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하는 여자들 ② 박정혜] 40대 여성,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자가 되기까지

<매일노동뉴스>는 3월8일 세계여성의날을 앞두고 '여성파업'에 참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전한다. 여성파업은 전통적인 노조 파업과는 다르게 일터에서 겪는 성차별과 노동 실태를 드러내기 위한 연대행동이다. 여성파업의 의미를 짚고 각기 다른 현장에서 싸워온 여성 노동자 4명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한다. <편집자>
"가장 쉽게 나갈 줄 알았던 이들이 가장 끈질기게 싸우고 있는 거예요. 40대 중반 여성들이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박정혜(40·사진)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9미터 높이 구미공장 옥상에 올랐다. 동료들은 놀랐고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건물이 곧 철거된다는 소식에 일단 공장부터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원래 겁이 많은데, '이걸 해야겠다' 싶으면 걱정은 나중에 하는 편이에요. 할 수 있을까 걱정보다는 우선 올라가서 헤쳐 나가자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시작한 고공농성은 600일을 넘겼다.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이라는 기록도 남았다. 지금까지 공장은 철거되지 않았다.
불에 탄 옥상은 그 자체로 극한의 공간이었다. 비가 쏟아지면 텐트가 무너졌고, 바람이 강하게 불면 텐트 안이 심하게 흔들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장 힘든 건 여름이었다.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는 옥상에는 그늘 한 점 없었다.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얼린 페트병을 끌어안고 버텼다. 샤워는 아래에서 올려보낸 생수로 며칠에 한 번 겨우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충은 월경이었다. "처음엔 피임약으로 버텼어요. 월경 때문에 어차피 오래 있지 못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더니 1년8개월이 흘렀다. 여성노동자로서 고공농성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몸이 먼저 알았다. 그렇다고 내려올 수는 없었다. 그에게 남은 선택은 감내하는 것뿐이었다.
위아래서 함께 버틴 여성노동자가 있었다
버티는 동안 땅 위의 여성 조합원들은 세심하게 박 부지회장을 챙겼다. 젊은 여성들이 다수인 '말벌 동지'들도 힘을 보탰다. 쿠키를 구워 올리고, 매번 다른 음식과 간식을 전했다. 책과 편지도 도르래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박 부지회장은 또 다른 해고노동자 소현숙씨와 고공에서 생활을 함께했다.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혼자였으면 못 버텼을 거예요. 많이 의지했고 든든했습니다."
'여성은 조용하고 순응적'이라는 편견을 그는 온몸으로 뚫었다. 박 부지회장은 "회사 입장에선 여성노동자들이 평소 조용히 일만 하니 해고하면 쉽게 나갈 거로 생각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20년 가까이 일한 40대 중반 여성들이 남아 싸우고 있다. 오랫동안 필름을 만져 온 언니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래에서 살뜰하게 살펴준 여성 조합원들도 '저 위에 언니가 있다'는 생각으로 더 치열하게 투쟁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LCD 편광필름을 생산했던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니토덴코가 100% 지분을 가진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이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50년 토지 무상임대와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 각종 세제혜택을 받으며 18년간 7조원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2022년 10월 구미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공장을 청산하겠다며 193명을 희망퇴직시키고 17명을 해고했다. 남은 물량은 니토덴코의 또 다른 자회사인 한국니토옵티칼 평택공장으로 옮겼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해고노동자들은 평택공장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했지만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박 부지회장이 소씨와 함께 2024년 1월 공장 옥상에 오른 것은 그다음이었다. 한국니토옵티칼은 두 사람이 고공농성을 시작한 이후에도 87명을 신규 채용했다. 해고된 17명 중 현재 남은 이들은 7명이다. 여성노동자 5명, 남성노동자 2명이다.
박 부지회장은 지난해 8월 옥상에서 내려왔지만 고용승계를 위한 최소한의 교섭 테이블도 열리지 않았다. "한국옵티칼 사태는 법과 제도가 허술해서 발생한 문제예요. 제재 장치가 없다 보니 외투기업이 책임지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거죠."

고공농성도, 여성파업도 구조에 맞서는 싸움
사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겪는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못했다. 조직 안의 구조적 성차별을 인식하지 못했고 어쩌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일터에서 성차별을 겪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히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2024년 고공농성을 시작한 뒤 다른 투쟁 현장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여성파업이라는 말 속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현실이 보였다. 남성이 여성보다 더 크고 무거운 기계를 만진다는 이유로 남성을 더 우위에 두는 분위기, 육아휴직 뒤 돌아오지 못한 여성 동료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는 그제야 해고 사태도, 여성노동자가 겪는 차별도 개인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렷이 알았다.
박 부지회장과 함께한 여성 조합원들은 2024년부터 여성파업 대회에 나갔다. 고공에서 내려올 수 없었던 그는 참여하지 못했다. 땅으로 내려온 올해, 처음으로 여성파업 대회에 선다.
그는 자신의 싸움과 여성파업이 결국 같은 곳을 향한다고 말했다. "저는 여성노동자로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웠어요. 여성도 저항하고 요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고공농성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고용승계 문제도, 여성 문제도 제 이야기이지만 저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구조의 문제죠. 그래서 계속 말하고 행동하면 구조는 바뀔 거라고 믿습니다."
박 부지회장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고공에 올라야 했던 시간이 슬펐다고 했다. 그러나 그 슬픔이 다른 노동자의 몫이 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고공이 아닌 땅 위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세상, 그 목소리가 힘 있는 이들에게 닿는 세상을 바라며 그는 오는 6일 서울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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