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하 변호사의木鷄之德(목계지덕)] 사실을 말해도 죄가 되는 역설, 사실적시 명예훼손

knnews 2026. 3. 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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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당사자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법률 조항들을 마주하고는 합니다. 그중 하나는 형법 제307조 제1항, 이른바 사실적시 명예훼손입니다.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해당 법률 조항은 법조계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에 규정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공연성으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법원은 비록 한 사람에게 사실을 유포했더라도 그것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을 인정합니다. 둘째는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입니다. 법원은 사실의 적시란 의견 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행위가 사람의 명예(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하여야 합니다.

한 사례를 살펴보면, 채권자가 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채무자를 상대로 채무자가 다니는 종교 시설 앞에서 “돈 안 갚는 OO, 호화주택 웬 말이냐”, “법원 판결 이행하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한 사안이 있었습니다. 채권자는 법원에서 채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에 승소하였으나 채무자로부터 받지 못한 돈 때문에 궁핍한 삶을 살고 있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하였는데, 법원은 이를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함과 동시에 채무자의 사생활과 관련된 장소에서 채무를 알린 행위’로 보아 채권자를 형사 처벌하였습니다.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돈을 갚지 않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은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림으로써 채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는 이유로 채권자를 처벌한 것입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공익적 목소리마저 위축시키는 도구로 악용되기도 합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는 미투 운동에서 보듯, 문제 제기자가 오히려 피고인이 되는 사례가 빈번하고 이들은 수사나 재판 절차에 회부되는 것을 걱정하여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물론 현행 형법 제310조는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법원 역시 부수적으로 사익적 동기가 섞여 있더라도 주된 목적이 공익에 있다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당한 권리자가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는 행위를 매번 공익이라는 엄격한 틀에 맞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국민의 입장에선 처벌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대한 판단 영역을 전적으로 법원의 해석과 판단에만 맡겨 두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관련하여 전면 폐지를 고민해 보아야 하고, 한편으로는 형법 제310조에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는 규정을 보완할 필요성도 존재한다고 할 것입니다. 동시에 민사적 손해배상 기준을 구체화하여 형사적 공백을 보완하는 균형 잡힌 제도 개혁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법무법인 시그널 수석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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