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소설 '백범 강산에...' 역사의 진실 가리지 않는 '거인의 힘' 담아
ㆍ10년 여 현장 취재 등 구상, 5년 여 집필 끝에 '대서사'
ㆍ김구 '문화강국' "문화는 누구도 억압하지 않는다"
꾹꾹 눌러 쓴 문장은 눈보라 치는 광활한 대륙에서 싸우고 고뇌하는 인간 김구의 숨결조차 느껴지는 듯하다. 서사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듯한 임순만 소설 '백범, 강산에 눕다'(한길사)를 두고 하는 얘기다. 이 작품은 역사의 진실이 가리지 않는 창작이 정본 텍스트의 힘을 갖는다는 걸 보여준다.
이 소설은 10여 년의 구상과 5년여의 집필 끝에 완성됐다. 200자 원고지 2200장에 달하는 장편이다. 그것도 4500매 분량 초고를 다듬고 다듬은 것이다. 역사의 거인 김구의 삶의 여정이 묵묵한 어른의 걸음걸이처럼 기품 있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올해는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이자 2026년 유네스코가 정한 '올해의 인물'이 김구이다. 이 시점에 원로 출판인이자 출판문화운동가 김언호(82) 한길사 대표가 정독해 3번이나 읽고 가슴이 뛰어 어려운 출판 환경 속에서도 앞뒤 안 가리고 출판한 대하급 장편 소설이기도 하다.

- '백범, 강산에 눕다'는 어떤 소설인가.
"나라를 빼앗겼던 시대에, 그리고 해방이 되면서 곧바로 남북이 분단된 우리 민족의 가장 억울하고 슬픈 시대에, 김구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가들이 나라의 독립과 분단 극복을 위해 투쟁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김구를 잘 모르는 청소년들도 있다. 김구는 어떤 인물인가.
"많은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백범을 주인공으로 한 것은 백범이 참으로 강직한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또한 세계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백범만큼 강직한 분은 매우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의 성격을 소설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백범의 성격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태산부동(泰山不動)의 사람, 즉 태산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직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원시적 창의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백범은 현대식 교육을 받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서당 공부 몇 년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시대의 현자들이 모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는 문지기가 되겠다고 찾아갔습니다.
그런 그가 나중에는 주석, 즉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남의 땅 남의 하늘 아래서 군대를 창설했고, 좌우 합당을 성공시켰을 만큼 남다른 창의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장성한 남자들이 속상하고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 그를 찾아가 소리 내어 엉엉 울 수 있는 분입니다. 백범은 그만큼 한국인을 품을 수 있는 품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성격에 의지해 소설을 썼습니다."
- 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나.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1995년 여름에 중경 임시정부 기념관이 복원됐을 때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찌는듯한 더위와 습도 속에 헉헉거리며 임정 청사를 방문했을 때 초라한 모습을 보고 참으로 눈물겨웠습니다. 그때 뭔가를 써보고 싶다는 의욕이 꿈틀거렸습니다."
- 구체적으로 김구의 어떤 면모를 그리고 싶었나.
"김구 선생의 나라 사랑 정신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나라사랑 정신'이라고 하면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백범 선생의 세 가지 성격 즉, 한번 결심하면 흔들리지 않는 태산부동의 사람, 원시적인 창의력을 가진 사람, 다 큰 성인들이 기가 막히고 말이 안 나올 때 찾아가서 엉엉 울고 싶은 사람, 이 세 가지 성격이 이 소설을 이끌고 갔습니다."
- 올해는 유네스코가 기념하는 백범 김구의 해다. 여기에 맞춰서 소설을 출간한 것인가.
"방금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 소설을 지난해 초여름에 마쳤습니다. 당시 원고지 4500장 분량이었습니다. 독자들에게 분량이 너무 많아 줄이고 줄여서 책에 수록된 분량은 약 2200장가량 됩니다. 올해가 유네스코 선정 백범 기념의 해라는 소식은 지난 연말에 뉴스를 접하게 됐습니다."
- 줄이는데 어렵지 않았나.

- 이 소설에서 김구 선생은 영웅인가.
"김구 선생은 영웅이 아니라 시대의 책임을 끝까지 떠안는 사람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사람들의 책임은 나라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직후 나라가 분단됐을 때, 사람들의 책임은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김구는 그 책임을 조금도 외면하지 않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 책임의 자리를 지키려고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임시정부 국무령이었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늘 굶주렸고, 동포들의 집을 전전하면서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그가 얻어먹는 것을 부끄러워했다면 임시정부는 문을 닫았을 것입니다.
