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빈자리’ 채운 염소고기···소비량은 2배 늘었는데, 불법도축 등 관리는 사각지대
국산 43.1% 불법 도축 해 유통
위생·질병추적 등 관리 사각지대
음식점도 국산 대신 호주산 선호
수입물량 4년새 7배 늘며 시장 장악
지난달 26일 저녁 경기 성남의 모란시장 입구 ‘흑염소 거리’. 10여 곳의 염소탕·전골 전문점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 골목은 중장년 손님들로 북적인다.

40대 직장인들도 퇴근길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줄지어 흑염소 식당을 찾았다. 직장인 송 모씨는 “가끔 기력이 떨어질 때마다 직장 동료들과 이곳을 찾는다”며 “보신탕 금지법 등 개고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 좋아지다 보니, 요즘은 염소탕을 주로 먹는다”고 했다.
이 거리에서 30년째 ‘흑염소탕 집’을 운영 중인 상인회장 김용복(68)씨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손님 10명 중 8~9명은 보신탕을, 1~2명만 염소탕을 찾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반대”라며 “한여름 복날이나 주말, 장날엔 하루 200그릇 넘게 나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보양식을 판매한 이 모(71)씨는 아예 지난해 말복 이후 메뉴판에서 보신탕을 지웠다. 이씨는 “개 식용 금지는 내년 2월부터지만 염소탕만으로도 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염소고기 소비량은 2020년 6328t(톤)에서 2024년 1만3708t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2024년 1월 개 식용 종식법 제정 이후 ‘보신탕’을 대신해 보양식으로 염소고기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결과다.
◇43.1%는 불법 도축, 소비자 안전은 ‘사각지대’
소비는 크게 늘었지만 염소고기의 생산·도축·유통을 아우르는 관리 체계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도축장을 거치지 않은 물량이 상당한 데다 농가 등록률도 낮아 위생·이력·원산지 관리에 구조적 허점이 있다는 평가다.
정부 추정에 따르면, 도축장을 거치지 않고 시장에 불법 유통되는 염소고기 물량은 43.1%에 달한다. 전국 염소 사육 농가 1만1474곳 중 미등록 축사 비율도 62%에 이른다.
불법 도축은 식품 안전과 직결된다. 정식 도축장에서는 도축 전후 위생 점검과 잔류 물질 검사 등을 통해 이상 여부를 확인하지만, 불법 도축은 이런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10월에는 제주 서귀포의 한 야산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불법 도축장을 운영한 사례가 적발됐다. 경찰 조사 결과, 도축장은 녹슨 장비와 동물 털, 부산물이 뒤섞인 비위생적 환경이었고, 병들거나 기력이 약한 개체도 별다른 검사 없이 도축·가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호성 전북대 교수는 “위반이 일부에 그친다면 농가 간 자정 작용이 작동하겠지만, 절반가량이 불법 도축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선 ‘왜 나만 지키느냐’는 인식이 생겨 관리가 오히려 더 어렵게 된다”며 “도축·유통 경로가 명확하지 않으면 위생 관리와 질병 추적이 어렵고, 결국 피해는 소비자가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관리 체계 부실을 틈타 수입 염소고기는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 2024년 호주·뉴질랜드에서 수입한 염소고기는 8143t으로 2020년 1161t 대비 7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 염소 생산량은 5167t에서 5565t으로 7.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염소고기 자급률은 2020년 81.7%에서 2024년 40.6%로 반 토막이 났다.
모란시장에서 만난 흑염소 음식점 점주 A씨는 “흑염소 거리에서도 대부분 수입산을 쓴다”며 “국산 염소는 상대적으로 비싼 데다 누린내가 나는 경우가 잦아, 탕보다는 즙을 만드는 데 주로 쓴다”고 했다.
◇정부 ‘농가 등록활성화·염소 이력제’ 도입 추진
염소 농가들은 축산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가축 사육업 등록을 해야 한다. 하지만 농가에서는 등록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 염소 농가 관계자는 “농가가 등록돼 있지 않아도 등록된 유통업자가 매입해 정상 도축장으로 가져가면 유통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도축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도 걸림돌이다. 일부 지역 농가는 염소를 도축하기 위해 수시간을 이동해야 하고, 도축 이후 다시 냉장 탑차로 운송해야 하는 등 비용 부담이 크다. 흑염소협회 관계자는 “전남처럼 도축장이 가까운 지역은 사정이 낫지만, 강원·경상권 일부 지역은 현실적으로 불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했다.
정부는 시장을 양성화해 국산 염소고기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연내 100두 이상 사육 농가를 우선 점검하고, 미등록 사유를 분석해 등록 활성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소·돼지처럼 개체별 이력번호를 부여해 사육부터 도축·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추적 관리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규제만 강화할 경우 현장 반발만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 교수는 “염소 산업은 한우처럼 20~30년에 걸쳐 제도·통계·자조금 체계를 쌓아온 축종과 달리 기반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등록 이후 농가에 돌아오는 인센티브가 없다면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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