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아니고, 클라우드 댄서입니다

이설희 기자 2026. 3. 4.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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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S/S 런웨이에 펼쳐진 클라우드 댄서

[우먼센스] 팬톤이 올해의 컬러로 발표한 클라우드 댄서는 쿨톤과 웜톤이 미묘한 균형을 이루는 오프화이트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눈부시게 밝지도 않지만 구름 속을 걷는 듯 가벼운 고요함을 가진 이 컬러를 두고 팬톤의 컬러 인스티튜트는 "공기를 머금은, 시끄러운 세상에 건네는 평온의 속삭임"이라 정의했다.

실로 역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유는, 1999년 팬톤이 '올해의 컬러'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래 화이트 계열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 피치 퍼즈, 모카 무스, 울트라 바이올렛처럼 강렬한 개성의 색들이 트렌드를 이끌어온 자리에, 오히려 모든 것을 비워낸 색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수석 디렉터 레아트리스 아이즈먼은 "우리를 둘러싼 불협화음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게 만들었다. 클라우드 댄서는 외부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집중력을 높이는, 의식적인 단순화의 선언이다"라며 선정 이유를 덧붙였다.

마치 이를 예견한 듯, 2026 S/S 런웨이는 이미 다양한 변주를 담은 화이트 룩이 만개해 있었다. 행여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 새로운 텍스처와 비대칭의 미학, 아름다운 미니멀 대비로 놀라울 만큼 다채로운 재미를 담은 올 시즌 런웨이 속 클라우드 댄서를 만나보자. 

bottega veneta_catwalkpictures

프린지가 움직인다. 화이트 와이드 팬츠 위로, 새의 깃털처럼 뻗어 내린 텍스처드 탑이 워킹할 때마다 살아 숨쉰다. 소재의 입체감이 색의 부재를 완벽히 채운 이 룩이야말로 보테가 베네타가 제안하는 화이트의 철학. 텍스처, 볼륨, 무브먼트라는 세 가지 요소를 화이트 팔레트 안에서 극대화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클라우드 댄서를 입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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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어 소매가 만들어내는 블루마린의  드라마. 보트넥에서 손목까지 저지 소재로 유선형을 그리다 밑단에서 레이스 러플로 터지는 이 미니 드레스는 화이트가 순수함이 아닌 통제된 욕망의 색임을 증명한다. 매트 저지와 투명한 레이스의 소재 충돌이 완성한 긴장감에 더해진 블랙 스트랩 힐 마침표까지, 정교하지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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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절제감이 돋보이는 포메의 룩. 바람에 부풀어 오르는 듯한 볼륨, 넉넉한 셔츠 칼라, 숨겨진 포켓까지. 구조는 있되 장식을 덜어낸 이 착장은 오버사이즈 화이트 코트 원피스 하나로 모든 걸 증명해내며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클라우드 댄서를 가장 과감하게 해석해낸 아름다운 착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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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댄서라는 이름이 이보다 더 문자 그대로 구현된 룩이 있을까. 오간자와 레이스를 겹겹이 쌓아 만든 구조적 미니드레스는 시각적으로 3차원의 볼륨을 만들어내고, 흰 구름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한 실루엣까지 완성하며 패션과 조각예술의 경계를 흐리는 듯 하다. 스니커즈 믹스맥치로 아방가르드한 판타지를 현실로 끌어내린 것 또한 백미로 느껴진다. 

bottega veneta_catwalkpictures

보테가 베네타 하우스 특유의 위빙 패턴을 화이트 온 화이트로 재해석한 이 셋업은 그야말로 '조용한 과시'의 교과서. 오버사이즈 재킷과 와이드 팬츠를 단일 질감으로 통일하고, 작은 골드 버클 하나만을 포인트로 남긴 후 슈즈까지 화이트로 마무리한 이 룩이 전하는 메시지는 텍스처가 색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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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 우아함에서 출발한 까르벵의 화이트 룩. 멀티 포켓 사파리 재킷을 화이트 새틴 쇼츠와 매치하고, 유틸리티와 페미닌이 교차하는 완벽한 지점을 찾아내 뻔함을 벗어났다. 지퍼 디테일과 드로스트링 디테일로 화이트 팔레트 속에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발끝의 블랙 키튼힐로 무채색의 긴장감까지. 섬세하게 조율된 이 룩의 비율은 도시의 일상에서 바로 꺼낼 수 있는 실용적 우아함 그 자체 아닐까. 

bottega veneta_catwalkpictures

드레이핑의 시학. 자연스럽게 주름진 크링클 소재 드레스는 그 불완전함 덕분에 더욱 아름답다. 한쪽 어깨가 흘러내리고 허리에서 자연스럽게 모이는 실루엣 또한 인위적인 구성보다 더 정교한 계산의 결과로 비쳐진다. 여기에 더해진 스몰 선글라스 엣지까지, 군더더기 없는 이 룩이야말로 클라우드 댄서가 제안한 조용한 화이트 룩의 우아한 예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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묽은 라벤더 톤의 그레이 트렌치코트는 클라우드 댄서 팔레트의 가장 현실적인 확장. 화이트 미니 스커트와 크롭 레이어링, 스트랩 샌들이 이루는 비율의 균형마저 탁월하다. 90년대 미니멀리즘의 향수를 자극하되 현재 시점으로 완벽히 번역해낸 아르마니의 룩은 클라우드 댄서가 단일한 색이 아닌 스펙트럼임을 정확히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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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처 부클레 트위드를 화이트로 풀어낸 샤넬의 미디 드레스는 하우스의 DNA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여준다. 밑단의 프린지 또한 클래식한 실루엣 속에서 활기찬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페더 클러치와 키튼 힐로 올 화이트 속 텍스처 플레이를 완성한 이 룩은 화이트를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봉인한다. 단 한 가지의 색으로 하우스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 그것이 클라우스 댄서 속에 담긴 화이트의 진짜 힘 아닐까.

2026년, 런웨이는 화이트는 올해의 컬러임을 이미 선언했다.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다. 클라우드 댄서는 심심한 단일 컬러가 아닌, 세상의 소음에 맞서 선택하는 가장 고요한 선언임을. 

이설희 기자 seherhe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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