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청주에서 봤던 그 작품들, 이번엔 더 깊게"

■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성파선예’라길래, 솔직히 처음엔 ‘좀 어렵겠는데?’ 싶었거든요.
근데 막상 들어가면요. 설명을 공부하듯 읽기보다 내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전시예요.
그래서 제목도 이렇게 잡아봤어요. '청주에서 봤던 그 작품들, 이번엔 더 깊게.'
작년 가을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성파 스님 작품을 보셨던 분들이라면, 이번 전시는 더 반갑게 느껴지실 거예요.
작품이 '나를 보라'기보다, 조용히 '네 마음은 지금 어때?' 하고 묻는 느낌이랄까요.
거울에 비치고, 물결에 흔들리고, 시선이 위아래로 확장되면서 '나랑 작품 사이 경계가 흐려지네?' 하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래서 어떤 구간에선 나도 모르게 속도가 느려지고, 숨이 한 박자 늦춰지기도 해요.
옻칠회화부터 도자, 글씨까지 장르가 달라도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요.
게다가 신작을 중심으로 150여 점이 한 전시 안에서 ‘한 마음’으로 묶이는 게 묘하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결국 남는 건 '뭘 봤지'보다 '내 안에서 뭐가 움직였지'예요.
정승조의 아트홀릭, 오늘은 '박본수 경기도박물관장'과 함께 경기도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 '성파선예(性坡禪藝) : 성파스님의 예술세계' 안으로 들어가 보시죠.
■ 전시 제목이 ‘성파선예 : 성파스님의 예술세계’이잖아요. 여기서 말하는 ‘선예’는 한마디로 뭐라고 이해하면 좋을까요?

선예(禪藝)란 불교의 선(禪) 수행과 맞닿아 이루어지는 예술 활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파선예(性坡禪藝)’는 수행자(修行者)인 성파 스님의 예술입니다.
전통시대에 문인(文人)의 그림을 ‘문인화(文人畵)’라 했고, 선승(禪僧)의 그림을 ‘선화(禪畵)’라 했습니다. ‘선예(禪藝)’는 ‘화(畵)’의 영역을 ‘예술(藝術)’로 확장한 의미입니다.
서예, 도자, 쪽염색, 한지, 옻칠회화 등 여러 장르를 폭넓게 섭렵한 수행자 성파가 하는 예술을 ‘성파선예’로 명명한 것이고, 자연스럽게 ‘선예’의 핵심은 도(道) 닦는 수행자의 예술이기에 종교적 내용이나 메시지를 뿜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전시에선 2025년 신작 옻칠회화를 중심으로 옻칠염색·도자불상·도자대장경판까지 150여 점을 선보이는데요. 다양한 작품들을 한 흐름으로 묶어준 공통의 축은 뭐였나요?

성파 스님의 예술을 '도(道) 닦는 수행자의 예술'이라고 했을 때 결국 ‘마음’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님은 '우리 모두 수행하러 온 도인(道人)인데, 못 알아채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파스님은 스무살 무렵 출가하여 수행 정진과 한문으로 된 불경의 우리말 번역 사업 참여, 그리고 통도사 주지 등을 두루 거치면서 이른바 불교의 수행(이판)과 행정(사판)을 모두 경험하셨습니다. 통도사 주지를 마친 후에는 우리 전통문화와 예술의 탐구, 그리고 실행이라는 제3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939년생이신 스님은 속세의 나이로는 90세를 바라보는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일관성과 평상심(平常心)을 강조하면서 마음먹기(마음가짐)에 따라 모든 것을 시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마음(마음가짐)’이야말로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여러 장르를 쉼 없이 연구하고 실험하고 새로운 시도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봅니다. 1985년부터 5년간 이루어진 서운암 삼천불전 도자불상 불사 이후 서운암 16만 도자대장경의 제작과 장경각의 건립은 남북평화통일기원 불사(佛事)로써 무려 22년 동안 진행된 스님의 업적이자 미래 문화유산입니다. 또한 수없이 많은 미술재료의 수집과 실험을 거쳐 옻의 유익한 특성(방수, 방부, 방충 등)에 매료되었고, 이 재료의 실험을 거쳐 마침내 옻칠 회화 장르를 전도(傳道)하는 전도사가 되셨습니다. 요컨대 이러한 모든 일은 스님의 ‘마음먹기’, 곧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전시의 소제목으로 마음을 강조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마음대로’를 넣었습니다.
■ 전시는 ‘나와 남, 인간과 사물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평등하다’는 깨달음을 예술 언어로 보여준다고 하잖아요. 그 메시지를 선명하게 체감하는 첫 장면은 어디일까요?

