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아침이 오면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 박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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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의 문법도 사라진다.
실존은 이미 잃어버린 것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그리움이 된다.
눈물에 젖고, 비에 젖고, 말하지 못한 그 어떤 것에 젖는 우리의 인생.
끝까지 말해질 수 없는 것이 시듯, 인생 또한 그러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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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손은/ 가슴에 붙은 느낌이 들어요// 당신의 손짓,/ 어디 같이 가자고 한 것도 아닌데// 가슴이 떨리고 있잖아요// 창문에 나부끼는 앞날을/ 바람이 데려갔으면 좋겠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군가를 대신해 오래 살았고// 아침이 오면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당신은 마음을/ 멀리 던져놓으라 했지만/ 그 말이 어려워 종일 흔들리고 있어요// 말라가는 공기와/ 떠다니는 낙엽들 사이로// 손은 가슴을 쓸어내리려 그곳에 얹어져요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2019, 문학과지성사)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의 문법도 사라진다. 실존은 이미 잃어버린 것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그리움이 된다. 있지 않았지만 있었어야 했던 것, 아직 오지 않았지만 분명 올 것들에 대한, 그 떨림이 실존이다. 이전도 모르고 이후도 모르는 우리는, 밤마다 도달하지 못한 곳을 향해 불안한 마음의 불을 켠다. 그 불빛이 사유가 되고, 철학이 되고, 시가 된다. 눈을 뜨는 순간, 밤새 식어 있던 언어들이 햇빛에 데워지며 기척을 낸다. 커피의 김, 창문 틈의 바람, 아직 말이 되지 않은 "당신의 손짓," 하나. 시가 멀리 있지 않듯, 생의 비애 또한 "가슴에 붙은 느낌"이다. 사랑이 그렇듯, 이별이 그렇듯, 외로움은 가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온다. 그 높고 아득한 부름과 응답, "가슴이 떨리"는 순간이다.
박미란(1964~, 강원도 출생)의 「아침이 오면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를 읊조리면, 짙은 페이소스가 번진다. 가슴 깊숙이 묻힌 알 수 없는 어떤 애수(哀愁)에 젖는다. "어디 같이 가자고 한 것도 아닌데" 생은, 저 혼자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창문에 나부끼는" 적막한 "앞날". "바람"처럼 왔다가 붉은 노을로 지워진 "당신"의 "마음". 왜 그녀는 '갈 수 있을까?'라고 의문하였을까. 눈물에 젖고, 비에 젖고, 말하지 못한 그 어떤 것에 젖는 우리의 인생. 그 비극적 '존재'의 깊은 '허무' 때문일까. 질문한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당신을, 시를, 생을' 꽉 움켜잡고 있다는 패러독스(paradox)가 아닐까.
시와 생이 모순적인 건, 둘 다 완성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끝까지 말해질 수 없는 것이 시듯, 인생 또한 그러한 건 아닐까. "말"은 태초의 결핍에서 온 인간의 외로운 얼굴과 닮았다. 하여, 우리는 "말라가는 공기와/떠다니는 낙엽들 사이로" "종일 흔들"린다. 아무리 버둥쳐도, 우리는 밑도 끝도 모르는 운명을 향해, 저마다의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려만 산다.
김동원(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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