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체험기] 정상 웨이팅 1시간…'개운 성지'된 관악산에 직접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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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정상가려고 1시간 웨이팅한다", "사람들이 하도 찾아 난리난 제2의 두쫀쿠", "너무 핫해서 한 김 식으면 가세요"
맛집이나 새롭게 유행하는 디저트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SNS에서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관악산' 관련 게시물 제목들이다.
관악산은 서울 관악구와 경기도 안양시·과천시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632m의 화강암 산으로, 대한민국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 중 한 곳이다. '악산(岳山)'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바위가 많은 돌산이며, 서울 남산(270m), 인왕산(338m) 등에 비해 고도가 꽤 높은 편이라 동네 뒷산처럼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다.
그럼에도 휴일이었던 3·1절, 관악산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이날 산을 찾았다는 한 등산객은 "정상 부근인 연주대까지 올라가는 데 웨이팅만 1시간이었다"며 "길이 좁은데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과 섞여 자주 정체됐다"고 전했다. 관악산은 왜 지금 가장 붐비는 산이 되었을까.

역술가 박성준이 점찍은 산
발단은 유명 풍수지리학자이자 역술가 박성준의 한마디였다. 건축학도 출신으로 사람과 땅의 기운을 함께 읽는 풍수건축가인 그는, 각종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운이 안 풀릴 땐, 관악산으로 가라"고 권했다.
그에 따르면 관악산은 불꽃이 치솟는 형상을 닮은 '화산(火山)'으로, 정체된 기운을 흔들어 깨우는 성향이 유독 강하다. "관악산은 정기가 맑고, 같은 소원을 세 번 빌기 위해 오르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에너지가 좋은 곳"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양한 매체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온 그의 말에 2030세대까지 반응하면서, 관악산은 '등산 명소'에서 '개운 성지'로 거듭났다.

조선 왕조가 두려워한 불의 산, 개운의 상징이 되다
그렇다면 관악산은 어떤 산이길래 '기운이 강하다'는 이야기가 따라붙을까. 풍수지리에서도 관악산은 오래전부터 특별한 위상을 지닌 산으로 여겨져 왔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톱날처럼 솟은 암봉들이 불꽃 형상을 이룬 관악산은 그 화기가 도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조선 건국 당시 경복궁 터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관악산의 화기는 논쟁거리였다.
실제로 경복궁은 관악산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도록 방향을 약간 비켜 세워졌고, 남쪽 정문인 숭례문에는 사대문 중 유일하게 현판 글씨를 세로로 달아 불꽃 형상으로 맞불을 놓았다. 광화문 양쪽에는 물의 기운으로 화기를 다스린다는 상상의 짐승 해태를 앉혔고, 지금의 서울역과 남대문 사이에 남지(南池)라는 연못까지 팠다.
조선 왕조가 다양한 비보책으로 다스리려 했던 산. 한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 불의 기운이, 역설적으로 오늘날에는 정체된 기운을 끌어올리는 상징적 에너지로 재해석되고 있다.
기운이 모이는 자리, 연주암과 연주대
풍수지리학자들에 따르면 관악산에서도 기운이 응축된 명당으로 꼽히는 곳은 정상 인근의 연주대와 연주암 일대다. 기도 효험이 좋다고 알려져 오래전부터 소원을 비는 이들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통일신라 시대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연주대는 관악산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연주암은 연주대 남쪽 약 300m 지점에 위치한 사찰로, 시험·취업·승진을 앞두고 촛불을 밝히러 오는 이들의 발길이 사시사철 이어진다.
연주암은 최근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명소로도 알려졌다. 사찰 내 매장에서 컵라면을 판매해 정상 부근에서 뜨거운 라면을 먹을 수 있어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산스토랑'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기가 아니어도, 산은 답을 준다
개운을 하기 위해 관악산을 찾는 이들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SNS에는 정상 인증 사진과 등산 후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이 유행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주말이면 정상석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좋은 정기는 이미 다 소진됐을 것 같다"는 농담 섞인 반응이 나온다. 집 근처에서 관악산을 자주 찾던 주민들에게는 갑자기 북적이는 풍경이 달갑지 않다. "오르기 어렵기로 유명한 관악산까지 가서 운수를 대통해야 하는 사회가 힘들다"는 자조도 들린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풍수를 믿든 믿지 않든, 산을 오르는 행위 자체가 몸과 마음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등산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심박수가 올라가고, 호흡이 깊어진다. 자연 속에서 쌓였던 긴장이 풀리며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생각들도 조금씩 단순해진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묶고 집을 나서 불꽃처럼 솟은 바위 능선을 따라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적어도 마음의 번잡함만큼은 가라앉을 것이다. 직접 몸을 움직이고 자연 속을 걷는 과정 자체가 좋은 기운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초보부터 능선 산행까지, 관악산 등산 코스 3선>

