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의 가디너, 서울에서 펼친 바흐 B단조 미사

박경은 기자 2026. 3. 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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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엘리엇 가디너의 지휘로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CCO가 ‘바흐 B단주’ 미사를 연주하고 있다. ⓒStudioGu

장신의 노장은 꼿꼿한 걸음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검은색 벨벳 재킷 소매 끝으로 보이는 붉은 셔츠는 짙은 무채색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끌어당겼다. 바흐 해석의 지형을 바꿔놓은 지휘자.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 고음악을 대중화시키며 ‘시대 연주’의 표준을 만들어낸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난 3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컨스텔레이션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이하 CCO)와 함께 섰다. 2004년 잉글리시바로크 솔로이스츠, 몬테베르디 합창단을 이끌고 내한한 뒤 22년만에 한국 관객들과 만난 자리다. 그가 2024년 창단한 CCO는 세계 클래식 평단에서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며 일류 앙상블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대 연주란 바로크 등 당대의 연주 방식, 악기, 발성법 등을 복원하고 재현하는 연주방식을 말한다. HIP(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이라고도 불린다. 무대에 오른 악기만 봐도 현대적인 여느 오케스트라와는 사뭇 다르다. 밸브(누름쇠) 없는 트럼펫과 호른, 신화를 연상시키는 커다랗고 길쭉한 류트가 있고 첼로에는 엔드핀(받침발)이 없다. 현악기에 사용하는 현은 금속 대신 동물의 창자로 만든 ‘거트 현’을 사용한다. 현대적 악기의 매끈한 질감 보다는 자연스럽고 투명한 소리를 낸다.

가디너가 이날 들려준 곡은 바흐의 B단조 미사. 바흐가 평생 쌓아올린 작곡 기법(푸가, 코랄, 아리아, 합창 등)을 총동원해 내놓은 미사곡이다. 1부를 여는 ‘키리에’(Kyrie·자비송)의 시작은 마치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이라는 이름처럼 하늘이 열리고 별이 빛나는 듯 공기를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4성부의 합창과 오케스트라는 조화로운 앙상블을 쌓아올리면서 섬세한 사운드를 직조해냈고 긴밀하게 얽혔다. 목소리와 악기가, 음표와 시선이 서로 부드럽게 포옹하듯 어루만지며 빚어내는 화음의 폭포 속. 객석에선 차마 죽이지 못한 탄성같은 한숨도 새어나왔다.

크레도(신앙고백), 상투스(거룩하시도다), 호산나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기승전결 한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합창단원들이 무대 대형을 이리저리 변경했던 시도는 마치 십자가의 길을 내고 하늘 문이 열리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이끌어냈다. 상투스에 이어진 호산나 합창이 터져나오는 부분에선 밤하늘이 열리고 쏟아지는 별들이 춤을 추는 듯한 환희를 선사했다. 폭탄과 미사일이 터지는 참혹한 시기,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세상에 과연 신은 있을까.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정결하고 거룩한 영혼을 지킬 수 있을까. 무수한 질문을 던지며 답을 구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미션 없이 이어진 2시간의 연주. 변함없이 또렷하고 투명하면서 밀도있는 연출을 보여준 여든 셋의 가디너는 여전히 꼿꼿했고 카리스마와 에너지로 번득였다. 상당수 관객들이 일어나 그의 손끝을 향해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특히 2차례 앨토 아리아를 소화하며 빛나고 청아한 목소리를 들려준 카운터테너 레지널드 모블리에겐 긴 박수가 이어졌다. 가디너는 베토벤 전곡 교향곡 시리즈로 내년 하반기 다시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존 엘리엇 가디너. ⓒStudioGu

박경은 선임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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