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만 나온 게 아니었다"…초등학생에게도 늘어난 지방간 [건강한겨레]

소아청소년 비만이 크게 늘면서 어린 지방간 환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류인혁 교수는 “10세 이상 비만 아동에게서 지방간은 이제 낯선 소견이 아니다. 8~9세 아이에게서도 발견된다”고 말했다.
비만과 지방간의 관계는 일견 단순해 보인다. 체내에 에너지가 남아돌면 간은 그 잉여 에너지를 지방 형태로 저장한다. 문제는 이 관계가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방간이 생기면 간은 비정상적인 신호물질(헤파토카인)을 분비하고, 이 물질은 근육과 지방조직의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킨다. 혈당 조절은 더 어려워지고, 그 결과 간에는 다시 지방이 쌓인다. 비만이 지방간을 만들고, 지방간이 대사 이상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다.
전 세계 소아청소년의 7~14%가 지방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비만 아동으로 범위를 좁히면 그 비율은 30~50%까지 치솟는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비만 아동의 40% 이상에서 지방간이 발견됐고, 코로나19 이후에는 50%를 넘는다는 보고도 나왔다. 팬데믹 기간 동안 신체활동이 줄고 배달 음식과 초가공식품 섭취가 늘면서 아이들의 간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진 것이다.
비만으로 인한 지방간은 몸 전체 대사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2023년 국제 간학계는 이 질환의 이름 자체를 바꿨다. 기존의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NAFLD)’을 ‘대사기능장애 관련 지방간질환(MASLD)’으로 공식 변경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생긴 지방간’이라는 소극적 정의에서 벗어나, 이 병이 대사 기능 이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질환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지방간은 ‘간의 병’이 아니라 ‘대사의 병’
MASLD는 단순히 간에 기름이 낀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간에 지방이 쌓이는 단계에서 시작해, 염증이 동반된 지방간염(MASH), 섬유화, 간경변으로 진행하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진단 기준도 단순히 간 수치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비만, 혈당 이상, 고혈압, 고중성지방혈증, 낮은 HDL 콜레스테롤 등 대사 위험인자 중 하나 이상이 동반될 때 MASLD로 본다.
게다가 MASLD가 있는 비만 아동은 다른 대사 질환을 앓을 위험도 높다. 실제로 스웨덴의 대규모 소아비만 코호트 ‘BORIS’ 연구(1만346명)에서 MASLD가 동반된 비만 아동은 나이·성별·비만도·가족력과 무관하게 제2형 당뇨병 발생 위험이 2.71배 높았다.
조기 치료 중요…섬유화 시작되면 완전한 회복 어려워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지방간도 초기 치료가 중요하다. 간에 지방만 쌓인 단계라면 체중 감량과 식습관 교정만으로도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염증이 지속되면 간세포가 손상되고 섬유화가 시작된다. 이 단계부터는 완전한 회복이 쉽지 않다. 문제는 소아 지방간의 악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소아 지방간염 환자를 추적한 연구에서는 약 3분의 1이 2년 이내 조직학적으로 악화됐다.
이에 따라 최신 가이드라인은 모든 비만 아동(BMI 95백분위수 이상)에 대해 MASLD 선별검사를 권장한다. 과체중 아동(BMI 85~95백분위수)도 당뇨 전단계,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대사증후군 가족력 등 위험인자가 있다면 검사 대상이다. 특히 10~12세부터는 매년 간 수치를 포함한 혈액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간 수치 이상이 모두 지방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B형 간염, 윌슨병, 자가면역 간염 등 전혀 다른 원인이 숨어 있을 수 있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감별진단이 필요하다.
류 교수는 “다행인 점은 아이들의 회복력이 어른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체중의 3~5%만 줄어도 간 지방은 의미 있게 감소한다”면서 “80㎏인 아이라면 2~4㎏ 감량으로도 충분하다. 실제로 외래에서 2~3㎏을 감량한 뒤 한 달 만에 간 수치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생활습관 교정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탄산음료와 가당 음료부터 끊는 것이다. 액상과당이 들어간 음료는 간에서 곧바로 지방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초가공식품 섭취를 줄이고, 하루 20분 걷기를 꾸준히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강도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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