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와 코스피 사이에서 [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조형근 | 동네 사회학자
지난 설 연휴, 어머니 댁에 갔을 때 일이다. 동생과 함께 마트에 갔다 나오는데 주차장 입구를 리어카가 막고 있었다. 할머니 한분이 리어카에 종이박스를 가득 쌓고서 고무바로 묶는 중이었는데 고무의 탄력이 힘에 부치는 듯 번번이 실패였다. 차 문을 여는데 동생이 어느 틈에 달려가 할머니에게서 고무바를 받았다. 내가 붙잡고 동생이 이리저리 감으니 더미가 단단히 묶였다.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서는 찻길 한쪽으로 리어카를 밀면서 천천히 떠났다.
마침 귀성 기차 안에서 읽은 책이 재활용품 수집 여성 노인의 삶을 다룬 소준철의 ‘가난의 문법’(2020)이었다. 책은 익명성과 대표성을 고려해 76살 여성 노인 윤영자라고 설정한 가상 인물의 동선을 24시간 동안 따라간다. 그 여정에서 가난한 노인의 삶과 주변의 시선, 인간관계, 사회구조가 조금씩 드러난다. 출퇴근 시간의 바쁜 도로에서 찻길 한쪽을 막은 채 느릿느릿 움직이는 리어카나 손수레에 사람들은 화가 난다. 도로교통법 위반이라고, 젊어 게을러서 저 꼴이라고 욕도 한다. 울퉁불퉁한 보도로는 움직이기 어렵고, 종종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목숨까지 잃는다는 건 알고 싶지 않다. 이들의 일을 다른 일로 전환할 방법은 없고, 재활용품 판매 소득을 좀 더 나은 기초소득으로 보상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개발연대에 도시 빈민의 비공식 노동은 사회학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들이 늙고 주변화되면서, 또 사회복지가 도입되면서 관심이 줄었다. 물론 복지체계에는 구멍이 숭숭이고, 가난은 여전히 완강하다. 다만 도처에 만연하던 가난이 이제 도시의 주변부로 밀려났고, 바쁜 출퇴근길을 성가시게 하는 할머니의 실루엣으로 가까스로 드러날 뿐이다.
이 가난은 마치 어렵던 옛 시절의 편린처럼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없는 청년세대의 막막한 불안 속에서 현재진행형이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호텔 니약 따’(2009)의 주인공인 스물일곱살 여성 서윤의 삶이 그렇다. 문학을 전공한 서윤은 원장에게 말대꾸하다 학원에서 해고된 뒤 알바를 전전하지만, 알바마저 구하기 어렵다. 대학 시절 단짝 은지가 동남아 여행을 가자며 집요하게 설득한다.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은지는 밝아서 좋지만 어려움을 모른다. 거절하다 지친 서윤은 결국 자신을 키운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며 보상금으로 남긴 전 재산 500만원이 든 적금통장을 깨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숙박하면 평소에 보고 싶던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신비한 소문이 도는 호텔에 묵은 날, 서윤은 어둠과 꿈의 경계에서 할머니를 만난다.
“서윤은 ‘그것’이 무언지 알아채자마자 가슴이 터질 듯한 슬픔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 5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한 손으로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러곤 손녀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거리에서 폐지를 주웠다. … 서윤이 그토록 서럽게 우는 건 할머니가 죽어서도 박스를 줍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서윤은 은지에게조차 집안 형편을 말한 적이 없다. 언젠가 이렇게 말한 게 전부다. “교수님들 세대는 가난이 미담처럼 다뤄지는데 우리한테는 비밀과 수치가 돼버린 것 같아.” 청년세대의 가난이 여성 노인의 희미한 노동보다도 잘 보이지 않는 이유가 이 문장에 압축돼 있다.
지난주 동네 책방 독서 모임에서 읽은 김기태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2024)에서도 청년세대의 삶이 곳곳에서 아득했다.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의 주인공 둘은 중학교 동창이다. 러시아 동포인 니콜라이는 특성화고를 나와 자동차 하청업체 노동자가 됐고, 홀어머니 아래 자란 진주는 기회균등전형으로 대학을 나와 마트에서 일하며 공무원 시험을 치르지만 자꾸 떨어진다. 둘의 사랑은 가난하고 미래는 기약이 없다. 비좁기 짝이 없는 방, 늘 누워서 사랑을 나누던 둘이 어느 날 처음으로 일어선 채 서로를 껴안는다. 그 장면에서 나는 눈시울이 조금 뜨거워졌다. 둘이라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일어서야겠지만.
독서 모임에서 직전에 읽은 성해나의 ‘혼모노’와 자연스레 비교가 됐다. 이야기의 흡입력이라는 면에서 ‘혼모노’가 매력적이라는 사람도, 사회적 서사로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지닌 진지함에 공감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참된 자기를 찾는 과정에서 청년들이 겪는 불안과, 조금은 덜 가혹한 세상을 바라는 청년의 희미한 꿈이 겹치고 갈라졌다. 소설이 타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문학적 장치라면, 이런 독서는 중산층 기성세대가 ‘가까스로 존재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조금이나마 귀 기울일 수 있는 귀한 경험일 것이다.
물론 문학적 공감으로 현실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수는 없다. 날마다 코스피 지수 기록을 경신하며 중산층이 축제를 만끽하고 있는 한국에서 ‘쉬었음 청년’은 71만명으로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2025년 말 기준 국가데이터처 자료). 가난한 청년은 학자금 대출 갚기도 빠듯해서, 투자 공부할 시간조차 없어서 이 카니발에 끼지 못한다. 폐지 줍는 노인은 말할 것도 없다. 노인 빈곤율이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인 나라다. 무산자에게는 포모증후군조차 사치다. 유산자의 특권을 찬미하는 데 바쁜 한국 사회는 겨우 존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며 코스피 지수가 4000을 넘으면 도입할 수 있다던 정치인들은 아무 말이 없다. 축제에 초 치지 말라는 분위기는 나만 느끼는 것일까?
모두 투자자가 되어 불평등을 완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2000년, 한국의 주식투자자는 300만명이 조금 넘었다. 2024년에는 1400만명으로 늘었다. 그만큼 불평등이 줄었을까? 주식투자로 모두 부자가 되는 세상 같은 것은 오지 않는다. 역사가 증명하듯 자산 소득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불평등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축제의 빛이 찬란할수록 가까스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드리우는 그늘은 더 짙은 법이다. 이렇게 명암이 뚜렷한 세상에서 청년은 어떻게 일어서고 할머니는 어떻게 리어카를 놓을 수 있을까? 나와 당신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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