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원주, 마음은 서울"...짐 못 푼 이주민, 겉도는 지역인재 [강원 혁신도시 10년①]

강원 원주시 반곡동에는 11개 공공기관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헬기 운용 등의 이유로 지정면으로 개별 이전한 산림항공본부까지 포함하면 모두 12곳이다.
2013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시작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주요 기관이 차례로 둥지를 틀며 '강원 혁신도시'가 조성됐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받아든 성적표는 '통계의 착시'로 가득하다. 겉으로 드러난 이주율 수치는 높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직원 상당수가 가족을 수도권에 둔 채 주중에만 원주에 머무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인재 채용 역시 생색내기용 쿼터에 갇혀 청년들이 느끼는 고용 확대 효과는 미미하다.
화려한 빌딩 숲 뒤에 가려진 '반쪽짜리 성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이주율 68.8%'의 함정...실제 정착은 34%뿐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강원 혁신도시의 정착 성적표는 화려하다. 2024년 12월 말 기준, 공식 이주율은 68.8%. 숫자만 보면 안착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이 수치에는 미혼·독신 가구가 포함돼 있다. 실제 가족과 함께 내려와 삶의 터전을 옮긴 '진짜 이주'는 2490명, 전체 7183명 가운데 34.7%에 불과하다.
직원 3명 중 1명은 여전히 서울에 집을 둔 채 홀로 지내거나 수도권에서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 배우자·교육·인프라...3중고에 막힌 '가족동반 이주'
직원들이 10년째 짐을 풀지 못하는 배경에는 현실적인 벽이 존재한다.
출퇴근자와 가족을 두고 홀로 내려온 단신 이주자들의 미이주 사유를 보면, 가장 큰 장벽은 '배우자 직장'(782명)과 '자녀 교육'(434명)이다.
맞벌이가 일상화된 시대에 배우자의 경력을 포기하거나 수도권과의 교육 격차를 감수하며 가족 전체가 이주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의료와 문화시설 등 생활 인프라 부재를 이유로 이주를 포기한 인원도 394명에 달한다. 주거·교육·의료 환경이 정주 수요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혁신도시는 정착지가 아닌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일터로 전락했다.

'지역인재 의무채용'은 혁신도시법에 따라 이전 공공기관이 해당 지역 고교·대학 졸업자를 일정 비율 이상 뽑도록 규정한 제도다. 2018년 18%였던 의무채용 비율은 단계적으로 확대돼 2022년부터 30% 선을 유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강원 혁신도시의 지역인재 채용률은 56.65%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수치만 보면 신규 채용인원 두 명 중 한 명이 지역 출신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머니투데이방송이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과 국토교통부 발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숫자는 분모를 지워버린 통계의 착시였다.
기관이 100명을 뽑아도 '예외 조항'을 적용해 10명만 의무 대상자로 분류하면, 지역인재로 단 3명만 뽑아도 법적 기준인 30%를 충족하는 식이다. 실질 채용률은 3%에 불과하지만, 정부 통계에는 '목표 달성'으로 기록된다.
■ 30%의 마법, 4.8%의 현실...분모에서 지워진 지역 청년들
정부 발표와 현장의 괴리는 '예외 조항'이라는 법적 구멍에서 기인한다. 지사 채용과 경력직 등을 의무채용 분모에서 덜어낼 수 있는 규정이 통계 왜곡의 통로가 된 것이다.
지난 1월 감사원이 발표한 '공공기관 인력 운용실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127개 기관 중 27개 기관이 '지역본부 채용'을 이유로 총 4996.5명을 의무채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중 31%에 달하는 1500명의 예외 인원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796명)과 국민건강보험공단(755명) 두 기관에서 쏟아져 나왔다. 전국 예외 인원 3명 중 1명이 강원 혁신도시의 두 대형 기관에 집중된 셈이다.
기관들이 지사 채용이라, 경력직이라 '어쩔 수 없다'는 항변을 되풀이하는 사이, 채용 규모가 가장 큰 강원 혁신도시 상위 4개 기관의 지역인재 실질 채용률은 평균 4.8%라는 바닥을 기고 있다.

■ 축소 약속은 '공수표'...정부가 넓혀준 '예외 구멍'
감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 2019년 의무채용 예외 정원 비중이 절반에 달하자 "축소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약속은 방치됐고, 2018년 57.6%였던 예외 비율은 2024년 72.8%까지 치솟았다.
줄이겠다던 예외가 15% 이상 늘어나는 동안 국토부는 실무 검토안조차 내놓지 않았다. 주무 부처의 방관이 공공기관에 '합법적 탈출구'를 열어준 셈이다.

공공기관들은 현실적 한계를 항변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관 관계자는 "정부의 지역인재 유출 방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충분한 인재풀 없이 숫자만 채우다간 기관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하다"며 "부산이나 광주 지사 인력까지 강원 인재로 채우는 건 타 지역 청년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지역 대학가의 시각은 차갑다. 강원 지역 대학 관계자는 "정부가 예외 조항이라는 뒷문을 열어준 채 채용 비율만 자랑하는 건 지역 청년에 대한 희망고문"이라며 "예외 사유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실질 채용 인원을 기준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미나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