피고 모두 기일 변경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기일이 변경됐다는 겁니다. 담당 변호사는 “선고기일이 계속 변경됐는데 이유가 없었다”며 “선고가 미뤄질 때마다 답답했다”고 말했습니다.

■ "재판 지연 해소"…제주지법 "경고만?"


제주지방법원은 재판 지연 문제가 반복되자 김 판사에게 지난해 3월 구두 경고 조처를 내렸습니다. 이후 문제가 이어지자 지난해 8월 2차 구두 경고, 그리고 지난해 12월 서면 경고까지 내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제주지방법원은 판결문 늑장 송달과 재판 지연 문제와 관련해 대법원 윤리감사실에서 필요한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해당 판사는 "밝힐 입장이 없다"고 전해왔고, 이번 2월 인사 때, 인천지법으로 발령이 나 제주를 떠났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재판 지연 해소와 신속한 재판을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재판 현장에서는 판결문 송달 지연과 선고기일 반복 변경 같은 사례가 드러나면서 사법부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촬영기자 고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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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주 기자 (think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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