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교수의 건강한 세상 이야기] 청력, 오디오 애호가의 두려움

오디오 애호가들은 웬만한 소형 중고차 가격 스피커에 투자하기를 아까워하지 않고 중고 거래에서 명품 앰프라도 사면 신이 나 어쩔 줄 모른다. 그런데 아파트 중심의 주거 변화나 스트리밍 음원 매체로의 이동 때문인지 대형 스피커와 고가 앰프의 하이엔드 스타일을 즐기는 사람들은 예전만큼 많지 않다.
요즘 세대들은 블루투스 헤드폰을 일상으로 쓴다. 조금 더 음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고가 유선 레퍼런스 헤드폰에 소형 앰프와 DAC를 더한다. LP 대신 고해상도 스트리밍을, 턴테이블 대신 컴퓨터와 태블릿을 놓고 책상 위에 작은 오디오 룸을 꾸민다. 이른바 PC-Fi다.
어느 쪽이든 오디오 애호가들이 나이를 먹어가면 생기는 두려움이 있다. 귀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소리는 귀에서 최종 처리되기 때문에 청력이 떨어지면 하이엔드 스피커든 레퍼런스 헤드폰이든 다 소용없어진다. 그리고 청력 저하는 노안처럼 나이가 들면 피할 수 없는 변화이다. 느낄 정도의 노인성 난청은 65세가 넘어가면 3명 중 하나, 75세 이상에서는 반 이상에서 생긴다.
빌 에반스의 명반 '왈츠 포 데비'는 시간이 날 때마다 듣는 걸작이다. 1961년 어느 저녁 뉴욕의 재즈클럽에서의 공연을 그대로 녹음한 이 음반의 1번 트랙 '마이 풀리시 하트'은 사람들의 잡담과 식기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심벌즈의 미세한 치찰음이 번지며 시작된다. 곧 이어 피아노와 베이스의 생생한 음이 서로 얽히며 우리를 미세하고 깊은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그런데 최근 이 앨범의 현장감이 좀 사라졌다. 뭔가 밋밋하고 평면적으로 되어 스튜디오 녹음 같은 느낌이 생겨버렸다. 볼륨을 올려 봐도 비슷하다. 그렇다. 이제 노인성 난청이 시작된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고음 영역의 청력이 먼저 떨어진다. 이 영역이 떨어지면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구분이 어려워진다. 특히 여성이나 아이의 소리가 흐릿해진다. 전화 통화나 회의 때는 더하다. 음악에서는 현악기의 활과 현이 스치는 날카로운 결, 금관악기의 쨍한 느낌, 심벌즈의 반짝임이 둔해진다. 윤기와 생생함이 사라지고 깊이와 공간감이 줄어든다. 베이스 맛으로 듣는 록이나 EDM은 상관없지만, 정경화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의 박력이나 마일즈 데이비스의 폐부를 찌르는 트럼펫 프레이즈의 맛은 사라지는 것이다.
노화되고 손상된 청력을 되돌릴 방법은 별로 없다. 항산화제, 비타민, 혈액순환개선제 같은 것이 청력을 회복시킨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유일한 방법은 미리부터 소음을 피해 손상을 늦추는 것이다. 이미 나빠지면 보청기와 청각 재활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력 저하는 시력 저하보다 사회적 고립과 인지 저하를 더 많이 일으킨다. 시각장애인 중에는 보르헤스나 호메로스 같은 당대 문학가도 있지만 청각장애인 중에는 그런 사례가 별로 없는 이유이다.
오디오나 음악 애호가들은 듣는 시간의 총량이 길고, 음을 하나하나 즐기기 위해 볼륨을 올려 듣는 경향이 있다. 마치 자동차 애호가들이 과속 경향이 있는 것과 같다. 헤드폰이나 이어폰은 고막과 거리가 가까워 여파가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의식하지 않으면 청력 손상에 더 노출되기 쉽다.
나이가 들어도 좋은 음악을 듣고 싶다면 젊을 때부터 몇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볼륨의 상한선을 최대 60% 이내로 한정한다. 일상으로 들을 때는 대화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둘째, 시간을 제한한다. 집중 청취는 20~30분 이내로 끊는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한 편 길이이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는다. 그때가 되면 젊은 날에 지켜낸 자신의 청력이 얼마나 귀한 자산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최고의 오디오는 잘 보존된 청력이다.
/송준호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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