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진심을 다하라” 가르쳐주신 선생님… 지금도 내 삶의 지표[고맙습니다]

“이춘우 님이 보내신 우편환을 오늘 배달할 예정입니다.”
우체국에서 알림 문자가 도착했다. 순간, 낯선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우편환’. 요즘 세상에 우편환이라니. 핸드폰을 다시 확인하니 선생님의 긴 편지 같은 문자도 함께 와 있었다.
‘제자에게, 보내준 책 즐겁게 잘 받아 보았네. 우선 수필집의 출간을 축하드린다. 문인으로 등단하여 문필가로 활동하는 제자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요즘 시력이 좋지 않아 조금 불편한데도, 책이 재미가 있어서 끝까지 다 읽어보았다. (중략) 약소하나마 책 출판 축하금으로 금일봉을 보낸다. 주는 정으로 생각하고 부담 갖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 문필가로서 더욱 발전을 기대하며 댁내 건강과 행운을 빈다. 중학교 수학 담당 이춘우 씀.’
편지를 읽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첫 수필집을 감사의 마음으로 보내드렸을 뿐인데, 정성 어린 소감과 함께 우편환을 보내주시다니…. 곧바로 스승님께 전화를 드렸다. 울산에 내려가면 꼭 찾아뵙고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더니, 연세가 많아 만나기가 민망하다 하며 말끝을 흐리셨다. 어느새 팔순을 훌쩍 넘기신 연세다. 내 중학교 시절, 선생님은 겨우 서른 중반을 넘긴 젊은 분이셨는데….
그 시절의 교실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분필 가루가 하얗게 날리던 칠판 앞, 늘 정갈한 글씨로 수학 공식을 적어주시던 모습.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면 “옳지!” 하고 짧게 칭찬해 주시던 목소리. 나는 원래 다른 과목보다 수학을 잘했고, 그만큼 좋아했다. 또한 선생님의 격려와 칭찬은 내 자신감을 더욱 북돋아 주었다. ‘나는 잘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심어준 분이 선생님이었다. 그 미소와 한마디 말씀 덕분에 수학은 단순한 과목이 아니라, 내 청소년기를 버텨낸 힘이 되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안부를 주고받았으나,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다. 몇 해 전, 오래된 수첩을 정리하다 희미하게 적힌 옛 전화번호를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여전히 정정하셨다. 그 순간, 세월이 한순간에 거꾸로 흐른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반가움에 명절 선물이나 내 글이 실린 문예지를 보내드리곤 했다. 그때도 책값을 보내겠다며 굳이 계좌번호를 물으셨지만, 한사코 사양했다. 이번만큼은 특별한 뜻이라 하시니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요즘은 손끝 몇 번만 움직이면 카카오톡이나 은행 앱으로 송금이 가능한 세상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무더운 여름날 직접 우체국을 찾아 우편환으로 현금을 보내셨다. 그 연세에 우체국 창구에서의 수고로움 속에 담긴 정성을 떠올리니 숙연해졌다. 봉투 위에 또박또박 적으신 내 이름, 그 글씨만으로도 눈시울이 젖어왔다. 나는 그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 부적처럼 지갑에 넣어 두고 다닌다.
돌이켜보면,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연이란 삶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 깜짝 놀랄 빛을 발하곤 한다. 어린 시절에는 단지 수학을 가르쳐주신 분이었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내 삶의 길을 멀리서 지켜봐 주신 존재였다.
중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강조하던 것 중 하나는 “정직하게 살아라”라는 거였다. 학업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늘 진심을 다하라”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때는 단순한 훈계로만 들렸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삶의 기준이 된 말씀이었다. 금일봉을 받으며, 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얼마나 깊이 내 마음속에 차지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우편환으로 날아온 내 지갑 속 작은 봉투는 단순한 금전이 아니다. 그것은 세월을 넘어 이어진 사제의 정, 그리고 스승이 남겨주신 가장 따뜻한 격려다. 내 마음 한편에 남은 선생님의 목소리와 손길이 앞으로도 긴 시간 나를 지켜줄 것이다.
다시 한 번 고맙고 감사드리며, 스승님의 남은 인생이 건강과 행복으로 충만해지시길 빌어 본다.
박귀숙(수필가)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라이프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원유 생명선 끊겨’…中·日 경제 호르무즈 봉쇄에 비상, 한국은?
- 김정은, 마두로 이어 하메네이 제거에 “나 떨고 있니?”… 트럼프 ‘까불면 다친다’에 눈 밖에
- [속보]대구 간 의원에 “해당 행위” 비판 장동혁…韓은 부산으로
- 이란, ‘철통’ 이스라엘 대신 다른 나라 ‘가랑비’ 타격 이유는?
- “왜 우리를…” 이란 드론 공습 받은 걸프 6국 격분
- 나경원 “李 대통령, 이란 공격 美 비판…누구와 같은 편인가”
- 송영길, 李 ‘계양을 출마선언’했던 계양산서 “다시 걸어가겠다”
- 대형견 두 마리에 공격받던 남성, 주머니 속 휴대전화 덕에 목숨 건졌다
- 배우 명계남, 차관급 황해도지사에 임명
- [속보]李 ‘이혜훈 낙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에 박홍근 지명