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소멸 위기 광주 원도심 3개교 입학식 가보니 [지역 살아야 학교도 산다](1)

이서영 기자 2026. 3. 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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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소멸→동네 침체→인구 유출 악순환 구조 반복
119년 명문 중앙초교 ‘신입생 0명’ …개학날 썰렁
서석초교 6명 1학교 교실서 작은 입학식 열려
봉선동 제석초는 80명에 학부모 등 수백명 인파
광주 동구 서석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신입생 6명이 입학식이 진행되는 교실에 모여 앉아 있다. /이서영 기자 dec@namdonews.com
광주 남구 봉선동 제석초등학교 신입생 80여명이 입학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서영 기자 dec@namdonews.com

3일 오전 10시, 광주 교육의 산실로 불리는 동구 광주중앙초등학교 정문 앞. 여느 학교라면 신입생을 축하하는 풍선과 꽃다발로 북적였을 개학날이지만, 이곳의 교문은 굳게 닫힌 채 무거운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신입생 환영'이라는 흔한 현수막 한 장 걸리지 않았다. 담장 곁에는 꽃다발을 든 노점상도, 실내화를 파는 문구점 주인도 보이지 않았다. 
운동장에는 겨우내 쌓인 낙엽들만 바람을 타고 흩어졌고, 새 학기의 온기가 돌아야 할 1학년 교실 복도에는 아이들의 실내화 소리 대신 정적만 감돌았다. 119년 전 개교 이래 처음으로 맞이하는 '신입생 0명'의 풍경이다.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130년 역사의 광주서석초등학교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해 이곳의 신입생은 단 6명. 평소라면 전교생이 모였을 대강당 대신, 1학년 교실 한 칸에서 작은 입학식이 열렸다. 아이 6명과 학부모들, 그리고 교장·교감 선생님과 행정실장 등 모두가 한 공간에 모여 진행됐다.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직접 눈을 맞췄다. 학부모들에게 담임 선생님을 직접 소개하는 훈훈한 분위기도 이어졌다. 교감 선생님이 직접 준비한 선물을 아이들에게 건넬 때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학교 밖 드넓은 운동장과 주차장은 텅 빈 채 적막함만 더했다. 안내판 하나, 안내 직원 한 명 배치되지 않을 만큼 조용히 치러진 '광주 전통의 명문 초등학교의 입학식'이었다.

과거 중앙·수창초등학교와 함께 '삼총사'로 불리던 광주수창초등학교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인근 재개발 영향으로 올해 53명의 신입생이 첫 등굣길에 올랐다. 그러나 입학식이 열린 강당은 학부모와 아이들이 앉은 자리만 듬성듬성 채워졌을 뿐, 절반도 차지 못한 채 여전히 휑한 분위기였다.
이들 서석, 중앙, 수창초교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명문 초등학교였다. 70~80년대는 전교생이 5천여명에 육박했다. 학급당 학생수도 작게는 60여명에 학년당 12개반이 보통이었다. 불과 40여년 만에 5천명 전교생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같은 시간, 불과 5㎞ 남짓 떨어진 남구 봉선동의 제석 초등학교 입학식장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올해 이 학교의 신입생은 80여 명. 한 학급당 16명 안팎의 아이들이 5개 반으로 편성됐다. 이름표를 달아주고 제 반을 찾아 줄을 세우는 데만 30분 넘는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소란스러운 활기가 넘쳤다. 입학식이 열린 대강당은 수백 명의 인파가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 찼고, 교문 밖에서는 학원 홍보 전단지를 돌리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교육 당국은 학생 수가 적은 원도심 학교가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밀착형 맞춤 교육'을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학부모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소수 정예의 장점보다 또래 집단과의 교류 단절로 인한 사회성 결여에 대한 공포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이날 봉선동에서 만난 학부모 박모(39)씨는 "한 반에 아이가 대여섯 명뿐이면 사회성을 기를 기회가 사실상 없다"며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무리해서 대출을 끼고 이사를 왔다"고 토로했다. 다른 학부모 역시 "아파트 단지도, 방과 후를 책임질 학원가도 부족한 원도심 보다 신도심으로 가는 게 부모들의 공통된 정서"라고 말했다.
원도심 학교 관계자도 이런 한계를 인정했다. 그는 "아이 한 명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건 장점이지만, 모둠 활동이나 체육 대회 등 단체 활동을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다"며 "떠나가는 학부모들을 붙잡을 교육적 명분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부모들이 떠나간 빈자리는 지역 경제 침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구의 큰길 공인중개사사무소 김용희 대표는 "구도심의 낮은 정주여건으로 어린 자녀를 가진 젊은 부부의 선호도가 낮다"며 "학군 붕괴가 유입 인구 차단으로, 다시 집값 하락과 도심 공동화로 이어지는 소멸의 악순환에 빠졌다"고 귀띔했다.

도시재생 전문가들은 학교 소멸은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중심축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교실이 비면 상권이 죽고, 상권이 죽으면 동네가 늙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원도심의 학생 수 급감은 '학교 소멸→동네 침체→인구 유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반복 그 자체였다.

/이서영 기자 dec@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