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밀 지도 가져가는 구글, 韓 공간 정보 생태계 흔들린다

미국 관세 압박에 지도 데이터 내줬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고정밀지도 국외반출을 승인하면서 관련 업계와 학계는 한국 공간정보 생태계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보를 이유로 국외반출을 승인하지 않던 정부가 미국의 관세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도 데이터를 넘긴 것 아니냐는 우려다.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 한국공간정보산업협동조합, 대한공간정보학회, 한국측량학회, 한국지리정보학회, 측량및지형공간정보기술사회 등 6개 협단체는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산업 생태계 훼손과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며 공동 성명을 내놨다.
앞서 정부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는 2월 27일 회의를 열고 구글의 고정밀지도 반출을 승인했다. 협의체는 영상 보안처리, 좌표표시 제한, 국내 제휴기업의 서버 활용, 사후 수정 절차 관리, 보안사고 예방체계 수립, 한국 지도 전담관 국내 상주 등을 승인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동안 미국은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과 온라인 플랫폼법 등의 국내 정책을 '비관세장벽'으로 규정하며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고 주장해 왔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월 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발언을 전했다. 그리어 대표는 "한국에 비관세 장벽 개선을 요청했는데 추가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진척이 없다면 관세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2월 11일에는 릭 스와이처 USTR 부대표가 우리나라를 찾아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비관세 분야 합의 이행 방안을 논의했다.
민간위원 사퇴 후 급히 선임…절차도 논란
협의체가 결정을 내리는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협의체는 국토교통부·국방부·국가정보원 등 9개 부처와 1명 이상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되며 만장일치로 의결해야 한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한 관계자는 "협의체에 참여하던 민간위원이 마지막까지 반대하다가 항의 차원에서 사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는 "승인 결정이 나기 3일 전 사퇴한 걸로 알고 있다"며 "신규 위원들이 구글의 제출 자료를 검토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협의체가 이번 결정을 내릴 때 업계·학계로부터 의견 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는 또 구글이 조세 회피 논란을 해소하지 않은 채 세금으로 구축한 고정밀지도 데이터를 가져다 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정부가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 조건을 관철했다면 구글의 조세 회피를 막을 수 있었다는 논리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국내 데이터센터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보상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며 구글의 지도 반출 요구를 거절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글의 국내 제휴기업이 국내에 보유한 서버에서 원본 데이터를 가공하고 정부의 검토·확인을 거친다면 반출할 수 있도록 했다. 업계는 이를 정부가 기존 조건을 완화한 것으로 해석했다.
안종욱 대한공간정보학회장(안양대 교수)는 "구글 해외 본사와 국내 제휴기업 간 역할과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정부의 실질적 관리·감독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구글이 반출 조건을 지키지 않아도 직접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업계 "조세 회피 논란 해소 안 된 구글에 공공 데이터 내줘"
일각에서는 문제가 생길 경우 해당 문제의 책임을 구글이 제휴기업 탓으로 돌리면 정부는 구글 대신 국내 기업을 제재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 대신 국내 제휴기업의 보유 서버를 통한 가공만으로 반출을 허용한 것은 국내 기업과 형평성이 맞지 않다"며 "구글이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국내 업체들과 같은 수준의 지도 서비스 사업을 벌이면서 조세 부담은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국내 사업자가 역차별 받는 상황이 발생하면 안 된다"며 "동일한 조건과 환경에서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승인 조건에 따라 추가 협상 여지가 생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가 구글과 추가 협상 결과에 따라 구글의 지도 관련 매출을 징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출 승인 조건의 '국내 제휴기업 서버 이용' 덕이다.
전성민 가천대학교 교수는 "구글이 유튜브 등 다른 서비스는 싱가포르에 서버를 두고 매출을 다 해외 매출로 인식해 국세청이 징수하기 어렵지만 정부가 협상을 통해 지도 서비스 관련 매출은 국내 매출로 하도록 할 수 있다"며 "지도 서비스가 구글의 전체 서비스와 비교하면 상당히 적지만 그래도 국내 서버를 이용한다면 조세원칙상 우리나라에 세금을 내는 게 정상이다"라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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