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 전 미인은 누구였나

2026. 3. 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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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美人)이란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말한다.

미인은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르다.

그렇다면 100년 전 미인은 어떠했을까? 당시 조선일보에 '미인 예찬'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8명의 미인을 만나러 한번 떠나보자.

그 다음 미인은 전수일(全壽一·23) 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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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미모와 교양, 시대가 빚어낸 얼굴
외모 넘어 사회가 요구한 여성상


미인(美人)이란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말한다. 미인은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르다. 그렇다면 100년 전 미인은 어떠했을까? 당시 조선일보에 ‘미인 예찬’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8명의 미인을 만나러 한번 떠나보자.


첫 번째 소개하는 미인은 황온순(黃溫順·26) 여사다. “지난 2월 1일 오후에 먼저 미인 많기로 유명한 정동 이화학당에 발길을 옮겼다. 분홍 저고리, 연두 저고리 찬란한 옷을 입은 수백 처녀들. 그중에는 분홍 짜켓을 입고 말없이 생긋생긋 눈웃음만 치며 나오는 한 여성이 있었다. 마치 달빛에 비치는 한 포기 장미화같이 은연중에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것 같아서 그의 자태가 기자의 앞으로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 참 미인이다’ 이 밖에 더 그에게 어떻게 아름답다는 것을 무엇에 비하여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인! 미인! 그의 이름은 무엇인가? 황해도 연백군 태생으로 일찍이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 길림에 3년간 유학을 하였고 금년 3월에 이화 유치원 사범과를 졸업할 황온순 여사이다. 그의 몸이 중국에 나타났을 때에는 외국 청년의 예찬을 받았고 그가 조선에 돌아옴에 조선 청년의 흠모하는 바 되었다. 그는 기자를 향하여, ‘나는 일생을 어린이들의 동무가 되려 합니다. 내가 가장 취미를 가진 것은 피아노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어린이올시다’하고 말하더라.”(1926년 2월 3일자)

두 번째 미인은 미인은 강숙렬(姜淑烈·21) 여사다. “강숙렬 여사는 4년 전 동경 유학 시대부터 동경 남녀 유학생 간에 미인이라 정평이 있었던 바, 그때에 여사는 17세의 묘령의 처녀로 후리후리한 키에 양장을 하고 옥같이 흰 얼굴에 코가 높고 영리한 눈에는 누런 빛이 약간 도니, 누가 그를 동양의 미인이라는 탄사가 드리웠답니다. 여사는 함경도 이원(利原) 출생으로 동경 일본여자음악학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하다가 3년 전에 본국에 돌아와서 조선 일류 문사 김기진(金基鎭)씨와 사랑의 보금자리를 짓고 어여쁜 아들까지 낳아 궁정동 한적한 동리에서 즐겁고 재미있는 생활을 합니다. 2일 저녁때 기자가 그를 자택으로 찾아가니 어린 아기를 가슴에 안고 정다운 웃음을 띄며 ‘나는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아직 가정적 취미나 어린 아기의 귀여움을 그다지 느껴지지 않아요. 그리고 동경에 유학을 할 때가 그리웁디다. 앞으로 음악을 다시 계속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뜻대로 될는지요’하고 말합디다.”(1926년 2월 4일자)

그 다음 미인은 전수일(全壽一·23) 여사다. “1919년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전수일 여사는 재학 당시에는 그 학교 대표적 미인이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는 상업은행원 김동원(金銅元)씨의 부인이 되어 벌써 자녀 남매를 슬하에 두고 화락한 가정생활을 하는 터이니, 지난 3일에 방문한 기자를 향하여 ‘나를 미인이라고요. 그것도 다 전에 말이지 이제는 꼬부랑 할멈이 되었는데...’하고 잠깐 웃음을 띠더니, 다시 말을 계속하여 ‘나는 이제는 제 몸치장도 아무 것도 잊어버리고 다만 시부모님을 잘 섬기고 남편을 잘 받들고 자녀를 잘 기르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습니다. 참말로 우리 가정의 꽃도 되고 노래도 되는 것은 이 어린 아이들이에요’라고 합디다.” (1926년 2월 5일자)

