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중앙초 개교 119년 만에 첫 신입생 0명 '충격' [광주 100년 도심학교 무너진다-1]

이건상 기자 2026. 3. 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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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학교’ 등장한지 130주년... 1920년대 학교 못가 통곡
대표적 명문 서석초교 단 6명에 수창초교는 11명 입학 '격세지감’
불과 1~2km 떨어진 계림초교는 172명…신도시는 과밀학급 `상반'

2026년은 광주에 '학교'라는 이름의 교육기관이 등장한 지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1896년 11월 최초의 근대학교가 문을 열었다. 그동안 교육기관은 향교, 서당, 서원이었다.

교명은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였다. 학교는 광주공원 희경루 뒤편인 사마재에 터를 잡았다. 3년제였고, 관찰사(지금의 광주광역시장 또는 전남도지사)가 교장을 겸직했다. 교사는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조한설 단 1명이었다. 조 교사는 광주 최초의 선생님인 셈이다. <관련기사 3면>
1896년 광주에 처음으로 '학교'가 문을 열었다.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로 지금의 광주서석초등학교 전신이다. 사진은 일제강점기 광주공립보통학교 전경. 광주시 제공
근대학교는 초기에는 냉담했지만, 10년 후 불어난 학생수를 감당할 수 없어 학교를 이전할 정도였다. 동아일보 1922년 4월2일자에 '광주 교정에서 통곡하는 학생들' 기사가 나온다. 그해 3월 광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400명의 아이들이 운동장을 점거하고, 하염없이 우는 비극이 연출됐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1922년 4월2일자 기사
그로부터 130년 후. 2026년 3월3일 근대학교 공립소학교의 후신 광주서석초등학교 입학식이 열렸다. 1학년 신입생은 단 6명. 그나마 서석초교는 다행이다. 인근 광주 중앙초교는 한명도 없다. 1907년 일본인 학교로 문을 열었다가, 1945년 해방후 20학급으로 재출발한 119년 역사의 중앙초교는 지금 소멸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우리는 1학년'3일 광주북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을 마친 신입생들이 교실로 들어가고 있다. 이 학교는 올해 입학생이 5명이다.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반면, 광주 북구와 광산구의 신도심학교들은 학생들이 몰려 학급을 증설 중이다. 올해 북구 효동초 입학생은 207명, 수완초 193명, 계림초는 172명이다. 계림초에서 중앙초까지 도보로 1.1㎞, 서석초까지는 1.9㎞ 거리다. 불과 2㎞거리에서 한 학교는 신입생이 없어 폐교 위기인데, 다른 학교는 과밀을 걱정할 지경이다. 같은 광주 안에서 '학생이 사라진 학교'와 '학생이 넘치는 학교'가 동시에 존재하는 기이한 풍경이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의 고민이 크다. 김보경 광주학부모연대 대표는 "초미니 학교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또래 친구가 너무 적다는 점이 가장 걱정이다"며 "광주 초미니학교 문제는 교육청만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같이 고민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원도심 학교 위기는 결국 지역 쇠퇴의 또 다른 얼굴이다. 거주 인구 감소는 학생 감소로 이어지고, 학생 감소는 학교 경쟁력 약화로 연결되며 다시 인구 유출을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제 해법은 분명해지고 있다. 지역이 살아야 학교도 산다. 원도심 소멸위기 학교를 살리기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건상 ·이서영 기자 lg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