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은 색… 신선함 담은 맛[이우석의 푸드로지]

2026. 3. 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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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녹색 음식
엽록소·식이섬유 등 영양소 풍부
건강식·자연식·웰빙푸드 이미지
봄철 맞아 봄동 비빔밥·쑥국 인기
한국인밥상엔 잎채소·나물·해조류
루콜라·아스파라거스 지중해 대표
말차 등 녹색음료 세계적으로 유명
경남 통영 동해식당의 도다리쑥국.

음식을 느끼고 기억할 때 맛과 향만이 이를 심상화하는 것이 아니다. 색(色)도 분명한 몫이 있다. 사철에 연록이 번지는 춘삼월을 맞아 식탁에도 일제히 그린(green)의 물결이 올랐다. 나물 반찬이며 쑥국이며 계절 별미 두릅까지 온통 파릇파릇한 것이 창밖 들판을 빼닮았다. 요즘 두쫀쿠(두바이쫀득쿠키)보다 열기가 뜨겁다는 ‘봄동 비빔밥’만 봐도 눈이 시원해진다. 참고로 두바이쫀득쿠키 안에도 진한 녹색의 피스타치오 스프레드가 들어간다.

흔히 음식을 접할 때 맛을 우선 연상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색으로 판별하게 마련이다. 잘 익은 과일과 새빨간 양념은 시각으로 우선 구분하고 이후에 향기를 느끼고 맛을 보는 까닭이다. 색은 직관적이기에 어떤 감각보다 가장 먼저 식욕을 자극한다. 그래서 식물영양소가 부족해 음식에 색을 제대로 입히지 못할 때 인간은 인공색소를 첨가하기도 한다.

빨간색은 단맛, 주황색은 신맛, 녹색은 청량함 등 색상에 따라 각각 기대하는 맛도 다르다. 이럴 때는 맛에 따라 색을 맞추기도 한다. ‘맛있게 느껴지기’ 위함이다. 인간의 미식 행위에 있어 색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바로 ‘컬러푸드(color food)’다.

공심채 볶음.

컬러푸드는 식재료의 고유 색상을 기준으로 맛·영양·기능에다 문화적 의미까지 분석하는 분류 접근법이다. 음식의 색에는 해당 색상마다 조금씩 다른 영양소(카로티노이드)가 녹아 있다. 예를 들어 붉은색에는 ‘라이코펜’이라는 색소가 있다. 토마토와 자몽처럼 빨간 열매 종류에 많이 함유해 있다. 가지와 자색고구마, 블루베리의 보라색에는 안토시아닌이, 당근과 호박의 주황색에는 베타카로틴이 각각 존재한다.

현대에 들어 각광받는 일명 ‘그린푸드’라 불리는 녹색 계열 음식에는 대표적 영양소인 엽록소(chlorophyll)와 함께 다양한 파이토케미컬(식물영양소)이 들었다. 푸성귀의 이파리에 들었을 뿐 아니라 녹조류, 갈조류, 홍조류 등 해조류에서도 다량의 엽록소를 찾을 수 있다.

녹색 음식은 컬러푸드 스펙트럼에서도 가장 일상적이다. 자연 중에서 가장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색인 까닭이다. 상대적으로 귀한 열매보다 이파리에 많으니 더욱 그렇다.

일반적으로 식욕을 떨어뜨리는 색으로 녹색과 파란색이 꼽힌 적이 있다. 빨간색과 주황색, 노란색은 식욕을 자극하고 파란색, 초록색, 회색, 검정색은 식욕을 억제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나 식품 포장지에 레드 계열 컬러를 적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당장 맥도날드, 버거킹, 롯데리아, KFC 등만 봐도 세계적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컬러 아이덴티티에는 대부분 빨간색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런 분류는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듯하다. 녹색 계열의 음식에는 건강식, 자연식, 웰빙푸드란 이미지가 가장 선명하게 박혀 있어 오히려 최근 외식업계에서는 그린 계열 컬러를 많이 쓰고 있는 추세다.

바질을 넣은 바질페스토 파스타.

녹색은 자연과 신선함을 상징하고 건강의 이미지로 해석된다. 계절적으로 싱싱한 로컬푸드를 설명할 때 이보다 더 좋은 색은 없다. 녹색 음식이 영양학적 기능식품으로 인정받으면서 동시에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컬러 콘텐츠가 됐다. 심지어 그냥 건강식을 이를 때 녹색이 아닐지라도 ‘그린’이란 말을 붙인다. 신호등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학교 인근에서 고열량이나 저영양 식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한 법령(2009년 시행)에 등장하는 유해 음식 청정지역의 이름도 ‘그린푸드존’이다.

이미지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건강하다. 그린푸드에 든 엽록소 등은 해독·노폐물 배출에 도움을 준다. 게다가 식물 중심의 식단 특성상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배변을 돕고 장 건강에도 좋다. 게다가 손상된 세포 재생과 노화 예방을 돕는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다.

