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하는 여자들 ① 지혜복] ‘성폭력 문제 해결’ 학생들과 약속 지키려 거리에 선 교사

<매일노동뉴스>는 3월8일 세계여성의날을 앞두고 '여성파업'에 참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전한다. 여성파업은 전통적인 노조 파업과는 다르게 일터에서 겪는 성차별과 노동 실태를 드러내기 위한 연대행동이다. 여성파업의 의미를 짚고 각기 다른 현장에서 싸워온 여성 노동자 4명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한다. <편집자>
굳건하게 마음을 먹었지만 불안이 차올랐다. 지난 1월29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지하 2층 B219호. 선고를 기다리던 지혜복(61·사진) 교사는 법정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어떤 결과가 나와도 계속 싸운다'고 마음을 잡았다. 그런데 판사가 입을 떼기 직전, 지씨의 투쟁에 힘을 보탠 학생·학부모 등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혹여 실망과 좌절을 안게 되지는 않을지 불안해졌다. 학교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한 뒤 부당전보와 해임을 겪은 지씨의 싸움은 이미 지씨만의 싸움이 아니게 됐다.
"피고가 2024년 원고에게 한 전보 처분을 취소한다." 승소 판결이 나오자 지씨는 눈물을 흘렸다. 동료들도 함께 울었다. 법원은 지씨를 공익제보자로 인정하고 학교의 전보 발령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거리에서 함께 외친 '지혜복이 옳다'라는 구호를 비로소 사법부를 통해서도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학생들한테 학교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학교에서 쫓겨나면서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거든요. 제일 먼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었어요. 저는 포기하지 않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계속 싸우고 있다고. 그리고 이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학생들의 행동은 옳았다고요."
법원은 지씨가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을 상대로 낸 전보 무효 소송에서 지씨 손을 들어줬다. 판결이 나온 지 한 달 넘게 지났지만 지씨는 아직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정근식 서울교육감은 항소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전보 취소와 별개로 해임 취소 소송 결과가 나와야 복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농성 중인 지혜복 교사를 만났다.
'스쿨미투' 뒤에도 학교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건은 2023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학교 상담부장이었던 지혜복 교사는 여학생들을 통해 교내 성폭력 문제를 알게 됐다. 이후 익명 설문조사를 진행해 여학생 3분의 2가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씨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사안이 심각해서 대부분 학생들이 포기하고 (가해자를) 피해 다니는 상황이었어요. 학교 안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 이게 학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가 이렇게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스스로 너무 놀랐고 미안했어요.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 파괴됐다는 점이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알게 됐는데 침묵하는 것은 피하는 거잖아요."
지씨는 피해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대리인 자격으로 학교폭력 신고를 했다. A학교 생활인성지도부장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 학생들의 신원이 노출됐다.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들에게 위협적 행동을 하는 등 2차 가해가 이뤄졌다. 이에 지씨는 서울시교육청에 학생인권침해 구제신청을 했다. 이듬해 2월 A학교는 학생수 감소로 교사를 감축해야 한다며 지씨를 전보 발령했다. 지씨는 출근을 거부하고 1인 시위를 하다 2024년 9월 해임 처분됐다.
처음 싸움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다.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다.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을 거리에서 보내다 보니 체력적으로는 힘들었는데 포기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제 싸움이 알려지면서 연대하는 분들이 많아졌는데 '내가 지혜복이다'라고 외치면서 이 투쟁을 자기 경험 속에서 자기 투쟁으로 함께 하셨어요."
"여성파업은 멈춤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
지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3·8 세계여성의날을 앞두고 '여성파업'에 참여한다. 지씨는 교내 성폭력은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성폭력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했다.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 중 10대가 70%를 넘어요. 사회적으로 과학기술 발달과 함께 다수가 새로운 형태의 성범죄에 연루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이 주체가 되는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년까지 1년, 부당전보 판결 이후에도 복직은 '아직'
지씨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부당전보 승소 이후에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원의 부당전보 인정 판결 이후 A학교 성폭력사안·교과운영부조리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철회 공대위는 지난달 정근식 교육감을 한 차례 만났고 이후 실무교섭도 한 차례 진행했다. 공대위는 지혜복 교사의 즉각 복직을 포함한 8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아직까지 양쪽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년을 1년 앞둔 지씨는 하루빨리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는데 교육당국에 의해 또다시 폭력을 당했다는 점에서 제 복직은 피해를 회복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선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힘들게 싸워야 하는 교사가 없기를 바랍니다. 성폭력 사안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학교 안의 모습은 우리 사회 성차별·성폭력 문제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와 사회를 바꾸는 데 지속적으로 함께 힘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성평등한 학교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남은 힘을 다 쏟을 생각입니다." 정년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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