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column] 토마스 프랭크는 왜 토트넘에서 실패했는가?

정지훈 기자 2026. 3. 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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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IF'의 사전적인 의미는 '만약에 ~라면'이다. 은 '만약에 내가 축구 기자가 된다면'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누구나 축구 전문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발행하고 있는 'No.1' 축구 전문지 '포포투'와 함께 하는 은 K리그부터 PL, 라리가 등 다양한 축구 소식을 함께 한다. 기대해주시라! [편집자주]

토마스 프랭크 감독은 오랜 시간 ‘성공의 서사’를 써 내려온 지도자였다. 2016년 2부 리그에 머물던 브렌트포드에 수석코치로 합류한 그는 2018년 정식 감독으로 승격된 이후 팀을 완전히 다른 궤도로 올려놓았다. 명확한 전술을 바탕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마침내 2020-21시즌 프리미어리그 승격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승격 이후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2021-22시즌 13위, 2022-23시즌 9위, 2024-25시즌 10위. 브렌트포드는 더 이상 ‘잔류가 목표인 팀’이 아니었다. 중앙에서의 탄탄한 지배력과 세트피스를 무기로 중위권에 안착한 안정적인 팀으로 자리 잡았다. 프랭크는 ‘약팀을 구조적으로 성장시킨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 7월, 토트넘 지휘봉을 잡았다. 전 시즌 유로파리그 우승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리그 17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토트넘은 반등이 절실했다. 빅6의 자존심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프랭크는 ‘재건의 적임자’로 낙점됐다.

입단 기자회견에서 그는 “난 도전을 좋아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어디서도 해임당한 적이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 말은 8개월 만에 무색해졌다. 리그 7승 8무 11패, 홈에서는 단 2승에 그친 성적. 결국 지난 2월 11일 구단의 공식 발표와 함께 그는 경질됐다. 통계 전문 매체 ‘옵타’에 따르면 프랭크는 토트넘 역사상 프리미어리그 최저 승률을 기록한 감독으로 남게 됐다.

약팀을 승격시키고 팀을 PL 중위권에 안착시킨 지도자. 그러나 빅 클럽에서는 실패한 감독. 그렇다면 왜 같은 지도자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이번 칼럼에서는 토마스 프랭크의 토트넘 실패를 단순한 성적 부진이 아닌, 전술적 관점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브렌트포드에서 통했던 그의 축구가 왜 토트넘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는지, 그 간극을 하나씩 짚어본다.

# 브렌트포드 시절 프랭크의 축구

프랭크 감독에 브렌트포드 시절 축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확실한 구조가 있는 축구였다’. 단순히 수비 후 역습이라는 프레임이 아니라, 경기의 특정 구간을 의도적으로 설계해 상대를 유도하고 그 틈을 파고드는 방식이었다.

1. 중앙 지향 빌드업 – 짧고 빠른 선택

프랭크는 빌드업 단계에서 중앙 미드필더 4명을 밀집 배치하는 형태를 자주 활용했다. 센터 지역에 수적 우위를 형성해 선수 간 간격을 좁히고, 패스 거리를 최소화하는 구조였다.

이 배치는 패스 길이를 단축시켜 패스 정확도를 상승 시켰으며, 상대 압박을 유도하여 2선과 측면에 공간을 확보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중앙을 우선 공략하는 그의 철학은 단순 점유율 확보가 아니라, 다양한 선택권을 만들어내는 선택이었다. 공을 오래 갖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상대가 압박을 시도할 시간을 줄여 구조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방식이었다.

2. 골킥 설계 – ‘의도된 롱볼’

프랭크의 또 다른 특징은 골킥 상황에서의 과감한 롱패스였다. 대부분의 골킥은 전방 투톱 사이로 길게 배달됐다. 한 명은 경합, 다른 한 명은 즉각적인 침투. 이는 전개 시간을 줄이고, 전방에서 곧바로 세컨볼 싸움을 유도하는 장치였다. 이를 통해 빠른 직선적 공격 전개가 가능했으며 세컨볼에서도 많은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3. 하프스페이스와 무한 스위칭

공격 전개에서는 하프스페이스 공략이 핵심이었다. 윙어와 윙백의 적극적인 스위칭, 언더래핑과 오버래핑이 반복되며 상대 풀백과 센터백 사이 공간을 지속적으로 흔들었다. 측면에서 단순히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측면을 통해 중앙을 흔들어놓은 구조였다. 이 무한 스위칭은 상대 수비 라인을 흔들었고, EPL 팀들에게 낯선 압박감을 안겼다.

4. 세트피스 – 공간을 속이는 움직임

코너킥에서도 프랭크는 구조를 설계했다. 모든 선수를 파 포스트 쪽에 배치한 뒤, 킥 순간 니어 포스트로 침투하는 패턴을 활용했다.

이 전술의 핵심은 ‘시야 분산’이었다. 수비수는 뒤에 있는 공격수와 눈앞으로 날아오는 공 두 요소를 동시에 인식해야 했다. 그 찰나의 시간은 곧 득점 확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세트피스 완성도는 리그 내에서 반향을 일으켰고, 아스널과 같은 빅클럽도 유사한 패턴을 차용할 정도로 센세이션을 만들어냈다.

구조는 완벽했다. 그렇다면 왜 실패했는가?

중앙 지향 빌드업, 의도된 롱볼, 하프스페이스 스위칭, 설계된 세트피스. 이 모든 요소는 브렌트포드를 중위권에 안착시키기에 충분했다. 상대보다 ‘더 좋은 선수’를 가진 팀은 아니었지만, 더 잘 설계된 팀이었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완성도 높았던 프랭크의 축구가 왜 토트넘에서는 통하지 않았을까?