세계적 건강 식단으로 꼽히는 한국인의 밥상은 온통 녹색 일색이다. 생활 속에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산과 들에서 뜯어 온 나물, 밭에서 기른 잎채소, 바다에서 얻은 해조류의 녹색이 밥상에 덧입혀졌다. 요즘 같은 봄날이면 이런 녹색화가 두드러진다. 쌈, 산채 정식이나 해조류 나물, 미나리, 쑥국이나 냉잇국 등 녹색이 봄철 절식을 대변한다.

그래서 녹색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일찌감치 1980년대 팔도(당시 한국야쿠르트)가 녹조류 클로렐라를 넣은 라면을 출시한 적이 있다. 당시 누구에게나 생소한 클로렐라의 이름만큼이나 낯선 녹색 면발이었다. 너무 앞질러 간 탓인지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데는 비록 실패했지만, 요즘에도 우주식이니 인류의 식량 위기 극복 완전식품으로 꼽히는 클로렐라를 거의 40년 전에 시장에 도입한 것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녹색의 ‘식욕 억제’ 이론은 한국에선 잘 통하지 않았다.

미나리를 얹은 복칼국수.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정적이고 미학적인 의미로 녹색을 기꺼이 섭취한다. 요즘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말차(抹茶)를 중심으로 청즙(靑汁) 등 건강식으로 단연 녹색을 가까이한다. 일본의 대표 향신료 와사비(わさび)나 간단한 안주로 즐기는 에다마메(풋콩) 등에도 자연 그대로의 맛을 강조하는 정서가 묻어난다. 이 외에도 건강이나 로컬을 강조한 식품 패키지에 녹색을 부각하는 경우가 잦다. 일본에서 녹색 음식이란 이미 정갈함과 정숙함을 내포한 분야로 통용된다.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음식의 녹색은 주로 공심채, 청경채로부터 나온다. 열을 가하더라도 진한 녹색을 내는 공심채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그린푸드 반찬이다. 인도와 네팔 등의 녹색이 감도는 커리는 시금치(팔락)가 든 때문이다. 부탄은 쓰디쓴 여주를 즐겨 먹는다. 아시아는 타 대륙보다 채소 자체를 많이 먹는 문화권이지만 특히나 진한 녹색을 띠는 채소 음식들은 각 지역에서 오랜 기간 고유의 전통 메뉴로 사랑받고 있다.

유럽의 녹색 음식 역시 싱싱함과 향기를 강조한다. 특히 올리브의 녹색은 남유럽 음식의 고유 컬러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여기다 바질 잎과 페스토의 향이 더해진 이탈리안 피자와 파스타, 생식이나 살짝 데쳐서 먹는 루콜라(rocket)와 아스파라거스는 지중해 식단의 대표적 그린푸드로 꼽힌다. 이 역시 건강한 지중해 식단을 상징하는 색으로 통용되고 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아메리카 대륙의 녹색 음식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아보카도다. ‘숲속의 버터’로 불리는 아보카도는 특유의 부드럽고 녹진한 맛과 고소한 향으로 여러 음식에 쓰인다. 다양한 레시피에 들어가지만 그냥 잘라서 먹기도 한다. 특히 과육을 으깨서 라임, 양파 등과 섞어 만든 과카몰레 소스는 남캘리포니아나 멕시칸 요리에서 빠지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진 그린푸드는 음료 쪽이다. 녹차와 말차, 피스타치오, 셀러리 등 녹색 재료의 인기에 힘입어 녹색 음료가 인기리에 팔려 나가고 있다. 일단 허브의 색상이 녹색이라 시원한 냉음료에선 녹색이 시각적 청량함까지 덧입힐 수 있다. 게다가 요즘 웰니스와 항산화 디톡스 등에 관심이 쏠리면서 너도나도 녹색 음료를 찾고 있다. 그린푸드가 가진 건강 코드에다가 허브와 해조류 등 비건 문화의 ‘맛있는 녹색’이 더해지면서 그 인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동물성 그린푸드도 간혹 있다. 흔히 해장국으로 즐기는 다슬기가 이런 경우다. 전반적으로 진한 녹색을 띠는 다슬기에는 타우린, 아미노산, 칼슘, 칼륨, 철분, 마그네슘 등 각종 미네랄과 함께 엽록소가 풍부하게 들었다. 다슬기에 아욱이나 우거지를 넣고 끓이면 국물이 녹색으로 우러나는데 이게 바로 엽록소다. 같은 복족강에 속하는 전복 내장을 ‘게우’라 부르는데 이 역시 녹색이다.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양식된 참전복은 다시마나 미역 등을 먹고 자라는 까닭이다. 그래서 전복죽을 끓일 때 게우를 넣으면 죽이 녹색으로 변한다.

