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쉰의 문턱에서 다시 만난 ‘나’

윤태민 기자 2026. 3. 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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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아 작가‘오래 알고 지낸 숙녀에게’ 출간
박수아 지음/마음세상 펴냄.

쉰의 문턱에서 비로소 '나'를 마주한 한 여성의 기록이 책으로 나왔다.

박수아 작가의 첫 에세이 '오래 알고 지낸 숙녀에게(마음세상)'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자기 자신을 '숙녀'라 명명하며 써 내려간 삶의 수선록이다.

이 책은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을 통과해 스스로를 다시 호명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자개농 거울 속 수척한 소녀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저자는 수십 년의 시간을 돌아 캐나다의 서향집 노을 아래에서 다시 그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오래 알고 지낸 나를 이제 '숙녀'라 부르기로 한다.

그러면서 낡고 헐거운 일상을 '기품'이라는 실로 꿰매어가는 삶의 태도에 주목한다. 저자는 "공간을 정돈하는 일은 단순한 가사가 아니다"고 말한다. 낡은 문에 화이트 페인트를 칠하고, 촌스러운 싱크대에 시트지를 붙이는 행위는 삶의 고단함을 아름다움으로 치환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자신이 발 딛고 선 공간을 가장 아름다운 영토로 일구는 이를 '집의 여왕'이라 부르면서 삶의 통증조차 나를 만드는 빛깔임을 나직하게 들려준다.

20년간 이어온 요가 수련 역시 같은 맥락이다. 호흡을 들여다보고, 인생의 계절마다 달라지는 '잠의 포즈'를 관찰하며 뒤척임마저 현재를 살아가는 정직한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쓴맛 뒤의 달콤함을 품은 아메리카노 한 잔에서 삶의 유연함을 배우는 장면은 소박하지만 깊다.

낯선 캐나다 생활에서 마주한 고독과 언어의 장벽도 저자에게는 또 다른 '수선'의 대상이다. 공동묘지를 산책하며 삶과 죽음의 공존을 배우고, 크리스마스 조명이 꺼진 뒤의 고요함을 즐기는 시선은 차분하고 단단하다. 화려한 성취 대신 매일의 일상을 정성껏 단장하는 태도가 곧 품위임을 조용히 증명한다.

'오래 알고 지낸 숙녀에게'는 거창한 성공담 대신 일상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자신을 예우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삶이 아픔을 선물로 줄 때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정갈한 몸짓으로 응답하는 태도. 그 단정한 문장들 속에서 독자는 잊고 지냈던 자신의 얼굴을 다시 만나게 된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