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英 이야기 속 한국계 여주인공… '브리저튼4' 하예린, 전 세계 사로잡은 자신감 [종합]
19세기 영국 상류층 이야기 속 한국계 여주인공의 존재감
"이젠 손숙 손녀 아닌 배우 하예린입니다."

올해 28세인 한국계 배우 하예린이 당당히 '브리저튼4'의 주인공을 차지, 전 세계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에서 연기자를 꿈꾸던 하예린은 다양한 기로를 거쳐 할리우드에 입성, 수많은 팬덤을 양산한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4'의 주역이 됐다.
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커뮤니티 하우스 마실에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브리저튼' 시즌4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행사에는 주역인 배우 하예린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9세기 영국 상류사회를 뒤흔든 스캔들과 로맨스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은 최근 시즌4로 돌아왔다. 이번 시즌4는 결혼에 무심한 자유로운 영혼 베네딕트 브리저튼(루크 톰프슨)이 가면무도회에서 만난 은빛 드레스의 여인과 현실의 하녀 소피 백(하예린) 사이에서 사랑과 정체성, 계급의 경계를 넘나드는 로맨스 시리즈다.
극중 한국계 배우 하예린은 소피 역을 맡았다. 소피 백은 '브리저튼' 시리즈의 새로운 캐릭터로, 하녀 신분이지만 넘치는 기지와 매력을 갖춘 인물이다. 앞서 공개된 파트1은 변장을 한 소피가 브리저튼 가문에서 주최한 가면무도회에 참석하며 시작됐다. 가면 뒤에 신분을 숨겼음에도 한없이 반짝이는 소피 백의 매력은 베네딕트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두 사람의 짜릿한 로맨스 텐션이 관전 포인트다. 여기에 앞선 시즌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하인들의 서사가 펼쳐지면서 화려한 사교계의 뒷이야기 또한 담겼다.

이날 하예린은 "한국에 온 지 1년 6개월 됐지만 아직 한국어가 어설프다"라면도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했다. 자신이 맡은 인물에 대해선 "겉모습은 강하지만 속은 연약하다. 굉장히 복잡한 인물이기에 연기를 하는 것이 재밌었다. 한국 차트 2위까지 올랐다고 들었는데 너무나 감사하고 놀라웠다. 글로벌 1위는 실감이 안 났다. 현실 바깥의 일처럼 느껴졌다. 손에 닿지 않는, 체감되지 않는 느낌이었다"라고 돌아봤다.
그렇다면 '브리저튼4' 주역 자리를 꿰찬 비결 역시 궁금증을 모았다. 이에 하예린은 "지난해 엄마가 사는 태안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당시 에이전트가 '브리저튼'을 아냐며 24시간 안에 비디오를 촬영해서 보내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하루 만에 장면을 연습해서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냈고 당연히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바로 줌 미팅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감독님들과 함께 인터뷰를 했고 뒤이어 루크 톰프슨과도 줌으로 인터뷰를 했다. 할머니를 뵙고 나중에 강남역에 있을 때 여주인공 역할로 발탁됐다고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저는 저보다 더 예쁜 여자, 또는 실력 있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루크 말로는 그런 제 마음이 잘 보였다고 했다"라고 덧붙이며 당시의 감동을 전달했다.
다음 시즌 출연에 대한 궁금증이 높다. 이를 두고 하예린은 "아마 소피 백이 브리처튼 가에 소속된다면 다음 시즌에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루크와의 호흡은 다행스럽게도 찍는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촬영했다. 두 인물이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저 역시 루크와 서서히 알아가면서 작업했다. 저희는 너무 웃음 코드가 비슷하다. 루크는 사랑이 많은 인간이자 친구다"라고 언급했다.
인종별로 다양한 인물들이 출연하는 작품 특성상 모던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가 주 골자다. 하예린은 "저희 작품은 시대적 배경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오늘날의 모습 그대로를 반영했다. 누구나 이 작품을 봤을 때 누구나 상상하는 자신의 환상을 투영해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답고 전 세계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됐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성적 취향이 존재한다"라고 설명했다.

1997년생인 하예린은 계원예고 등 한국에서 연기를 배운 후 넷플릭스 시리즈 '서바이버스', 드라마 '헤일로'에서 활약한 바 있다. 특히 외조모인 손숙의 손녀로도 익숙한 배우다. 그는 "한국에서 연기를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주인공이다 보니 세트장에서 내가 해야 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했다. 할머니는 딱히 조언을 해주시진 않았다. 할머니는 저의 출연작을 다 보셨다. 사진을 보냈는데 후배들과 함께 보셨다. 할머니가 눈이 안 좋으셔서 TV 가까이서 보셨다. 자랑스럽고 사랑한다고 했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짠했다. 할머니가 오늘 아침에 노출 장면을 보니 민망했다고 하셨다. 넘기실 줄 알았는데(웃음)"라고 말했다.
'브리저튼' 시리즈 특성상 수위 높은 노출과 베드신 등을 각오해야 했을 터다. 이에 하예린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몸에 대해서 비난하고 비판하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 때문에 저 역시 부담스럽고 두려웠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서구 대비 미에 대해 엄격하다. 제가 한국에서 자라면서 제 자신,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정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과정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가 저를 도와줬다. 제 생각에 업계에서는 여배우들이 수위가 있는 장면을 찍었을 때 항상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나를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들었다"라고 짚었다. 하예린이 언급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란 영화 또는 드라마 등 촬영장에서 배우들의 노출 관련 조율을 담당하는 인력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홍보 프로모션 과정에서 하예린을 둘러싸고 인종차별에 대한 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앞서 넷플릭스 스페인 측은 공식 SNS에 '브리저튼' 시즌4의 주연인 루크 톰슨·하예린·한나 도드의 홍보 프로모션 현장을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 이를 두고 일부 시청자들은 사진 속 배우들의 구도가 주연인 루크 톰슨와 하예린 대신 한나 도드를 부각시켰다고 일침을 가했다. 하예린은 "시즌3까지 마치고 제가 새로운 인물로 등장하면 호흡이 흐트러질지 걱정했는데 오히려 현장 스태프들은 새로운 에너지를 원했다. 그래서 저를 반갑게 느껴졌다. 7년간 배우 생활 내 모든 사람들이 평등했고 다양성이 존중됐던 현장이다"라면서 일각의 의혹을 일축시켰다.
그런가 하면 하예린은 업계 내 동양 배우들의 활약과 행보에 대한 소신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하예린은 "저는 '가면 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이 자리에 온 것이 순전히 운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저는 굉장한 책임감을 느낀다. 이는 결코 가볍게 느끼지 않는다. 여전히 할리우드에서 동양 배우들이 갈 길이 멀다"라고 현실을 바라봤다. 이어 "제가 앞서서 변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제가 아주 기쁘게 감당할 수 있는 작업이다. 이번 작품에서 저는 리더십을 배웠다. 이 업계는 정말 인간 관계가 너무나 중요하다. 이런 환경을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제가 일을 할 때 가장 최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요소다. 그리고 두려움을 넘어설 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라면서 자부심을 표출했다.
한편 하예린이 출연한 '브리저튼4'의 파트2는 지난달 26일 공개됐다.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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