온화한 훈풍이 감도는 한반도의 춘삼월. 식탁 가운데 살포시 들어앉은 봄이 유독 파릇하다. 저(箸)를 들어 봄동을 집고, 쑥국을 한술 뜬다. 그렇게 또 그렇게 신록으로 물든 봄을 맛보는 유난히 짧은 계절이 왔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미나리 복칼국수= 참복집. 서울 다동과 무교동에서 복어 요리로 소문난 집인데 점심 메뉴로 저렴하게 복칼국수를 판다. 미나리를 산더미처럼 얹어 준다. 전골냄비에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미나리를 데쳐 먹으면 아삭한 봄 내음이 콧속으로 스민다. 복어와 미나리를 넣고 시원하게 끓여 낸 육수에 매끈하고 쫄깃한 칼국수를 말아 먹으면 복맑은탕에다 국수까지 먹는 셈이다. 밥을 넣고 죽을 쑤어 마무리로 먹으면 더욱 든든하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28 1층.

◇도다리쑥국= 동해식당. 경남 통영 중심가 항남동에 위치한 향토음식점. 지역 특성과 향토색이 가득한 밥상을 계절별로 차려 내는 집이다. 제철 재료를 쓰는데 지금부터는 도다리쑥국의 계절이다. 향기가 진한 해쑥과 큼지막한 횟감 도다리 하나를 통째로 넣고 우려낸 그 진한 녹색 국물을 들이켜면 마음까지 파릇해진다. 볼락 등 생선구이, 멍게비빔밥 등 다양한 통영의 손맛 또한 즐길 수 있다. 경남 통영시 동충4길 41.

◇부추와 꾸지뽕 수제비= 삼송수제비. 수제비가 녹색이다. 반죽에 부추와 꾸지뽕을 넣어 녹색을 띤다. 낯설지만 고급스러워 보인다. 깔끔한 바지락 육수에 끓여 낸 수제비 하나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집. 밀가루 특유의 냄새에 민감한 이들이 좋아라 찾아간다. 시원한 바지락 국물에 얇게 밀어낸 수제비를 떠먹고 밥까지 말면 한 끼가 든든하다. 칼칼한 맛을 선호한다면 다진 고추 양념을 넣어도 좋다. 밥은 무료. 경기 고양시 덕양구 권율대로 896-7 1층.

◇다슬기 수제비= 사평다슬기수제비. 전남 화순에서 유명하다 못해 광주 전남권까지 손님을 불러 모으는 집. 다슬기를 넣고 푸짐하게 끓여 낸 수제비로 명성이 자자하다. 다슬기 육수는 원래 다소 쌉쌀하지만 수제비의 전분이 살짝 녹아들어 부드러워진다. 수제비를 많이 넣었는데도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다. 두툼하고 납작하게 떼 낸 수제비로 한 그릇이 푸짐하다. 메밀 반죽 수제비도 따로 선택할 수 있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서양로 79.

◇루콜라 피자= 투림돈까스. 서울 효창공원앞역 인근에 위치한 경양식집. 돈가스와 피자, 파스타 등을 맥주와 함께 판다. 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루콜라를 듬뿍 얹은 피자는 ‘작은 정원’이라 할 만큼 싱그러운 생김새다. 싱싱한 루콜라 잎사귀와 부드러운 치즈가 아삭함과 감칠맛을 동시에 낸다. 포모도로, 카르보나라 등 다양한 소스의 파스타와 바삭한 돈가스, 두툼한 햄버그스테이크 역시 인기 메뉴로 알려졌다. 참고로 2층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보는 벚꽃이 황홀경이다.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117.

◇팔락 파니르= 더 히말라얀. 경기 파주 금촌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네팔 현지인이 운영한다. 겨울 채소의 귀족으로 불리는 시금치를 힌디어로 팔락(palak)이라 한다. 이 시금치와 코티지치즈를 넣어 만든 커리가 팔락 파니르 커리. 동토에서 돋아나 당분을 가득 품은 시금치는 달달하고 풋풋한 향기와 특유의 감칠맛이 좋다. 푸릇한 커리를 밥이나 난에 듬뿍 얹어 입안에 넣으면 그윽한 풍미가 가득 찬다. 경기 파주시 새꽃로 196 2층.

◇과카몰레= 드라곤타코. 서울 용산 용문동에 있는 타케리아(Taqueria). 일본 오키나와(沖繩) 요리 ‘타코 라이스’를 파는데 연두색 과카몰레 소스를 듬뿍 곁들여 준다. 고기와 과카몰레, 옥수수, 피클, 고수 등을 밥과 함께 곁들여 먹는 요리다. 합리적 가격에다 맛있고 다양한 식재료를 한 번에 섭취할 수 있어 든든하다. 밥맛을 더욱 살려 주는 캘리멕스(미국 캘리포니아식 멕시칸 요리) 특유의 소스가 입에 딱 맞는다. 취향에 따라 구성을 달리할 수 있는 타코도 인기 메뉴.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112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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