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동인천역 북광장에 문 연 ‘건강이룸터’

송윤지 2026. 3. 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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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숨긴 사연… 단속 대신 ‘속사정 들어드립니다’

‘금주·금연구역’ 과태료 효과 없자
동구중독관리지원센터, 방식 전환
“이혼하고 답답해서” 귀 기울이자
60대 주취자 눈물… 약자 관리 물꼬

인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 마련된 건강이룸터에서 한 시민이 절주 상담을 하고 있다. 건강이룸터는 금연·절주·중독 상담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알코올 체질 테스트’ 등을 제공한다. 2026.3.3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

“식사들은 하신 거예요? 저기 ‘건강이룸터’에 가서 시원한 물이라도 몇 잔 마시고 가세요.”

인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는 ‘금주·금연 구역’이라는 안내문이 무색하게 술판이나 시비 등이 자주 벌어진다. 지난 3일 오후 2시께 소주를 들이키던 한 남성에게 박신영 인천동구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이하 센터) 팀장이 다가갔다.

박 팀장은 “음주한 상태로 보이거나 중독 상담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분들에게 먼저 말을 건다”며 “날이 따뜻해져 광장에 나오는 분들이 더 늘어날텐데, 이룸터에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얼굴부터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동구가 지난 1월 19일 동인천역 북광장 한쪽에 ‘건강이룸터’를 열었다. 동구보건소가 시설을 관리하고, 센터가 위탁 운영한다.

매주 화·수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알코올, 흡연 중독 상담과 함께 알코올 체질 테스트 등도 제공한다.

인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 마련된 건강이룸터에서 한 시민이 ‘알코올 체질 테스트’를 하고 있다. 2026.3.3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


건강이룸터에서 1차 상담과 선별 검사가 이뤄진 후 심층적인 상담이 필요하면 센터로 연계한다.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인천의료원에 인계해 입원 등을 돕는다.

동인천역 북광장은 상습적인 음주와 흡연 등으로 민원이 잦은 곳이다. 동구는 지난 2023년 7월부터 광장 전역을 ‘금주·금연 구역’으로 지정한 후 계도 캠페인을 실시하고 과태료를 부과해왔으나,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단속 대신 상담에 무게를 두겠다는 취지로 건강이룸터를 열었다.

“25년 전에 이혼한 후 서른여섯 살에 처음 술을 마셨어요. 아무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을 안 해줘서 답답한 마음에….”

이날 박 팀장의 권유로 건강이룸터에 들어선 조윤철(가명·60)씨는 상담 중에 “오늘만 벌써 소주 6병을 마셨다”며 “매일 광장에 나와 혼자서라도 2~3병씩은 마신다”고 말했다.

그와 마주 앉은 박연화 휴먼터치연구소장(정신건강·중독 전문 연구소)이 눈을 맞추며 조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알코올, 약물, 마약 등 중독상담 전문가인 박 소장은 건강이룸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박 소장은 그에게 어디서 태어났는지, 가족은 누가 있는지, 젊은 시절 어떤 일을 했는지 등에 대해 물었다. 음주 빈도와 술을 마시게 된 계기 등을 물으면서 ‘조기선별 및 단기개입 기록지’에 상세한 수치를 적었다.

인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 마련된 건강이룸터에서 한 시민이 ‘알코올 체질 테스트’를 하고 있다. 2026.3.3 /송윤지기자 ssong@kyeongin.com


박 소장은 “노숙 생활이나 오랜 음주 중독 상황에 놓인 분들 중에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먼저 묻고 들어주는 것이 상담의 물꼬를 여는 첫 단계”라고 했다.

“이야기 나누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세요. 오늘 술은 그만 드시고요.”

박 소장의 당부에 조씨가 눈물을 보이며 자리를 떠났다. 조씨는 지속적인 중독 상담과 함께 인천의료원에서 간경화와 당뇨 등 보유 질환에 대한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선우영경 인천동구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정신과 전문의)은 “술을 많이 마셔 몸에 이상이 생겼지만, 치료를 받고 싶어도 의료비 걱정이나 수급이 끊길까 봐 병원을 찾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서 “건강이룸터에서는 의료 지원 방법도 함께 설명해 드리며 상담과 치료를 연결하는 체계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송윤지 기자 sso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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