특별전 전시장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삼천불전의 도자불상 전시물은 거울 효과를 통해 도자불상이 무한 반복적으로 보여집니다. 예경(禮敬) 대상인 서운암 삼천불을 모두 이운하여 전시할 수 없기에 35구의 불상을 전시장에 배치하였고 그 중 유리장 안에 21구의 불상이 전시되었습니다. 이 불상들은 1985년에 10개의 나무로 만든 기본 불상 형태를 토대로 3천개의 도자불상으로 만들어졌으며, 표면 유약의 유무, 가마에서 굽는 동안의 수축 변형, 그리고 성파스님이 손수 하신 개안(開眼: 눈썹과 눈, 입술을 그림) 과정에서 수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 불상들은 약합을 든 약사여래, 오른손을 든 아미타여래, 그리고 선정인과 합장인을 한 석가여래 등 주로 세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높이가 30센티미터인 이 불상들의 모습은 어린이처럼 귀여운 모습도 있지만, 근엄한 표정을 한 모습도 있습니다. 성파스님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도(道)를 닦으러 온 사람이라는 점을 새기는 한편,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 부처가 있다는 점을 되새겨본다면 삼천불전 각각의 부처님은 곧 나와 이웃, 나와 타인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시 2부의 소주제인 ‘물아불이(物我不二)’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사물과 나, 타자와 나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주로 원 형태의 작품으로 연출하고 있습니다.
■ 1부 ‘영겁’은 ‘우주의 시작점’ 같은 느낌을 담았다고 하는데요. 아트홀릭 독자들이 '이 장면만큼은 이렇게 봐줬으면 좋겠다' 싶은 포인트가 있을까요?

영겁(永劫, kalpa)은 불교적 시간관에서 유래한 말로, 1,000년에 한 번 내려오는 선녀가 바위를 스쳐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1겁)조차 짧게 느껴질 만큼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하고 영원한 시간 또는 끝없는 무한의 시간을 뜻한다고 합니다.
미륵불(彌勒佛)은 석가모니불 열반 후 56억 7천만 년 뒤 사바세계에 하생하여 중생을 구제할 것으로 약속받은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현재는 도솔천(兜率天)에서 설법하고 있으며, 자애로운 성품(慈氏)으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할 희망의 상징입니다.
전시장에서 만나게 되는 '미륵존'(2010)은 옻판에 옻칠로 그려진 회화입니다. ‘백제의 미소’처럼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미륵불이 영겁처럼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입니다. '미륵존' 뒤로 펼쳐지는 2025년작 옻칠 회화에서는 분출하고 움직이는 우주의 에너지가 원색의 색감으로 꿈틀대는 듯한 모습이 추상적인 형상으로 펼쳐집니다.
■ 2부 ‘물아불이’에서는 물에 비치거나 거울에 반사되는 방식으로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는 체험을 만드는데요. 이 공간에서 '아…' 하고 느끼길 바랐던 건, 어떤 감정의 순간이었을까요?

2부 ‘물아불이(物我不二) - 니가 내다’에서는 6미터의 수조에 옻칠 회화 6점을 수중 전시하였습니다. 물 속에 전시된 옻칠 회화의 색감은 한층 더 영롱하게 빛이 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물은 한 켠에서 작동하는 작은 모터로 인해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중 전시된 작품의 형상은 주로 원형이며 어떤 작품은 마치 연지(蓮池)에 핀 연꽃이나 연잎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수조에 비친 조명으로 인해 물빛과 파동은 천정으로 반영되어 움직이는 상이 맺힙니다. 벽면 또한 원형의 옻칠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장의 모퉁이 부분에는 삼천불전의 불상들이 군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둥글면서도 모나지 않은 ‘원(圓)'의 형상은 화엄경의‘원융무애(圓融無碍)’ 사상과도 연결됩니다. 원융무애는 막힘과 분별이 없으며 일체의 거리낌이 없이 두루 통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불교의 이상적 경지입니다.
수조와 벽면에 전시된 옻칠 회화에 들어있는 원형의 모습과 여기저기 모셔진 불상의 모습으로 인해 이 공간은 불교적 세계관이 작동하는 작은 세계를 이룹니다. 나의 모습은 원형의 형상에 투영되면서 수조와 벽면, 그리고 일렁이는 천정의 형상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 3부 ‘문자반야’에서는 볼거리가 특히 많은데요. 반야심경 도자판으로 탑을 쌓은 장면이랑, 옻으로 쓴 글씨(칠서)는 각각 어떤 뜻을 담고 있을까요?

