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죽음, 그 위에서 핀 꽃 [비장의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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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무대에 올릴 연극 〈햄릿〉을 준비하던 어느 날.
그날 저녁 〈햄릿〉 희곡집 표지에서 자기도 모르게 알파벳 'L'을 손가락으로 가려보고 있었다.
세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간을 함께 지나 아들과 작별하는 슬픔에 같이 젖은 관객이, 연극 〈햄릿〉의 무대에 직접 올라 그 카타르시스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
삶과 죽음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그 이야기가 누구의 마음속에 어떤 폭풍을 일으키느냐, 그것이 진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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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클로이 자오
출연: 제시 버클리, 폴 메스칼, 에밀리 왓슨
학교 무대에 올릴 연극 〈햄릿〉을 준비하던 어느 날. 좋아하는 문학 선생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지고 간 이야기. “셰익스피어에게 아들이 있었어. 근데 〈햄릿〉을 쓰기 4년 전에 죽었지. 열한 살이었대. 이름은 ‘햄넷’이었고.”
선생님의 그냥 지나가는 말이 열여섯 살 작가 지망생 매기 오패럴의 마음만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그날 저녁 〈햄릿〉 희곡집 표지에서 자기도 모르게 알파벳 ‘L’을 손가락으로 가려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당시 ‘햄릿(hamlet)’과 ‘햄넷(hamnet)’이 사실상 같은 이름으로 혼용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낸 뒤로는 더더욱 떨쳐낼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아들을 잃고 비극을 쓰는 아버지”를 상상했다. 그러다 차츰 ‘아이를 떠나보낸 어머니’가 궁금해졌다. 셰익스피어 생애를 연구한 학자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책으로 내면서도 그의 아내를 서술할 땐 의견 차이가 없다는 게 좀 의아했다. “여덟 살 연상이며 이미 임신한 몸으로 앞길 창창한 청년을 결혼으로 묶어둔 여자.” 정말 그랬을까?
직접 찾아낸 사료는 다른 얘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가난한 여자가 아니었다. 잘사는 집 딸이었다. 남자 덕에 먹고산 인생도 아니었다. 따로 벌이가 있는 사업가였다. 둘 사이가 나빴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아내와 여생을 보내려고 다시 고향에 돌아온 남편이 있을 뿐이었다.
“천재 작가가 왜 나이 많은 시골 여자와 결혼했을까?” 이렇게 질문한 이는 늘 같은 답을 얻었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탈출해 런던에 온 뒤에야 비로소 꽃피운 재능.” 질문을 바꾸어보기로 한다. “부유한 집안의 생활력 강한 그녀가 왜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열여덟 살 백수와 결혼했을까?” 아마도 사랑, 분명히 용기, 그리고 아이들. 그렇게 시작된 작가의 상상이 소설 〈햄넷〉으로 날아올랐고, 영화 〈햄넷〉으로 성장해 이제 우리 앞에 내려앉는다.

숲에서 온 여자 아녜스(제시 버클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셰익스피어(폴 메스칼)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세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간을 함께 지나 아들과 작별하는 슬픔에 같이 젖은 관객이, 연극 〈햄릿〉의 무대에 직접 올라 그 카타르시스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 삶과 죽음과 사랑과 이별과 예술과 치유의 모든 순간이 라스트신에 담겼다. 〈노매드랜드〉로 이미 오스카 감독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가 어쩌면 올해 또 한 번 수상자가 될지도 모른다.
원작자 매기 오패럴은 여덟 살 때 뇌염을 앓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딸도 네 살 때 알레르기 쇼크로 사경을 헤맸고 언제든 다시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죽음은 삶을 끝내는 독풀이지만 때론 달리 살게 하는 약초가 되기도 한다는 걸 스스로 깨쳤다. 아녜스의 슬픔을 도저히 헤아릴 길 없어 자신의 아이가 햄넷과 같은 열한 살이 되고 나서야 쓰기 시작한 소설, 그걸 영화로 만들며 감독은 말했다.
“어떤 이야기는 마치 저를 선택한 것처럼 제 삶에 갑자기 찾아오고, 저는 그 부름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햄넷〉 역시 처음에는 속삭임처럼 다가왔지만 어느 순간 거대한 폭풍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삶과 죽음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그 이야기가 누구의 마음속에 어떤 폭풍을 일으키느냐, 그것이 진짜 문제다. 그게 바로 〈햄넷〉의 괴물 같은 엔딩이 증명해 보인, 예술과 극장의 변치 않는 존재 이유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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