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칩플레이션(Chipflation)과 칩플레이션(Cheapflation)

최근 반도체 시장의 급성장으로 인해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반도체산업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일반 소비자와 반도체 수요 기업들이 체감하는 물가 부담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범용 메모리반도체 단가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고정 판매가격은 불과 몇 달 사이에 세 배 이상 상승했다. 일반적으로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수요 회복과 함께 점진적으로 반등하는데, 이번 상승은 속도와 폭이 모두 이례적이다.
오픈AI를 필두로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며 AI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가 폭증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은 수익성이 높은 HBM에 투자를 집중했다.
문제는 그 이면이다. 코로나19 이후 IT 기기 수요 둔화로 반도체 수요도 줄어들었고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의 기술력 향상으로 범용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내 기업들은 범용 제품 투자에 다소 소극적으로 전환했고 공급이 줄어들어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전기·전자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경쟁적으로 재고를 확보하려고 나서기 시작했다. 공급 감소에 가수요까지 발생하면서 가격이 더욱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다. 이렇게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인해 전자기기 전반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칩플레이션(Chipflation)이라 한다. 이는 반도체 칩(Chip)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흥미로운 것은 또 다른 개념인 칩플레이션(Cheapflation)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Cheapflation은 ‘Cheap(싸다)’과 ‘Inflation(물가 상승)’의 합성어로 같은 품목 내에서도 가격대가 낮은 상품의 상승률이 더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반도체 시장이 그렇다. 현재 AI 관련 투자는 대자본을 보유한 빅테크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어 절대가격은 높으나 가격 상승 폭은 크지 않다. 반면, 범용 메모리반도체는 공급 부족과 가수요로 인해 단가가 폭등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저가 제품의 가격이 더 큰 폭으로 상승’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비용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구입했던 PC와 전자기기의 교체 시기가 도래하고 있지만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인해 신제품 가격이 인상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또한 반도체 경기에도 부정적이다. AI 투자가 반도체 시장을 견인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PC·스마트폰·가전 등 기존의 주요 수요 산업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특정 분야에 의한 성장은 지속가능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고부가 제품 판매를 통해 높은 수익률을 확보하는 것이 당연한 전략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의 균형을 외면할 수도 없다. 범용 제품의 공급을 과도하게 줄이면, 가격 급등과 수요 위축이 반복되며 산업 전체의 성장 기반을 약화할 수도 있다. 따라서 AI로 인한 반도체 호황 속에서도 수익 극대화 전략만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균형 잡힌 공급 전략이 필요하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경제안보 통상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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