관악산은 해발 632m로 서울 근교 산 중에서도 높고, 바위 능선이 많은 편이라 만만하게 오르기 쉬운 산은 아니다. 하지만 들머리와 코스에 따라 난이도와 산행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초보자부터 능선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까지 선택할 수 있는 대표 등산 코스 세 가지를 소개한다.
① 서울대 공대 코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출발하는 코스로 첫 관악산 등산이라면 이 코스를 추천한다. 3번 출구 앞 정류장에서 5511번이나 5513번 버스를 타고 서울대 캠퍼스 안쪽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앞에서 내리면 바로 산길이 열린다. 전반적으로 길이 잘 정비돼있고, 정상 연주대까지 편도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면 닿는다. 체력이 남는다면 등산 전후로 서울대 캠퍼스를 둘러 보는 것도 좋다.
② 과천향교 코스
좀 더 느긋한 산행을 원한다면 과천향교 기점 코스가 있다. 들머리부터 경사가 완만한 숲길과 시원한 계곡이 펼쳐진다. 험한 바위 구간이 드물어 등산 초보나 가족 단위 등산객들에게 적합하다. 곳곳에 벤치와 쉼터가 있어 쉬엄쉬엄 대화하며 걷기 좋고, 소음이 적어 명상하듯 오르기에도 어울린다. 서울대 공대 코스보다 비교적 한산해 여유롭게 산행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③ 사당능선 코스
사당역 4번 출구에서 출발하는 능선 코스는 초반부터 바위를 타고 올라야 하는 구간이 많아 중급 이상 등산객에게 추천한다. 길이가 길고 가파르지만 관악산 정상까지 시야가 시원하게 트여 전망이 좋은 코스 중 하나다. 손으로 바위를 짚어가며 올라야 하는 구간이 이어지기 때문에 미끄럼 방지용 장갑은 필수다.
'등산초보' 기자, 관악산에 가다

서울에 평생 살았지만 관악산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여느 이들처럼 "운이 안 풀릴 때는 관악산에 올라보라"는 박성준 역술가의 말을 듣고, 행운과 소원 성취에 대한 기대를 품은 채 지난 주말 처음 관악산을 찾았다. 기자는 평소 등산을 자주 하지 않는 '등린이'인 만큼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서울대 공대 코스를 선택했다.
점심 일정 때문에 출발이 늦어 오후 4시쯤 서울대입구역에 도착해 5511번 버스를 탔다. 서울대 '샤'대문을 지나 굽이굽이 가파른 도로를 거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앞에 내리자 곧바로 등산로 초입이 시작됐다.
산을 오르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등산로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등산 스틱을 짚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 초봄의 관악산은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계곡 곳곳에 얼음이 얼어 있는 곳들이 많았다. 바위가 많고 험하다는 이미지 때문에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길이 잘 정비돼 있어 코스 선택을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중반쯤 오르자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평소 관악산 고도의 절반 정도 되는 산에 익숙했던 탓이다. 250ml 작은 물병을 가져온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대신 가져온 귤이 수분 보충에 도움이 됐다.
세 번 정도 쉬어가며 정상 부근의 계단길을 오르자 마침내 연주대에 도착했다. 서울 시가지가 발아래 펼쳐지고 멀리 남산타워와 경복궁, 롯데타워 등 서울의 랜드마크가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석 밑 계단길을 내려가자 연주대 웅진전이 있어 잠시 들어가 삼배를 올렸다. 엄청난 '정기'가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땀이 식으며 시원한 기분과 함께 뿌듯함이 밀려왔다.
하산길은 올라갈 때보다 훨씬 조심스러웠다. 다리에 힘이 빠진 상태였고, 연주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거의 도착했다고 생각했을 무렵 해가 완전히 저물었는데, 문제는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변에는 다른 등산객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도를 확인해 보니, 갈림길을 잘못 들어 30분가량 더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옳은 길로 되돌아가다 보니 우리처럼 길을 잘못 든 등산객들도 만났다. 서로 길을 확인하며 함께 걷다보니 결국 무사히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정기를 받으러 갔다가 뜻밖의 야간 산행과 '무사 탈출'을 경험한 셈이다.
함께 내려온 일행 중 한 명은 "다른 산은 해가 지면 스산한 느낌이 있는데 관악산은 그렇지 않다"며 "바위산이라 그런지 산을 오르며 무덤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래서 기운이 좋은 산이라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관악산의 정기를 해석하는 모습이었다.
호기롭게 등산을 시작했던 서울대입구역에 다시 도착하자 어느새 시간은 저녁 8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저녁을 놓친 탓에 허기가 밀려왔다. 아무리 밤에도 정기가 좋다는 산이라지만, 다음에 관악산을 찾게 된다면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올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정효림 기자 jhli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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