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새로 나온 책]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박이대승 지음, 오월의봄 펴냄
“민주당의 정체성은 ‘국민의힘 아님’이고, 국민의힘의 정체성은 ‘민주당 아님’이다.”
윤석열 내란 이후 1년이 훨씬 넘도록 우리 사회는 ‘정상화’를 향한 여정에 나서는 중이다.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국정농단·내란 관련 세력을 척결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온전한 상태로 돌아가리라고 믿기 어렵다는 뜻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공동체이게끔 해주는 실질적인 공통 요소가 부재하다며 이를 다섯 가지 주제로 설명한다. 복수극에 열광하는 사회, 불평등을 지지하는 경향,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의 반복, 언어의 규칙을 거부하는 사회, 한국 민주주의 자체의 비정상성 등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것이 ‘개념적 언어’라고 말한다.

신들의 물고기를 찾아서
황선도 지음, 씨콤 펴냄
“나는 ‘신들의 물고기’를 찾아 지중해로 떠났다. 그러나 신들의 물고기는 우리 바다에 있었다.”
〈멸치 머리에는 블랙박스가 산다〉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 등을 펴낸 해양생태학자가 은퇴 후 퇴직금을 들고 홀로 지중해 몰타로 떠난 ‘은퇴 유학’의 기록을 책으로 펴냈다. ‘물고기 박사’로 불렸던 저자는 지중해와 한반도 바다의 생태를 비교하며 우리 바다의 생태가 더욱 풍부하다는 발견에 이른다. 한편으로 이 책은 은퇴 이후 ‘인생 2막’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응원이다. 환갑 이후 낯선 환경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생생히 담겨 있다. ‘지중해 여행 가이드북’을 방불케 하는 꼼꼼한 기록이 저자 특유의 입담을 만나 지루할 틈 없이 책장이 넘어간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가라. 낯선 곳에서 다시 배우라. 그곳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여성 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강선형 외 지음, 봄날의박씨 펴냄
“그 답을 찾는 것은 지금 여기에 이곳에 서 있는 나의 몫이리라 생각한다.”
구불구불하고 험한 길도 안내자가 있다면 두렵지 않다. 이 책은 그런 구석이 있다. 철학을 떠올리면 왜인지 아득해지는 마음에 등불을 켜준다. 여성 철학자인 저자 8명은 개인적 경험을 경유해, 각자가 깊이 천착했던 철학자와 철학적 사유를 소개한다. 지금껏 알고 있던 것과는 또 다른 한나 아렌트, 폴 리쾨르, 테오도어 아도르노, 장 폴 사르트르, 질 들뢰즈, 미셸 푸코, 주디스 버틀러, 로지 브라이도티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주로 철학의 쓸모를 궁리하고, 철학 서적을 집어드는 입장에서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달았다. 철학이 단순히 현상을 설명하거나 현상에서 동떨어진 무언가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시작하고 함께 돌파구를 찾아가는 언어라는 걸.

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
월간 〈샘터〉 편집부 엮음, 샘터사 펴냄
“계절에 지름길은 없나 보다. 터널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지름길이 없듯이. 그러나 터널의 출구는 꼭 있다.”
국내 최장수 문화교양지 〈샘터〉가 올해 1월호를 기점으로 휴간에 들어갔다. 〈샘터〉를 만들던 편집진이 필사집을 선보였다. 1970년 4월에 창간해 매달 발간된 671권에서 문장 100개를 골라 한 권으로 엮었다. 이 문장들을 인간관계·행복·삶·사랑·자연 다섯 개 키워드로 나누어 실었다. 잡지 〈샘터〉에는 3·3·3 원칙이 있었다. 작가가 쓴 글, 글솜씨 있는 일반인의 글, 귀감이 되는 사람들의 삶을 기자가 전하는 글. 3분의 1씩 지면을 채웠다. 이번 필사집에도 당대의 문장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글이 고루 실렸다.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에세이 스무 편을 추려 함께 실었다. 사연 있는 필사집이다.

약소국의 제2차 세계대전사
권성욱 지음, 열린책들 펴냄
“저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다툼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서 방독면을 쓰고 참호를 파야 한다니….”
전쟁사 연구자인 지은이는 ‘약소국’이라는 프리즘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들여다봤다. 강대국 중심의 서술에 묻혀 설명 몇 줄로 그쳤던 약소국들의 전쟁을 상세히 그려냈다. 약소국들은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약소국들이 처했던 외교적 고립과 군사적 열세로 인한 압박을 중심으로 각 나라가 생존과 이권을 위해 내린 선택과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약소국이 처했던 지정학적 위치와 세력 구도를 지도로 정리해 전쟁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침략을 당한 국가, 전쟁에 휘말린 국가는 각기 다른 결말을 맞았지만, 공통적으로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정치체제 변화, 영토 문제, 사회불안 등 긴 여운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재미의 조건
류승완ㆍ지승호 지음, 은행나무 펴냄
“결국 생존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버티는 방식에서 온다.”
류승완 감독과 지승호 인터뷰어가 만났다.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한 이래 뚜렷한 개성이 담긴 작품을 선보여온 류 감독이 본질·관계·변화·생존이라는 4가지 키워드로 영화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들려준다. 지승호 작가는 감독의 작업에는 흔들리지 않는 ‘기본값’이 있다고 말한다. ‘이게 정말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인가?’ 확장을 도모할 수 있는 순간에도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 인터뷰 내내 류 감독은 자신의 실패와 회의를 숨기지 않았다. 영화판이 변했고 더 이상 예전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누구보다 먼저 인정한다. 지승호 작가의 표현대로 ‘단지 한 영화감독의 고백이 아니라 변화의 시대를 지나고 잇는 모든 창작자에게 보내는 조언’이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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