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시도 통합의 그늘, 흔들리는 풀뿌리 스포츠와 위기의 지자체 팀
- 전국체전 떠받친 지역 실업팀 위기
- 통합 논의 속에서 사라진 스포츠 정책

최근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대전·충남, 광주·전남, 대구·경북 등 이른바 '시도 통합'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행정 효율성과 지역 경쟁력 강화가 주요 명분으로 제시되지만, 통합 논의의 파장은 행정 영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지역 스포츠 구조 역시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체육계의 관심과 우려가 동시에 커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직격탄이 예상되는 분야는 시도체육회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직장운동부, 즉 지자체 실업팀입니다. 현재 한국 엘리트 스포츠는 민간이나 공공 기업이 운영하는 실업팀과 함께 지자체 팀이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육상, 레슬링, 펜싱, 하키, 카누, 정구 등 많은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지자체 실업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자체 팀은 전국체육대회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형편입니다. 전국체전 결과에 따라 한 해 농사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도 통합이 현실화하면 체육 행정의 효율화를 명분으로 시도체육회의 통합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컨대 대전시 체육회와 충남체육회가 하나의 광역 체육회로 통합되는 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종목단체 조직 재편과 행정 인력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체육회 내부 조직뿐 아니라 각 종목 협회와 연맹의 운영 방식도 달라질 겁니다. 통폐합에 따른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닥칠 수 있다는 현장의 근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회장 유승민) 관계자 역시 "지자체가 통합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행정구역에 맞춰 지방체육회도 통합되는 것이 절차"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대한체육회와 산하 회원단체는 현재 17개 시도체육회를 기반으로 조직이 구성돼 있으며, 단체장 선거 역시 이 체제를 기반으로 한 선거인단에 의해 치러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지자체 실업팀입니다. 현재 대전과 충남, 광주와 전남, 대구와 경북은 각각 여러 종목의 실업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산 문제와 선수 수급, 중복 방지 등을 이유로 대부분 지자체 팀은 '1도 1팀' 구조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정 통합 이후에는 동일 종목의 팀이 '통합 시도'에 두 개 존재하는 상황을 두고 '비효율' 논리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종목에서 대전 팀과 충남 팀이 동시에 운영되고 있다면 통합 이후 하나의 팀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공산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같은 B라는 종목에서 광주 팀과 전남 팀 가운데 한 팀만이 '통합 시도'를 대표해 전국체전에 출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출전하지 못하는 팀은 존재 의미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지자체 팀이 통폐합된다면 그만큼 선수와 지도자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최근에는 전국체전뿐 아니라 도민체전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 중앙 경기단체 회장은 "도민체전이 주목받으면서 시도 통합이 되더라도 각 지자체가 팀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라며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의 진정한 통합이라는 큰 틀 속에서 파장이 적기를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한국 스포츠에서 지자체 실업팀은 학생을 비롯한 전체 선수 생태계를 떠받치는 핵심 기반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용 전국체전에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니 국제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전국체전이 있어 엘리트 스포츠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만약 통합 과정에서 팀 수가 줄어든다면 해당 종목의 선수층은 더욱 얇아져 급기야 종목 자체가 존폐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지역 체육대회 구조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각 시도에서는 도민체전 같은 지역 밀착형 대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도 통합 이후 자칫하면 중소 시군의 체육 참여 기회가 줄어들고 대도시 중심으로 체육 정책이 재편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스포츠조차 대도시 과밀 현상이 심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도 통합이 스포츠에 긍정적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인구와 재정 규모가 커지면서 대형 스포츠 인프라 투자나 국제대회 유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물론 있습니다. 광역 단위 스포츠 클러스터 조성이나 종합 스포츠센터 건립, 국가대표 훈련시설 유치 등 다양한 발전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결국 관건은 통합의 방향입니다. 행정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 체육 조직과 실업팀이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풀뿌리 스포츠입니다. 반대로 광역 통합을 계기로 종목 육성 전략과 선수 지원 체계를 정교하게 설계한다면 지역 스포츠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작금의 시도 통합 논의에는 산업과 교통, 경제 이야기는 넘쳐 나지만 스포츠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포츠는 단순한 여가 정책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와 청년 선수들의 삶이 걸린 문제입니다.
시도 통합은 행정구역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그 설계도에 스포츠가 없다면, 통합 이후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 역시 지역 스포츠가 될지도 모릅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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