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물리학]과학과 무한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2026. 3. 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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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술에 배부를 리 없지만, 밥 한술 뜨는 것을 여러 번 계속하다보면 배가 부르다. 사과 하나 먹고 또 하나를 먹으면 두 개의 사과를 먹은 것이듯,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더하기 전 하나보다 더 크다. 꼭 그런 것은 아니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외가 있기는 하다. 1+1=2지만 0+0=0이어서 크기 없는 0을 서로 더한다고 크기가 0보다 커질 리 없다. 아무리 여러 술 떠도 배가 차지 않는 숟가락은 빈 숟가락일 수밖에. 같은 둘을 더하면 처음 하나보다 커진다는 것은 0을 제외하면 다른 반례가 없는 절대적 진리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여러 장갑이 뒤죽박죽 쌓여 있는 무더기에서 왼손 장갑과 오른손 장갑을 하나씩 꺼내 짝짓는 것을 이어가자. 모두 짝을 짓고 나니 왼손 장갑이 남았다면 당연히 처음 무더기에는 왼손 장갑이 오른손 장갑보다 더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히 몇개인지 세지 않고도 이 방법으로 두 집합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다. 왼손 장갑마다 오른손 장갑 하나가, 오른손 장갑마다 왼손 장갑이 딱 하나 짝지어지는 것이 일대일 대응이다. 왼손, 오른손 장갑을 남김없이 짝짓는 일대일 대응을 찾았다면 두 집합의 크기는 같다.

자연수 전체를 1, 2, 3, …처럼 종이에 일렬로 적고, 그 아래에는 정수 전체를 0, 1, -1, 2, -2, 3, -3, …처럼 양수와 음수를 번갈아 일렬로 적자. 윗줄의 3과 아랫줄의 -1처럼 같은 위치에 있는 두 숫자를 차례로 짝지으면 이 대응 관계는 일대일 대응이고, 따라서 자연수와 정수의 전체 개수는 정확히 같은 무한대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정수의 절반이 자연수이므로 자연수의 개수인 무한대에 같은 무한대를 더해서 만들어진 정수의 개수가 정확히 자연수의 개수와 같은 무한대라는 얘기다.

따라서 숫자 8을 옆으로 뉘어 쓴 것 같은 기호(∞)로 표시하는 무한대는 ∞+∞=∞를 만족한다. 같은 둘을 더해도 처음 하나와 같은 것은 0과 무한대뿐이다.

무한대에 1을 더한 것은 무한대에 무한대를 더한 것보다 작다. 무한대에 무한대를 더해도 같은 무한대니, 무한대에 유한을 더해도 같은 무한대인 것이 당연하다. 결국, 일단 무한대에 발 딛고 나면 그곳에서부터 출발해 아무리 걸어가도 제자리다.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도착하면 무한대는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안식처가 된다. 아무리 큰 수라도 유한한 두 숫자를 더하면 그 결과는 무한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유한이라는 것도 자명하다. 유한에서 출발해 아무리 여러 번 발걸음을 옮겨도 결코 무한대의 피안에 닿을 수 없다.

도착하면 영원히 머물 수 있지만 유한에서 출발해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아득한 무한대를 보면서 과학을 떠올린다. 모든 과학자는 과학자가 되자마자 이미 실패할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저 멀리 아른거리는 무한대의 피안에 알고 싶은 모든 것이 있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유한성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한계를 지워 우리는 결코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

모든 미지가 모인 것이 무한한 바다라면, 지금껏 인류가 알아낸 과학의 섬은 정말 작다. 하지만, 이 초라한 장소가 무한한 바다에서 우리가 발 딛고 올라설 수 있는 유일한 발판이다. 과학의 섬 해변에 서서 저 멀리 펼쳐진 대양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아무리 애써도 갈 수 없는 아름다운 장소가 저 멀리 펼쳐져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작은 섬의 면적을 조금이라도 늘리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뿐이다. 이성을 가진 인간의 의무다.

여행 떠난 과학자가 끙끙 애쓰며 처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의 기쁨은 잠시 후 안개처럼 사라지고, 저 멀리 더 아름다운 새로운 목적지가 그를 손짓해 부른다. 저곳에 비하면 방금 도착한 이곳은 어찌나 초라해 보이는지. 아무리 걸어가도 결코 닿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유한을 더해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수학의 무한대처럼, 결코 닿을 수 없는 궁극의 목적지를 향해 과학은 발걸음을 이어간다.

유한한 여행을 마친 후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 “이제 과학 끝”이라고 적힌 깃발을 꽂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발 나아가면 무지개는 또 저 멀리로 자리를 옮긴다. 과학의 눈은 무한의 무지개를 향하고 과학의 발은 유한한 땅을 딛는다. 과학은 무지개가 아니다. 무지개를 향한 여정이다. 과학이 아름다운 이유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과학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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