# 토트넘에서의 실패의 이유

프랭크의 실패를 단순히 ‘성적 부진’으로 요약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디 에슬레틱’ 아난타짓 라구라만 역시 그의 실패를 ‘구조가 작동하지 않은 문제’로 짚었다. 브렌트포드에서 통했던 설계가 왜 토트넘에서는 무너졌는지, 전술적으로 들여다보자.

1. 중앙 지향 빌드업의 붕괴 – 전진 패서의 부재

프랭크 축구의 핵심은 중앙 밀집 4인 구조였다. 그러나 토트넘은 시작점부터 달랐다. 상대 팀들은 브렌트포드 시절처럼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오히려 강하게 전방 압박을 가했고, 중앙 봉쇄했다.

그 결과 벤탄쿠르, 팔리냐 같은 미드필더들은 센터백 사이로 내려와 공을 받는 장면이 반복됐다. 중앙에 형성돼야 할 4인 밀집 구조는 자연스럽게 붕괴됐다. 만약 4인 대형을 유지하더라도 문제는 또 있었다. 이미 상대 수비는 블록을 완성한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정확한 전진 패스였다.

그러나 토트넘에는 그 역할을 수행할 선수가 없었다. 메디슨과 클루셉스키는 시즌 내내 부상이며, 시몬스 또한 탈압박 능력은 있으나 정확한 패스를 공급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결국 중앙에서 공은 돌지 않았고, 미드필더는 내려오며 간격은 벌어졌다. 프랭크가 원했던 ‘짧고 빠른 통제 축구’는 구현되지 못했다.

2. 롱볼 설계의 실패 – 골키퍼 발밑 문제

프랭크 축구의 또 다른 상징은 ‘의도된 롱볼’이다. 하지만 이 전술의 출발점은 골키퍼다.

토트넘의 골문을 지키는 비카리오 선방 능력만큼은 리그 상위권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발밑은 다른 이야기다. 통계 사이트 ‘풋몹’에 따르면 이번 시즌 비카리오의 정확한 긴 패스 성공률은 30.7%로, 리그 내 하위권이다. 이는 프랭크 축구의 기본 설계를 흔드는 수치다.

‘후스코어드’ 기준 지난 선덜랜드전 패스맵을 예로 보면, 공격수를 향한 유의미한 롱패스 성공 장면은 거의 찾기 어렵다. 전방 투톱 사이로 정확히 배달되어야 할 공이 측면으로 흐르거나 상대에게 헌납됐다. 세컨드 키퍼인 킨스키를 기용하기엔 선방 능력과 경험 면에서 불안이 존재했다. 결국 롱볼이라는 구조적 설계는 시작부터 흔들렸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받아줄 공격수였다. 솔란케는 잦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으며 히샬리송은 헤딩으로 많은 골을 득점했지만

최전방에서 버텨주는 유형에 선수는 아니다. 결국 롱볼을 이용한 전계는 실행 단계부터 오류에 가까운 전술이었던 것이다.

3. 무너진 하프스페이스와 측면 의존

브렌트포드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하프스페이스 공략과 무한 스위칭은 토트넘에서 반쪽짜리에 그쳤다. 왼쪽 라인은 텔은 전술적 완성도가 부족했으며, 스펜스는 수비력은 괜찮으나 전진 능력에서 한계를 보여줬다. 오도베르는 스피드는 뛰어났으나 부상으로 인해 전력에서 이탈한 상태다. 결국 공격은 자연스럽게 오른쪽 쿠두스-포로 라인에 집중됐다.

(25-26시즌 토트넘 주요 전진 패스 구역. 6곳 중 절반이 오른쪽 공격에 치우친 것을 볼 수 있다)

왼쪽의 위력이 떨어지자 상대 팀들은 오른쪽을 집중 견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포로와 쿠두스까지 전력에서 이탈하자, 토트넘의 측면 파괴 구조는 사실상 붕괴됐다. 프랭크 축구의 핵심이었던 ‘측면을 통한 중앙을 무너뜨리는 구조’는 구현되지 못했다.

4. 세트피스 의존과 간파

결국 토트넘은 세트피스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세트피스에서 11골을 기록하며 일정 부분 효과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이 후반으로 갈수록 상대 팀들은 패턴을 간파했다. 브렌트포드 시절처럼 낯설고 예측 불가능한 무기가 되지 못했다.

롱볼, 빌드업, 측면 플레이 모두 읽힌 순간, 프랭크의 스타일은 힘을 잃었다. 결국 브렌트포드에서 성공을 안겼던 ‘구조적 축구’는 토트넘에서는 작동하지 못했고, 그는 8개월 만에 북런던을 떠나게 됐다.

혹자들은 프랭크의 실패를 두고 잇따른 부상과 선수단의 기량 문제를 이유로 들기도 한다. 실제로 핵심 자원의 공백은 분명 그의 전술 완성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토트넘과 같은 빅 클럽의 감독이라면, 자신의 철학을 고수하는 것을 넘어 상황에 맞게 변화하며 위기를 돌파하는 유연함 또한 가져야한다. 프랭크는 브렌트포드에서 구조로 성공한 감독이었지만, 토트넘에서는 그 구조를 선수단에 맞게 재설계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빅클럽 감독이라는 다음 단계로 도약할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북런던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됐다.

글=‘IF 기자단’ 6기 김유하

정지훈 기자 rain7@fourfourtw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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