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미술관은 작가들의 경력이자 역사의 일부… 꼭 버텨야 해” [나의 삶 나의 길]
1996년 ‘갤러리 사비나’ 문 열어 전시
파격적인 테마 중심 기획전으로 명성
상업화 대신 미술관 변신 공공성 확장
미술·과학 융합한 전시로 새 영역 개척
작품성만 보고 작가 초청 인연 이어가
실패의 경험들이 만든 성공
대학 때 시인이 되려했지만 등단 실패
30대 초반엔 그림 배우려 해외로 유학
그림 그리기보다 ‘보는 눈’에 재능 발견
결국 회화서 예술 기획으로 진로 선회
전시 주제로 베스트셀러도 다수 써내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던 23명의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두려움’을 주제로 작품을 모은 메인 전시 ‘10,000일의 질문-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를 둘러본 뒤, 칸막이가 쳐진 다른 구역으로 들어서자 특별 섹션이 펼쳐졌다. ‘10,000일의 동행, 초상화로 말하다’.

“미술관과 작가의 관계를 협력의 차원을 넘어, ‘예술적 동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내세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처음엔 망설였지만, 막상 꺼내놓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동시에 재밌기도 했어요.”


“얼마 전 잡지 샘터를 발간하는 샘터사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꼈다. 50년을 버틴 그는, 마지막까지 버티려고 했는데 결국 휴간하게 됐다고 하더라. 잡지를 파는 것도 저렇게 힘든데…. 비영리인 미술관은 갤러리와 달리 작품 판매도 대관도 하지 않는데, 자체 기획으로만 버틴다는 건 경제적 고통이 크다. 미술계에서 사비나미술관에 대한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비용은 더 많이 소요되고 시스템화에 따른 부담도 커지고 있다. 우리는 작가 경력과, 작가가 어디서 전시를 했냐를 먼저 본다. 미술관이 사라지면 작가 역사의 일부가 사라지기에 최선을 다해서 버텨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계기로 1996년 사비나미술관의 전신 ‘갤러리 사비나’를 오픈했는지.

“처음부터 주제성을 강화해 관객이 무엇을 전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오게 했다. 개관전 ‘인간의 해석’을 시작으로 ‘밤의 풍경’전 등 다양한 전시기획을 했다. 놀랍게도 언론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신생 갤러리의 기획전임에도 크게 다루어 줬고, 짧은 시간 안에 유명해졌다. 특히 영화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잘려진 키스장면을 보는 것을 보고 ‘입맞춤’전을 기획해 화제를 모았고, 반려견 문화가 막 생겨날 즈음인 2002년에는 ‘더도그’전을 애견협회와 함께 열기도 했다. 전시장에 반려견을 데리고 들어올 수 있게 한 게 큰 화제를 낳았다.”
―2002년에는 안국동으로 옮기고 미술관으로 등록했다.


“설치 미술이나 미디어 아트 경향이 점점 강해졌지만,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애초 낡은 병원 건물이어서 공간도 좁고, 전체 조도도 맞지 않았으며, 주차도 여의치 않았다. 다만, 서울은 벗어날 수 없고, 비용은 비싸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왔다. 전시 공간은 600평으로 늘었고, 인프라는 탄탄하게 갖추게 됐다.”
―30년 사립 미술관을 운영하며 견지해온 철학이나 원칙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작가와의 의리를 지키려고 했다. 작품이 좋으면서도 지속 가능성이 있는 작가,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10년을 꾸준히 지켜본다. 학연이나 인맥은 전혀 보지 않고 오로지 작품성만 보고 작가를 초청한다. 또 전시를 하고 나서도 해외 전시와 연결한다든가 작품 연구집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등 작가를 계속 프로모션해준다.”
어렸을 때부터 책과 책읽기가 좋았다. 화집을 보는 것도 좋았다. 각종 문학책에는 작가들의 그림들이 실렸는데, 그림을 보면서 문학과 그림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했다. 특히 시가 좋았다. 대학 시절에는 혼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신춘문예에 여러 차례 응모했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자괴감이 생겼다.

결국 회화에서 예술 기획으로 진로를 선회했다. 조금씩 미술전 기획을 해나가면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명옥은 1996년 서울 인사동에 사비나미술관의 전신이자 기획전문 갤러리인 ‘갤러리 사비나’를 열고 전시기획을 본격화했다.

“무계획의 계획이다. 항상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더라. 늘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서 10년 후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오늘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집착하는 건 부질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명상록’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잠시 후면 너는 모든 것을 잊을 것이고,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너를 잊게 될 것이다, 고.”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팜므 파탈’,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명화 경제 토크’ 등 미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와 통섭하는 내용을 담은 책을 펴내 사랑을 받았다.
―바쁜 와중에서 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냈는데. 놀랍다.

“화가가 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이 좋은 작가를 ‘픽’하는 눈으로 왔다. 국민대에서 한 15년 동안 강의를 했다. 다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책을 내게 됐다. 시인이 되지 못해 좌절감도 많았는데, 오히려 글로 온 것이다. 지금은 미술과 전시, 강의, 책과 글 세 개 분야가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삶을 산다. 감사한 일이다. 경제적인 고통만 없으면 대만족이다. 오랫동안 한국 미술계에 이바지를 하고 싶다. 사실 여러 차례 좌절했지만 다시 도전해 길을 찾게 됐다. 좌절이 어떤 숙성의 과정을 통해 지금 여기의 저를 있게 한 것 같다. 우연은 없고, 알지 못한 운명에 의해서 나아간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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