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 지출 통제기관 아닌‘미래전략 사령탑’돼야[기고]

2026. 3. 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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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대한민국에 다시 ‘기획예산처’가 출범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조직 개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몇 개 부서를 재배치하는 행정 조정이 아니라, 국가가 미래를 다루는 방식을 다시 설계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예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기술혁신, 기후위기, 인구절벽, 지정학 갈등 등 복합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부와 기업, 대학 모두 미래를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빠져 있다. 이 변화들을 하나의 시간표 위에 올려놓고 관리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시간표에 맞춰 자원을 일관되게 배분하고 있는가.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다. 변화의 속도는 가속화되고 불확실성은 상수가 되었다. 기술 주기는 짧아졌고, 정책의 유효기간은 줄어들었다. 동시에 초고령화, 저출산,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과 같은 구조적 과제가 누적되고 있다. 어느 하나도 미룰 수 없는 중장기 과제들이다.

더 근본적인 변화도 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 10위권 경제로 성장했고, 이제는 모방할 모델이 없다. 스스로 길을 내고,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 지점에서 기획처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대부분의 부처는 단기 성과와 현안 대응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정치의 시간은 짧고, 행정의 평가는 연 단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국가는 10년, 20년, 30년의 시간 축 위에서 설계돼야 한다. 단기 효율성과 장기 지속가능성 사이의 긴장을 조율하는 전략 기능이 필요하다.

예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가치의 표현이다. 어디에 얼마를 쓰는가는 국가의 우선순위를 드러낸다. 미래를 설계하지 않는 예산은 결국 과거를 반복하는 재정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기획처는 지출을 통제하는 기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방향을 설계하는 전략 사령탑이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혁신은 하나의 산업을 넘어 노동시장, 복지체계, 조세, 교육,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까지 재구성하는 체제 전환의 변수다. 자동화는 생산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일자리 구조와 소득 분배에 충격을 준다. 이에 따라 기본소득, 기본서비스, 기술 배당 등 새로운 소득·접근권 설계가 논의되고 있다. 기술 발전에 맞는 사회계약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는 국가 차원의 종합 전략을 요구한다.

아울러 인구구조 변화와 기후위기 속에서 세대 간 정의를 국가 전략의 중심에 둬야 한다. 고령화와 전환 비용의 증가는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산은 세대 간 약속이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짐이 되지 않도록 설계하는 일은 정책 기술을 넘어 윤리의 문제다.

그동안 우리는 속도와 실행력으로 추격해 왔지만 이제 필요한 것은 방향이다. 기술, 인구, 기후라는 구조적 변화를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국가 비전과 예산을 일치시키는 중장기 전략이 요구된다. 기획처는 5년 단위 계획을 넘어 30년의 궤적을 설계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더 이상 남의 길을 따라갈 수 없는 나라가 됐다면 답은 분명하다. 스스로 길을 만들고, 그 길 위에 자원을 배치해야 한다. 기획처의 재출범이 미래를 모방하는 국가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국가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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