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노리카 "소비자 접근성 높이기 위한 결정" 위스키 수입량 감소세…팬데믹 이후 홈술·수집 문화 '급감'
위스키 열풍이 식고 재고 부담이 커지자 주류 업계에 제품 가격을 낮추는 이례적인 행보가 잇따르고 있다. 업계는 수요 위축에 대응해 주력 제품 가격을 인하하는 한편, 한정판 위스키를 앞세워 하이엔드 시장을 공략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돌파구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페르노리카 코리아는 주요 싱글몰트 위스키 제품 가격을 최대 13% 인하한다고 밝혔다. 대상 제품은 발렌타인 글렌버기 12·15년과 더 글렌리벳 12·15년이다.
이번 가격 정책 개편은 지난해 12월 15일부터 적용됐으며, 유통 채널별 일정에 따라 소비자 가격에는 순차적으로 반영될 예정이다. 페르노리카 코리아 측 관계자는 이번 가격 조정을 두고 "소비자들에게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페르노리카 코리아의 가격 인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4년 말에도 주요 위스키 제품인 발렌타인 10년·17년·21년 및 로얄살루트 21년 시그니처·21년 몰트·21년 그레인, 그리고 일부 리미티드 제품 출고가를 최대 13% 인하했다. 여기에 프로모션 할인도 최고 18%까지 적용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가격 인하 배경으로 악화된 업황을 꼽는다. 관세청에 따르면 위스키 수입량은 2023년 3만586t에서 2024년 2만7441t으로 10.3% 줄었고, 2025년의 경우 2만2582t으로 전년 대비 17.7% 줄며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팬데믹 기간 급증했던 수요가 빠르게 식으면서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제공= 뉴스1
이 같은 흐름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감지된다. 최근 영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디아지오·페르노리카·캄파리·브라운포맨·레미 쿠앵트로 등 주요 주류업체의 숙성 재고 규모는 2025년 기준 220억달러(약 31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최근 1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FT는 "역사적인 수준의 수요 감소로 위스키·코냑·테킬라 등 숙성 증류주 재고가 급증하면서 일부 업체들이 증류소 가동을 멈추거나 가격 인하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당시 '혼술' 문화 확산과 함께 위스키 붐이 일었고, 한정판 제품을 중심으로 한 수집 열풍까지 더해지며 생산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후 고물가와 경기 침체,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수요가 둔화됐고, 그 여파가 재고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대중적인 위스키 소비가 줄어들자 업계는 '하이엔드 시장'을 공략해 수익성을 보전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페르노리카 코리아는 최근 롯데백화점과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프리미엄 서비스를 강화했다. 최상위 제품군의 고연산·한정판 상품을 백화점 단독으로 출시해 차별화된 경험을 중시하는 VIP 고객을 사로잡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1월에는 세계에서 20병만 한정 생산된 '아벨라워 50년'을 롯데백화점에서 최초 공개하며 희소성 마케팅을 확대했다.
디아지오 역시 싱글몰트 위스키 '몰트락'의 한정판 '몰트락 네버바운드'를 한국 시장에 공식 출시하며 프리미엄 라인업을 강화했다. 디아지오 또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백화점과 호텔을 주요 판매처로 선택했으며, 지난 1월에는 '돈 훌리오 1942 말띠 에디션'을 통해 고가 테킬라 시장을 겨냥한 프리미엄 애호가 공략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팬데믹 기간 형성됐던 고성장 국면이 마무리되면서 당분간은 재고 조정과 수요 정상화 과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앞으로는 엔트리급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높여 저변을 유지하고, 고연산 제품은 희소 가치를 극대화해 소수 마니아를 공략하는 '양극화 전략'이 주류 업계의 생존 공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