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나를 예술인으로 만들었다” [차형석의 별별인물 탐구생활]
무대는 무대, 삶은 삶이다. 집회·문화제 무대 위에서 구수한 사투리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교사 출신 소리꾼’ 백금렬씨(54)는 인터뷰하는 동안 여러 번 쑥스러워했다. 대중 앞에서는 촌철살인의 달변이지만 일상에서 마주하면 조용하고 때로 수줍은 태도를 보이는 이가 있는데, 그도 그중 한 명인 듯했다. 그는 광주에서 꽤 알려진 방송인이다. 광주MBC 저녁 생방송 〈빛나는 나의 도시〉에 패널로 나와 뉴스를 전해주고, 국악방송 라디오에서 국악 해설을 한다. 방송 중 말은 청산유수이지만, 일상은 잔잔하다. 최근 한국민예총에서 수여하는 2026 시대예술인상을 받은 백금렬씨를 만났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소리를 접했다. 한문교육학을 전공해 여름방학에 구례에 있는 서당을 갔는데, 동기가 ‘춘향가’를 불렀다. 소리에 매력을 느낀 그는 대학 소리 동아리를 찾아갔다. 그의 노래를 들고 누군가 말했다. “얘는 학교 뒤 할아버지에게 가야겠는데.”
학교 후문에 임윤명 소리꾼이 살고 있었다. 그를 찾아갔고 “사부로 모셨다”. 2년 동안 그의 집에서 살며 소리를 익혔다. 대학 4학년부터는 이일주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다. 2년 동안 익산에서 전주로 출퇴근했다. 1994년 국립국악원이 주최하는 제14회 전국국악경연대회 성악(소리)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 수상하면 예술 분야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입대를 대신할 수 있는 큰 상이다. 물론 백씨는 군 입대를 택했지만.
백씨는 임용시험에 합격해 1998년부터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문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조금은 눈에 띄는 교사였다. 〈녹색평론〉을 읽기 시작하면서 생태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환경보호 메시지를 적은 깃발을 자전거 뒤에 달았다. 언론 문제에 관심이 많아 ‘안티 조선’ 깃발도 달았다. 그는 “관종이어서 그런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라고 말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먼저 실천하자”라고 말한 적이 있어, 그에 대해 묻자 무척 쑥스러워했다. “아무래도···”라고 답했다. 그는 옷을 사지 않는다. 예전부터 옷에 관심이 없었고, 생태주의에 끌리면서 더 그렇게 되었다. 옷은 쓰레기가 되니까. “남들이 옷을 다 준다. 이 겉옷도 엊그제 누가 주더라. 양말 몇 켤레와 속옷 몇 장은 산다.”
2010년 결혼식도 특이했다. 그는 축의금을 받지 않고, 국수를 대접하고 1만원씩 받았다. 그 돈을 모아 북한 동포를 돕는 시민단체에 보냈다. “축의금은 예전부터 받을 생각이 없었다. 결혼식 하는 데 돈이 오가는 게 보기에 안 좋았다. 축하하면 됐지, 뭔 돈인가 하고. 친한 선배도 축의금을 안 받았다고 하더라.” 그는 생각대로 산다.
다른 교사들과 풍물패를 했다. 풍물패 ‘사부’가 소리북을 했다. “목구멍이 근질근질해서” 2003년부터 혼자 소리 공부를 했다. CD를 듣고 따라 했다. 2003년 보성소리축제 일반부에서 1등을 했는데, 2005년 보성군청에서 ‘명창부에 나와달라’고 연락해왔다. ‘머릿수나 채워주자’는 마음으로 나간 대회에서 장원(국무총리상)을 했다. “프로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1등?” 하고 묻자, 그는 이번에도 쑥쓰러워했다.
심청가 완창에 이어 적벽가 완창 도전
백금렬씨는 2007년부터 광주MBC 국악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함께하는 진행자 지정남씨와 광주 촛불문화제 사회를 보곤 했다. 이후 사법적 고초를 겪었다. 박근혜 대선 예비후보를 비판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벌금 300만원을 받았다. 나중에 졸업해 성년이 된 제자 네 명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하며 보낸 문자로 인해 ‘자격정지’가 확정되었다. 특정 정당을 지지했다는 이유다. OECD 국가에서 교사·공무원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형사처벌을 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시민단체 등이 그를 도와 나섰지만 자격정지가 확정돼 교직에서 ‘당연 퇴직’하게 되었다. 그는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검사·판사 모두 법에 따라 일한 거니까, 그걸 원망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 윤석열 정권 비판 집회 무대에서 대통령 부부를 풍자하는 노래를 부른 게 문제가 돼 2023년 8월 재판에 넘겨졌다.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였다. 2025년 11월, 2심에서 대통령 비판 행위를 특정 정당 반대나 지지 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가 선고됐다.

교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는 광주에 연습실을 구했다. MP3로 소리를 듣고 수십 번씩 따라 불렀다. 지난해 11월, 심청가 완창 공연을 열었다. 여섯 시간에 걸쳐 노래 부르고 해설하는 무대였다. 그는 “판소리라고 하면, 폭포에서 피를 토하며 연습하는 모습을 연상하는데 그런 신비화를 깨고 싶었다. 트로트나 가요는 배우지 않고 그냥 노래방 가서 부르지 않나. 소리도 똑같은 노래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2025년 9월, 백금렬씨는 제19회 오월어머니상을 받았다. ‘각종 공익적 집회에서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시민들의 결집에 큰 역할을 한 점’을 평가받았다. 이번에는 한국민예총의 2026 시대예술인상을 받았다. 그는 “26년 반 동안 교사를 하면서 ‘선생 잘했다’는 상을 못 받았다. 소리 대회 중에는 대통령상을 주는 대회가 있는데, 소리꾼에게는 그 상을 받는 게 통과의례다. 그 상을 받으면 ‘예술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윤)석열이가 나를 예술인으로 만들어주었다. 남들은 10대부터 소리를 시작하는데, 50대 중반에 소리를 다시 출발하는 것이니 소리 공부 열심히 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올해 목표는 적벽가 완창이다. 가급적 외부 활동을 줄이고 연습실에서 소리 공부에 매진할 계획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잠시 시간이 났다. 그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중국에서 출판된 〈삼국연의〉다. 적벽가 사설을 정리하기 위해 공부하는 책이다. “원서를 봐야 느낌이 더 살고 정확한 단어를 알 수 있어서” 읽는다. 교사 출신 소리꾼의 소리 공부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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