3부 ‘문자반야(文字般若) - 글자 너머’에는 불교 경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반야심경(般若心經)과 선어록(禪語錄)을 주제로 합니다.
반야심경은 불교의 핵심 사상을 260자로 요약한 가장 대중적인 경전입니다. '공(空)'의 지혜를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을 담고 있습니다.
성파스님은 통도사에 소장된 1899년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인출본을 도판에 전사하는 작업을 1991년 착수하여 10년 만인 2000년 9월에 완성합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호국불교 전통에 따라 남과 북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16만 도자대장경의 보관과 보존을 위한 장경각 건립을 2000년부터 2012년 4월까지 진행합니다.
이 때 만들어진 반야심경 도판 복본을 가져와 전시장의 좌대 위에 세 개의 작은 탑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벽면에는 스님의 글씨로 쓰여진 반야심경 서예와 옻칠 서예(칠서)를 함께 전시하였습니다.
반야심경 외에 명나라의 선승 운서주굉(雲棲株宏, 1535-1615)이 지은 '선관책진(禪關策進)'의 한 구절, '내가 가진 한 권의 경전, 종이와 먹으로 만들지 않았구나. 한 글자도 쓰여지지 않았지만, 늘상 대광명을 방출하네(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 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을 성파스님이 칠서로 쓴 작품과 나옹스님의 아미타불 칠언시 등의 칠서 작품도 전시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작품 옆으로 전시된 옻칠회화의 오른쪽에 쓰여진 칠서는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어서 성파스님께 무엇을 쓰셨는지 질문하였으나, 대답은 '나도 모르겠다'였습니다. 굳이 알려고 하면 알아낼 수도 있지만, 선가에서는 종이와 먹으로 쓴 글자보다도 실천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기풍이 있기에 일어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 수중에서 공중까지 시선이 확장된 다음에요. 마지막 4부 ‘일체유심조’에서는 관람객이 마음이 ‘탁’ 풀리는 순간을 만나길 바라셨을까요?

4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마음대로’에는 성파스님이 가장 자유롭고 즐겁게 작업한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제목 그대로 ‘마음대로’ 유희하는 듯 알록달록한 색깔로 자연과 인간의 형상, 마을과 우주의 풍경, 미술의 요소인 점․선․면과 기하학적인 무늬, 그리고 서정적 추상 형태 등 다양한 옻칠 그림들이 펼쳐집니다.
또한 천정에는 옻칠염료로 염색한 천 작품이 춤을 추듯 반원의 곡선을 이루며 매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공중에 매단 작품은 결국 드론을 이용한 비천(飛天)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말하자면 수중(수조)-지상(벽면)-천정(공중) 등 사방팔방으로 확산되는 공간에 옻칠의 색과 형태를 전시하게 됩니다.
천정에 매달린 옻칠염색 작품 아래로는 검은 거울이 설치되어 벽면 작품의 형상들을 비칩니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다 보면 거울 속에 비쳐지는 형상의 변화가 재미 있게 다가옵니다. 또한 벽면 한 켠을 크게 채운 옻칠회화 10점은 불교 화엄종의 원리인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처럼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각 개별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4부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렇게 천정과 벽면 등에 전시된 것처럼 공간의 확장과 바닥 거울에 비친 작품 형상의 변화상 등에 유념하면서 관람하시거나 한 걸음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 던지고 있는 불교적 화두를 음미해보신다면 한층 더 의미 있는 전시 관람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진 제공: 경기도박물관장 박본수)
■ 경기도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 '성파선예(性坡禪藝) : 성파스님의 예술세계'
- 장소: 경기도박물관 전시마루
- 개관: 2026년 5월 31일까지
- 관람시간: 10:00–18:00 (입장마감 17:20) /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휴관
-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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