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윤석열’ ‘한동훈’ 소환된 野장외투쟁…정작 李대통령은 ‘부재중’
‘윤어게인’ 깃발 나부끼기도…‘부정선거 척결’ ‘우리공화당’ 깃발까지 등장
청와대 앞서 “거부권 행사해 달라” 외쳤지만…李대통령은 필리핀 순방 중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국민의힘이 결국 거리로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이른바 '사법 3법'(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에 맞서기 위해서다. 국회 안에서는 180석이 넘는 거대 범여권에 대항할 카드가 사실상 없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도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여론의 주목도 예전만 못하다. 국민의힘이 거리로 나선 건 그래서다.
그러나 장외투쟁이 곧 여론전의 승리를 뜻하진 않는다. 이번 행보가 소기의 성과를 거뒀는지에 대해선 회의적 평가가 나온다. ①집회·시위 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침묵 행진에 그쳤고 ②투쟁 취지와 무관한 '윤어게인' 깃발이 곳곳에 등장해 메시지는 분산됐으며 ③대통령의 해외 순방으로 사법 3법의 부작용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각인시키겠다는 계산도 빗나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장에선 "고생한 보람이 없다"는 자조가 흘러나왔다.

국회 대응 한계 속 유상범이 꺼낸 '장외 카드'
3일 오후 2시경, 국민의힘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출발해 신촌과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에 나섰다. 명칭은 '사법독립 헌정수호를 위한 대국민 호소 국민대장정 규탄대회'. 의원 80여 명, 원외 당협위원장 50여 명이 합류했다. 참석자들은 "사법파괴 3법을 대통령은 거부하라" "자유민주 대한민국, 사법독립 수호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장외투쟁의 전선을 공식화하는 자리였다. 이번 장외투쟁 구상은 유상범 원내운영수석부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본청 앞 출정식에서 장동혁 대표는 강경한 어조로 포문을 열었다. 장 대표는 "이재명 정권은 기어이 가지 말아야 할 길로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법파괴 3법은 결국 이재명 독재 공화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이재명 대통령께 강력하게 경고한다. 장기독재의 꿈을 버리고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사법파괴 3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 지도부는 국회를 벗어나자 구호를 멈추고 피켓을 내려놨다. 집회 신고를 하지 않은 탓에 침묵 행진으로 전환한 것이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집회 신고가 안 돼 구호도, 피켓도 불가능하다"며 "이 지점부터는 장 대표와 국회의원들만 침묵 행진을 하겠다"고 외쳤다. 일부 지지자들은 "왜 집회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당 관계자는 그 이유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장외투쟁의 형식과 준비를 둘러싼 아쉬움이 현장에서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당초 집회의 초점은 사법 3법 비판에 맞춰져 있었으나 현장에서는 목적과 다른 메시지도 섞여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지자로 보이는 한 여성은 '윤어게인'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취재진 앞에 펼쳐 보였다. 곳곳에서 "윤어게인"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라"는 외침도 터져 나왔다. '부정선거 척결'이라는 푯말과 '우리공화당' 깃발도 눈에 띄었다. 이 깃발을 든 조아무개씨(72)는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가 보수 우파이기 때문에 우리끼리는 도와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있었으나 공개적으로 선을 긋기는 쉽지 않다는 분위기였다. 장외투쟁에 참여한 수도권의 한 의원은 "부정선거나 '윤어게인' 세력이 지난해보다 많이 줄지 않았느냐"며 "그 정도로 감소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또 다른 TK(대구·경북) 지역 의원은 "그들도 결국 우리 당 지지층인데 모두 선을 그을 수는 없다"며 "부정선거 문제 역시 일정 부분은 존중해야 할 지점이 있다"고 항변했다. 거리의 동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지층과의 거리 조절이 쉽지 않다는 속내가 읽히는 대목이다.
메시지를 던질 상대가 현장에 없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이번 장외투쟁의 명분은 이 대통령에게 사법 3법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필리핀을 국빈 방문 중이었다. 결국 '대통령 없는 청와대'를 향해 외친 셈이 됐다.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거부권을 행사해달라"는 신동욱 최고위원의 발언도 전달 상대가 없었다.
이에 대해 당내 3선 중진 의원은 보다 직설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는 "어차피 거리로 나설 거였다면 대통령이 국내에 있을 때 메시지를 던지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았겠느냐"며 "상징성은 있겠으나 타이밍과 준비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보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韓 '대구 동행' 우재준에 "배신자" 고성도
이번 장외투쟁에서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이름도 소환됐다. 이날 행진에는 이른바 '친한(親한동훈)계'로 분류되며 장 대표와 각을 세워온 박정하·한지아·고동진·안상훈·김형동·우재준·유용원 의원이 함께했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들을 향해 "한동훈을 왜 지지하느냐" "장동혁에게 힘을 실어야 한다" "한동훈을 도와주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외투쟁의 장이 계파 갈등의 단면을 드러내는 무대로 바뀐 순간이었다.
특히 우 의원을 향한 비판이 거셌다. 한 전 대표가 대구 서문시장을 찾을 당시 동행했다는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지자들은 "우재준은 빠져라" "재준아 집에 가라" "배신자"라고 외쳤다. 이에 우 의원은 "한동훈 전 대표도 함께 싸워야 한다고 본다"며 "이쪽, 저쪽을 가를 게 아니라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느냐. 다 내쫓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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