다음은 심명숙(沈明淑·21) 여사 이야기가 실린다. “인천 실업가 심능덕(沈能德)씨의 따님 심명숙 여사는 조선일보 인천지국 총무 박정규(朴鼎圭)씨의 부인이며 돋아 오는 반달같이 그의 얼굴, 멀리서 바라보면 서광이 비치는 듯하고 가까이 마주 보면 방금 피어오르는 함박 꽃송이 같다. 오직 그를 미인이라고만 부르기는 너무나 아까운 듯한 느낌이 있으나 이 위에 무엇이라 적당한 이름을 지어 찬사를 드릴 수도 없으니, 기자는 그를 일컬어 미인지미인(美人之美人)이라고 부르짖으려 한다. 그가 인천 어떤 학교 재학 당시에 그를 가르치던 어떤 선생의 말을 듣건대,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그만큼 마음도 그렇게 아름답고 성격이 활발하며 성적이 또한 항상 우등이었으니 선생에게 칭찬을 받고 동무에게 귀여움을 한없이 받았었다 한다.”(1926년 2월 6일자)

다섯 번째 미인은 신숙희(申淑姬) 여사다. “그는 일찍이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니 재학 당시부터 어디를 가든지 가는 곳마다 그의 얼굴과 태도를 찬미하는 이들뿐이었다. 그를 일컬어 물찬 제비 같다는 이도 있고 양귀비꽃 봉오리 같다는 이도 있었다. 그는 얼굴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겸하여 목소리가 청아하니 학교에서 학예회를 열 때마다 으레 그가 독창을 하게 되었고, 독창을 할 때마다 또한 반드시 우박이 쏟아지는 듯한 박수갈채의 재청(再請)이 있었다. 그가 최진(崔鎭) 변호사의 아들 최순문(崔淳文)씨와 결혼하고 신혼여행 겸 유학 차로 동경에 건너가 일본여자음학학교에 입학하니, 그를 대하는 일본 사람마다 동양에서 처음 보는 일본식 미인 또는 화중(畵中)의 미인이라고 불렀다 한다고 하더라.” (1926년 2월 7일자)

여섯 번째 소개하는 미인은 이계영 여사다. “방금 미국에 유학 중인 호시한(胡始翰)씨의 부인 이계영(26) 여사.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첫 번보다 두 번, 두 번보다 세 번 볼수록 그의 미(美)를 차차 더 찾을 수 있는 은근하고 깊숙하고 복스러운 미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이화학당 중등과를 졸업하고 현재 모교 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니, 그가 묘령 처녀로 그 학교에 재학할 때에 어떤 신사 관람객은 ‘부잣집 맏며느리감이군. 복이 더덕더덕한데’하고 복스러운 미인이라는 평을 부치고 간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평생에 분으로 얼굴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별로 비단 옷을 입지 아니하며 7살과 4살 된 아들 형제로 더불어 남편의 금의환향(錦衣還鄕)을 고대하고 있는 중이다.”(1926년 2월 8일자)

다음 미인은 정수복(鄭壽福) 양이다. “조선일보사 주최의 8개 여학교 연합 빠-사에 모여 들었던 수많은 손님들로부터 ‘참 잘 생겼는데’라는 찬사를 한없이 받던 정수복 양은 십오야 둥근 달이 반공(半空)에 높이 솟은 듯 환하고 번듯한 얼굴이라 하겠습니다. 작년 봄에 동덕여학교를 우등 첫째로 졸업하고 방금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중이니, 그는 어제 일요일 오후에 자택으로 방문한 기자를 향하여, ‘저는 할 줄은 몰라도 음악에 대단히 취미를 가졌으므로 금년 봄에 동경으로 음악을 공부하러 갈까 하는데 아이들을 어떻게 떠날는지요’하고 말합디다.” (1926년 2월 9일자)

기사는 정영신(鄭永信) 여사 이야기로 ‘미인 예찬’의 끝을 맺는다. “출생지인 평양 일대에서 얼굴 이쁘고 맵시 있기로 일찍이 이름이 높았을 뿐 아니라 그의 출신 학교인 중앙 유치원 사범과 어떤 선생은 동 사범과 설시(設施) 이래로 ‘그렇게 복슬복슬 어여쁘고 재간 있는 학생은 참으로 보기에 드물었다’고 말함을 들었습니다. 작년 12월에 백남선(白南旋)씨와 더불어 백년가약을 맺고 창신동 고요한 곳에서 한편으로 화락한 가정생활을 하며 한편으로 어린이 보육 사업에 전력을 다하는 중이 올시다. 그는 기자를 향하여 ‘어린이가 모인 곳이 참 천국이요, 마음에 무슨 불평한 일이 있다가도 유치원 문을 척 들어설 때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선생님하고 부르면 그만 모든 수심(愁心)이 다 풀어지고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고 합디다.”(1926년 2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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