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골의 봄동 샐러드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한겨레 2026. 3.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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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야 그런가 보다 하지만 갑자기 봄동이라니.

늘 메뉴가 달라지는데, 지난 2월에는 봄동샐러드가 올랐다.

싱그러운 봄동샐러드를 먹으며 봄이 왔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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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동 배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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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요즘에야 비닐하우스 채소가 보편적이니 겨울이라고 밥상에 절임류만 오르는 일은 드물다.

그럴 형편 안 되던 시절의 겨울 밥상을 떠올려보라. 묵은김치와 절여둔 야채들. 산뜻함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요령껏 차린 최선의 밥상이었으리라. 사계절 아름답다며 노래하지만, 노래일 뿐이고 변덕스러운 계절 아래 땅의 소산을 전부로 살아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됐을지 상상만 할 뿐. 한여름의 더위는 가장 더운 대륙의 그것과 비슷하고, 한겨울의 추위는 가장 추운 겨울의 그것과 비슷하니 밥상도 억척스럽다. 다른 동네에서는 이름도 안 붙은 잡초에 온갖 애칭을 붙여가며 밥상에 올렸고, 새순 하나 돋지 않는 한겨울을 위해 온갖 절임 반찬을 개발했으니, 오늘의 식탁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 감사할 뿐이다. 우리 식탁의 다양성은 억척에서 왔다.

그렇게 견딘 겨울 밥상의 끄트머리에서, 봄의 기운을 한껏 끌어안고 언 땅을 가장 먼저 부수고 올라오는 새순. ‘봄동’이다. 제멋대로 뻗친 잎에 이게 배추가 맞나 싶지만, 푸르딩딩한 겉잎 한가운데의 노오란 속살과 달큰한 맛을 보면 영락없는 배추다.

추위에 강한 이 녀석이 한반도 추위를 뚫고 아직 봄이 다가오기 전, 절임 반찬이 동날 즈음 반갑게 고개를 내미니,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밥상을 장식했을 것이다.

요즘 ‘봄동비빔밥’이 유행이라고 하면, 어른들이 화들짝 놀란다.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야 그런가 보다 하지만 갑자기 봄동이라니. 두쫀쿠에서 봄동비빔밥으로 이어지는 이 역동성은 나로서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느새 유튜브는 고급 디저트의 향연에서 스댕(스텐) 그릇에 쓱쓱 비벼 먹는 비빔밥의 레시피와 후기로 도배가 됐다.

그저 단순한 반찬이다. 고춧가루에 간장, 액젓 정도 휘리릭 버무려서 뜨거운 쌀밥에 그저 비비면 그게 전부인 조리법. 거기에 자기만의 노하우를 더해서 온갖 레시피가 영상으로 퍼져나가고 있으니 재밌고, 신기한 노릇.

판자촌, 달동네. 정릉골을 부르는 몇가지 이름이 있다. 1960~70년대, 서울살이 억척스레 해낸 가난한 이들이 모여 동네를 일궜다. 한국의 역사를 사계절로 비유하자면 겨울의 끄트머리이지 않았을까. 단단한 새순인 봄동을 닮은 사람들. 그이들은 단단하게 얼어 있던 언 땅을 뚫고 나왔다. 가난한 이들의 억척스러운 노동이 지금의 도시를 만들었다. 봄을 가져온 사람들. 공장과 건설현장, 청계천과 을지로, 동대문 곳곳의 고된 노동을 온몸으로 견디며 산업을 일군 사람들. 당시 서울에는 그런 이들이 몸 뉘일 가난한 동네들이 많았다. 정릉골은 당시를 살아낸 사람들의 마지막 터전으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마을이다.

봄을 가져온 사람들의 시간은 그렇게 정릉골에서 늙어갔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정릉골에 고급 타운하우스 주택단지를 짓겠노라 나가라 한다. 작년 여름 인연이 되어 세입자 주거권 보장을 위한 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리게 됐다. 예배 뒤에는 ‘연대하는 채식인 모임’에서 준비한 고마운 밥상이 차려진다. 늘 메뉴가 달라지는데, 지난 2월에는 봄동샐러드가 올랐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 자랐던 청귤로 청을 만들어뒀다가 겨울을 견딘 새순 봄동에 얹으니 그럴싸하다.

재개발 지역의 봄은 심란하다. 동절기 강제집행 금지 조례로 보호받던 일상은 이제 다시 무분별한 폭력 앞에 노출된다. 봄동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싱그러운 봄동샐러드를 먹으며 봄이 왔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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