광복군은 정규 군대로서 한계가 있었으며, 해방 이후 그는 정치적 주도권을 쥐지 못했고, 분단을 막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술수를 찾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이 말하는 김구의 위대함은 성취에 있지 않습니다. 책임져야 하는 민족의 자리를 끝내 외면하지 않고 감당했다는 사실, 바로 그 점에 그의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작가가 그린 백범 김구의 삶에서 오늘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을 요약해달라.
"첫째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끝까지 책임을 졌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백범 김구 선생을 독립운동의 상징, 도덕적 위인, 암살당한 비극의 인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제가 파악한 백범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은 업적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백범은 끝까지 민족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둘째 백범은 '정치적인 이익'이 아니라 '윤리의 최후선'을 중시했다는 점입니다. 백범에게 정치란 집권을 위한 계산이 아니라 지켜야 할 윤리를 떠맡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윤리의 하한선'을 고수하는 태도입니다.
셋째 백범은 분단을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백범의 분단 인식은 놀랍도록 냉정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남과 북이 만나지 않으면 같은 민족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이 나지 않더라도 분단은 영구화된다. 시간이 지나면 증오와 분단 체제가 굳어진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평양에 가서 남북회담에 실패하면 실패한 기록이 남을 것이고, 그런 시도가 쌓이면 누군가는 그 벽을 넘어설 것이다.' 이것은 낭만이 아니라 역사 감각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자각입니다."
-'우리 민족의 가장 억울하고 슬픈 시대'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오늘날 한국은 세계 경제권 15위를 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제 강국의 부강한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지금 우리는 오천 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민족수난기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우리가 한때 외국의 침략을 당해 왕실이 피난 다닌 적이 있었지만, 통째로 40여 년 동안 외국의 식민 지배 아래 있었고, 독립되자마자 바로 남북이 분단되어 80년이 넘게, 이제 1백 년이 가까워지도록 민족이 나뉘어 원수처럼 산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 민족 수난을 극복해야 하는 의무가 지워져 있습니다."
- 이 소설을 쓰는데 힘들었던 것은 어떤 점인가.
"집필 기간이 오래 걸리고 자료를 찾아 확인하는 작업이 어렵긴 했습니다. 그러나 집필 과정은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독립지사들과 함께 호흡하며 대화하는 날들이 그윽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상상력이 고갈되었다고 생각되면 백범기념관이나 독립지사들의 묘지, 사직동 우당 이회영 기념관이나 양평 몽양 기념관 등 유적지나 기념관을 찾아다니며 힘을 얻곤 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받쳐주는 힘은 놀라울 정도도 대단했습니다."
- 이 소설의 구성이나 특징은 어떤 것인가.
"이 소설은 24개의 단편이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형식으로 짜여 있습니다. 시간의 순서를 따라가는 단순한 연대기 소설이 아니라 미학적 구조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구성을 택했습니다."
- 백범 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였다는 일부의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나.
"유네스코는 백범의 탄생 150주년인 2026년을 '유네스코 세계 기념의 해'(Jointly commemorated with UNESCO)로 지정했습니다. 김구 선생의 평화 사상이 유네스코의 이념과 부합한다는 점을 인정해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공식 기념 인물로 선정한 것입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베트남의 호치민이 기념 인물로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백범이 테러리스트였다면 세계적인 기구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백범을 테러리스트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대표적으로 그가 21세 때인 1896년 3월 9일 황해도 안악군의 치하포라는 포구에서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처단한 사건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현재 학계의 중론은 쓰치다가 계림장업단 소속의 일본 상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순수한 상인이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1895년 10월 8일 민 황후가 경복궁에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 군인과 낭인 세력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조선의 민심이 험악해지자 약 다섯 달이 지난 1896년 2월 일본 정부는 조선 내륙지방에서 장사하는 일본 상인들에게 인천으로 철시하라는 훈시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훈시가 내린 지 한 달이 지나서도 쓰치다는 철시하지 않고 일본도를 차고 한복으로 변장해 한국인 행세를 하며 다녔습니다.
그가 순수한 상인이었는지, 일본 상인을 가장한 군인이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당시 김구는 쓰치다를 시해한 후 숨지 않고 떳떳하게 시해 이유를 설명하고 이름과 주소를 적은 방을 현장에 붙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3개월이 지나서 집에서 검거됐습니다. 그래서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의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건 24년이 지난 1920년 상해 일본 총영사가 '경무국장 김구는 민비사건에 분개해 일본 장교(소위)를 살해한 관계자로 형벌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본국에 보고한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 쓰치다는 일본 군인이라고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때 쓰치다가 가진 돈은 800원가량이었습니다.
김구가 이 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살펴보면 그가 단지 강도였는지 의인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김구는 800원 중에서 집으로 돌아갈 나귀 한 마리를 사는데 75원을 쓰고 나머지는 전부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일본은 1592년 임진왜란 말기에 진행된 강화협상에서 조선 8도 중 4도를 할양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무도한 일본이지만 조선은 이웃 나라와의 선린을 위해 전쟁 후 200년 동안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해 우리의 문물을 전해줬습니다.
한 번에 몇백 명씩 파견하는 조선통신사에는 막대한 국고가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은 일본은 조약을 맺은 상대국의 왕실에 난입해 왕비를 시해했습니다. 이렇게 극악한 일본에 대해 생각이 있는 백성이라면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진실은 불분명하지만, 살해된 일본인이 단순한 일본 상인이었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이 양면의 안타까움을 다 들여다보며 작품을 썼습니다."
- 이 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가.
"이 소설에 가공의 인물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태항산 전투에서 중국인 부부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들의 기록은 있지만 이름을 찾기 어려워 중국 이름을 붙인 것은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은 모두 사실에 근거했습니다. 그 바탕 위에서 소설을 썼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이나 사실은 세세하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사건은 역사적인 것이지만 이것을 이야기하는 세부적인 힘은 모두 소설적 상상력에 의한 것입니다."
- 소설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소설은 연구서나 평전이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건 이면의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진실은 소설적 형상화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옳다', 아니면 '이것은 그르다' 할 때 그 옳고 그르다는 진술은 선언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옳고 그름은 세부적인 형상화를 통해서만이 그 실체적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 소설적 진술, 소설적 진실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 소설이 '영웅 김구'를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인간의 모습', 즉 성격입니다. 주인공을 영웅적으로 묘사한다고 해서 영웅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찮고, 실수하고, 후회하고, 번민하는 모습을 통해 주인공의 성격이 살아납니다.
그러나 그가 여간해서는 말을 아끼고 '태산부동'의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이런 것과는 상반되는 면이 있습니다. 이 양자가 충돌하며 흔들리면 소설의 축이 무너집니다. 그 중심을 살려 나가는 것이 이 소설 집필의 매우 중대한 포인트였습니다."
- 21세기에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건 철 지난 사상이 아닌가.
"민족주의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들어 한 때 민족주의가 경시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갈등에 대비하려면 민족주의를 잘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에서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18세기에 나왔는데, 우리는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부터 민족주의 개념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드문 역사적인 국가입니다. 민족주의는 분단 시대를 사는 지금의 우리가 더욱 뚜렷하게 이해해야 할 개념입니다. 다만 폐쇄된 민족주의, 즉 다른 종교와 다른 민족에게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구의 '문화강국론'이 지금 K-컬쳐의 확산과 함께 세계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소설의 23장 '비원'에 나오는 김구의 문화강국론은 오늘의 K-컬처를 해석하는 몇 가지 윤리적 좌표를 제시한다고 봅니다. 김구의 문화강국론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존재 방식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문화강국론은 단지 '문화가 중요하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강해져서 남을 누를 수 있는 문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핍박당하지 않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문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김구가 말하는 문화는 국가 정책이 아닙니다.
백범의 문화강국론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어요. '문화는 누구도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고 억압받지 않는 말과 글과 노래와 품위는 우리를 높인다.' 이것은 오늘날 K-컬처의 정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1948년 평양 남북정치회담 1차 4김 회담에서 북측의 김두봉이 시를 낭독하자 남측의 김규식의 답시를 낭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시는 실제의 시인가.
"그 시는 제가 창작한 것입니다. 김두봉의 시는 그가 조선의용대 시절 태항산에서 외치던 기개를 참고해 만든 것입니다. 김규식의 시는 1930년대 그가 사천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칠 때 장편 시집 '양자유경(揚子幽景)'을 낸 적이 있는데, 그 시편들의 분위기를 참조해 창작했습니다.
전정희 문화전문 기자 oklaka@oknews.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